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맘은 프리하지 않아

일이 많아도 걱정, 없어도 걱정

by 세실리아

안정적인 프리랜서 라이프를 위해 세컨드 레이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중(‘세컨드 레이어’의 의미는 전 편에 자세히 소개되어있다. 메인 업무에 기복이 있더라도 타격이 크지 않도록 마련하는 대비책을 의미한다), 시기적절하게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내 첫 회사 사수의 지인이었다.


대표는 나와의 미팅에서 조심스레 물었다. “우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일을 하려는 이유가 뭔가요? 사실 아기 낳으면 자연히 전업주부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일을 하려는 이유가 뭔가요? = 돈을 꼭 벌어야 하는 형편인가요?

보통 저런 질문 뒤엔 '본인이 안 벌면 안 되는 가정 형편인가요?'라는 의미가 내포된 걸 몇 번이나 경험했다. 가끔 오지랖 넓은 사람들은 “남편이 어느 정도 벌면 집에서 애 키우는 게 최고야”라는 말을 내게 던졌고, 저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내가 정해둔 모범 답안대로 “제가 벌어야 돼서 출근해요”라고 짧게 답했다.


‘남편이 어느 정도 번다’는 기준이 얼만큼인지 모르겠지만, 남편의 월급과 상관없이 난 내 일을 꾸준히 갖고 싶었다. 경력단절 여성 대열에 합류하기 싫었고, 그러기 위해선 지금 일해야 했다. 난 KTX 타고 출근하는 장거리 통근자였는데, 한 친구가 농담으로 “애 두고 KTX까지 타면서 출근하면 회사 사람들이 얼마나 억척 아줌마라 생각하겠어?”라고 했다. 아기 있는 아빠가 출근하는 건 당연한데, 아기 엄마가 출근하면 왜 ‘억척 아줌마’인 거지?


“우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일을 하려는 이유가 뭔가요?”라는 대표의 질문에 짧은 시간 저런 생각이 떠올랐다가, 이내 대답했다. “일을 당연히 하는 걸로 생각해서 그런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던 거 같아요. 안 하고 싶을 때도 있긴 한데, 그럼 나중에 정말 일을 하고 싶을 때 못하게 될까 봐 지속하는 것도 있고요”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대표가 “OO 씨 같은 인력이 육아로 경력 단절된다는 건 큰 손실이에요. 함께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해보죠. 저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에요”라고 말해줬다. 이어 “자유롭게 일하고 스스로 책임질 연차니 우리 상생할 수 있는 모델을 구축해봅시다”라고 했다.


일이 많아도 문제, 없어도 문제

그렇게 첫 세컨드 레이어가 생겼다. 이후 내 세컨드 레이어는 몇 차례 바뀌었고, 세컨드 레이어가 아예 없을 때도 있었다.


일이 많을 때는 토할 것처럼 바빴고, 일이 없을 때는 지금의 여유로움이 좋은 한편 ‘이런 비수기가 계속 이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됐다. 프리랜서라고 하면 ‘프리’라는 말이 주는 자유로움 때문인지 부럽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특히 전업맘과 워킹맘 모두에게 듣는 말이다. 워킹맘은 “집에서 일하니 부러워요. 출퇴근만 안 해도 살겠어요”라고 했고, 전업맘은 “애 보면서 돈도 버니 좋을 거 같아요”라고 했다. 하지만 프리랜서 맘은 프리하지 않다. 시간적으로도 프리하지 않고(물론 일 없을 땐 시간적으로 프리 하다), 마음은 더욱 프리하지 못하다. 프리랜서 맘의 아이러니는 일이 많아도 스트레스, 없어도 스트레스라는 점이다.


성수기랑 비수기, 내가 정할 수 있냐고!

남편은 직업 특성상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아주 바쁘다. 나 홀로 ‘독박 육아’ 해야 하는 시즌이다.

