유치원 방과 후 과정을 듣기 위해 증명해야 하는 것들
유치원 투어를 열심히 했지만 별 소득 없이 유치원 접수 날만 다가오고 있었다. 어린 시절을 이 동네에서 보냈던 남편은 한 유치원이 생각났는지, 그곳을 한 번 방문해보자 했다.
방문해 상담받아보니 교사들의 분위기가 좋아 보였고, 커리큘럼도 마음에 들었다. 종교재단이라는 점만 빼면 괜찮았다(내 종교와 같지만, 아직 아이에게 종교를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기 때문이다.) 특정 기념일을 제외하고는 종교적인 활동은 없다고 하니 이 정도면 오케이다. 지난주 가봤던 병설유치원에 미련이 남았지만 올해 티오가 0명이라니, 어쨌든 차선을 택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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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이 곳으로 결정을 하고 맞벌이 자녀를 위한 방과 후 과정은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정규 수업만 할 경우 오후 3시경 집 앞까지 데려다 주고, 맞벌이 가정을 위한 방과 후 수업까지 들을 경우 4시 30분까지 라고 한다.
단, 정규 하원 시간인 3시에는 유치원 버스가 집 앞까지 바래다 주지만 방과 후 수업을 할 경우 부모가 아이를 데리러 와야 된다고 한다. 우리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데, 그럼 또 매일 40분 이상 운전을 해야 한다.
여기서 딜레마에 빠졌다. 정규 하원과 방과 후 과정 하원은 시간은 1시간 30분 차이인데, 직접 하원 하러 왕복 운전하면 이래저래 한 시간 가까이 소요된다. 그럼 1시간 남짓 벌자고 방과 후 수업을 신청하는 게 나은 건가? (초보운전의 수고로움까지 감안하니 더 고민이었다)
올해 매일 직접 운전해 아이를 등하원 시켜보니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프리랜서라고 하더라도, 내가 등하원 시키는 시간은 파트너사나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일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언제든 업무 요청 연락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운전하는 시간 중 휴대폰이 울릴까봐 늘 불안했다. 초보운전의 긴장에 이런 걱정까지 더해지니 운전 중 하루라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그럼 차라리 정규반만 마치고 유치원 차를 타고 하원 하게 한 다음, 내가 일하는 동안 옆에서 책을 읽든 장난감을 가지고 놀라고 하는 게 나을지 고민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일도 엉망, 육아도 엉망이 되어 이도 저도 아니게 될 거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유치원 보내고 일을 해야 하는 내 입장에선 3시 하원은 너무 빠듯하다. 아침에 아이 버스 태워 보내면 9시 30분일 텐데 그럼 일할 시간은 다섯 시간 남짓이다. 이마저도 아무것도 안 하고 일만 한다 가정했을 때다.
결국 방과 후 과정을 등록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또한 원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었다. 1순위는 맞벌이 가정, 2순위는 다문화 가정, 3순위는 다자녀 가정이라 신청한 후 선정된 아이만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맞벌이 가정이니 1순위일 거라 생각했는데, 문제는 프리랜서라 맞벌이 입증이 어렵다는 점이었다. 사대보험에 가입돼 있으면 맞벌이로 인정된다는데, 프리랜서는 사대보험이 가입되어있지 않다. 이 경우 일 하는 회사의 위촉계약서와 함께 근로소득 원천징수 영수증을 내야 한다고 한다.
위촉계약서를 받은 후 제출해야 할 서류들을 발급받으러 다녔다. 그런데 서류를 떼고 보니 매달 얼마를 벌었는지 너무 적나라하게 나오길래 이걸 그대로 내야 하는 건지 고민했다. 소득이 드러나지 않는 대체할만한 다른 서류는 없는지 찾아보니, 그건 효력이 없다고 한다.
방과 후 수업 티오는 적고, 원하는 사람은 많으니 애매한 서류로 맞벌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반드시 원에서 지정한 증명서를 내라’고 되어있고, 다른 증명서는 즉각 폐기한다는 말까지 쓰여있었다.
부부 중 한 명이 자영업 할 경우 무급종사자로 맞벌이를 증명하는 경우도 많던데, 유치원 입학 공지사항엔 자영업 가정의 경우 부부 공동사업자인 경우에만 맞벌이로 인정한다고 기재된 걸로 보아 프리랜서의 증명서도 타이트하게 검토할 거 같았다. 괜히 내 소득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게 싫어서 다른 대체 서류를 냈다가 방과 후 수업에 떨어지면 안 되니, 하는 수 없이 요구하는 증명서를 제출했다.
방과 후 과정에 무사히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들어가도 문제다. 작년까지는 방과 후 수업받는 아이들도 유치원 차량이 운행했는데, 올해부터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정규 수업 후에만 운행한다고 한다. 운전 안 하는 부모는 방과 후 과정은 신청도 못하겠구나 싶다. 올 초에 미리 운전 연수를 받길 잘했다.
회사에서 자동차 산업 관련 업무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조차도 운전면허를 따지 않았던 나인데, '아이 키우면서 면허는 필수다'라는 주변 말에 아이 세 살 때 부랴부랴 학원 다녀 운전면허증을 취득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내다 보니 역시나 필수 맞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교통편 안 좋은 지역에선 더더욱)
맞벌이를 위한 방과 후 과정이어도 4시 30분에 끝나는데, 직장인 대부분은 그 시간에 퇴근하지 못한다. 또한, 유치원 버스가 9시 넘어서 오니 등원 역시 직접 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래서 '등하원 도우미'를 구하는 거구나 싶다. 등하원 도우미 시급은 시간당 최소 1만 원이고, 아이가 둘일 경우 최소 1만 5천 원이라고 한다. 등하원 도우미가 어린이집 버스 마중을 나가 부모 중 한 사람이 퇴근하기 전까지 봐주는 경우가 많다. 유치원 버스를 운행하지 않아 등하원 도우미가 운전까지 해야 할 경우는 당연히 시급이 훌쩍 올라간다.
어린이집은 시가 근처로 보내서 비상상황이 생기면 늘 시어머니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로 입학하게 될 유치원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곳에 위치해있다. 내 월별 소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서류를 내는 게 민망해 방과 후 과정 신청에 주춤했던 고민은 정말 작은 고민이었다. ‘등하원 시간이 애매하게 겹치게 미팅 일정이 잡히면 어떡하지’, ‘데리러 가야 할 시간에 비상상황이 생기면 어떡하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유치원 입학을 앞두고, 프리 하지 않은 프리랜서 맘의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