어린이집 버스가 우리 집 근처까지 오지 않아, 차로 편도 25분 거리를 내가 매일 등하원 시켜야 했다. 주차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왕복 1시간이니 짧은 거리가 아니다. 게다가 오전에 등원, 오후에 하원 총 두 번 움직여야 하니 하루 총 2시간이었다. 하루에 2시간씩 운전대에 앉아 있는 셈이다.


그런데 매일 2시간씩 운전해야 하는 그 독박 육아 시즌에 여러 군데서 일이 들어왔다. 일은 꼭 바쁠 때 몰리더라. 운전 중에 업무 관련 전화가 오면 너무 초조했다. 신호대기 중에 재빨리 밀린 카톡 메시지 숫자를 확인하면 심장이 쿵쾅 거리기도 했다(난 9시에서 18시 사이에 오는 연락은 가급적 바로 받거나 콜백 하고, 웬만한 요청사항 역시 즉각 하려 하는 편이다. 아무리 유연근무나 재택근무를 한다 하더라도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이나 파트너사가 일하는 시간에 보조를 맞추려 한다)

게다가 난 등하원 때문에 운전을 겨우 시작한 초보운전인데, 운전 중 업무 관련 연락이 오면 초조한 마음에 두통이 몰려왔다. 급기야 신경성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신경외과에 가니 당분간 운전을 쉬라는 처방을 받았다. 시어머니한테 등하원을 부탁하고 일주일간 일만 하니 살 거 같았다. 친정엄마든 시어머니든 또 다른 여자의 도움이 있어야만 여자가 일을 지속할 수 있는 게 씁쓸하다. 비상 상황이 생기면 양가 어디든 맡길 수 있는 나는 그나마 ‘육아 금수저’다. (어디선가 보니 부모님이 적극 육아를 도와줄 수 있으면 ‘육아 금수저’라 하더라)


하루는 오후 6시까지 보내야 할 메일이 있었다. 평소 늦어도 오후 4시에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가는데, 밀린 일을 하다 보니 4시 30분이 되었다. 메일을 보내고 가면 하원이 너무 늦어질 거 같아 지금 아이를 데리고 와서 메일을 보내야지 싶었다. 예상대로라면 5시 30분경 집에 도착할 테니까. 그런데 그날따라 차가 엄청나게 밀렸다. 집까진 한참 남았는데 시계는 이미 5시 55분을 향하고 있었다. 카톡 알림이 계속 울리고, 설상가상 아이는 뒷자리에서 쉬가 마렵다고 외친다. 그런데 나는 4차선 도로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초조한 마음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날 저녁, 남편이 퇴근하고서 ‘시간이 너무 없으니 등원이라도 당신이 시키라’고 했더니 본인은 새벽 6시가 되기 전에 집을 나서는데 어떻게 등원을 시키냐고 한다. (다행히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남편의 비수기라, 등하원을 남편이 시킨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쓸 여유도 있다.)

그럼 어쩌라는 거냐 했더니 ‘내가 바쁜 여름이랑 가을만 일을 좀 줄이면 안 될까? 겨울에는 내가 등하원 시키니까 그때 일 많이 받으면 되잖아’라고 했다. 속 모르는 말에 화가 났다. 직장 다니는 아내에게 ‘아기 좀 키우고 그때 다시 나가서 일하면 되지’라는 말을 듣고 화가 난다는 워킹맘의 프리랜서 버전인 거 같다. 아니 몇 년 애 키우고 다시 취업하려 하면 회사에서 ‘어서 오십시오’ 하냐고요. 마찬가지로 누가 프리랜서의 계절까지 고려해서 일을 맡기냐고요.


아침마다 정신없이 애 밥 먹이고, 씻기고, 옷 입혀서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집에 오면 10시. 그때부터 일하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간다. 늦어도 오후 4시엔 하원 해야 하니 3시 30분엔 집을 나선다. 애 데리고 집에 와서 샤워시키고 밥 먹이고 나면 하루 순삭이다. 저녁에 뽀로로를 틀어주고 노트북을 두들기는 날도 많다.


그때 만났던 대표의 질문이 떠오른다. “일을 하려는 이유가 뭔가요?” 그때 내가 했던 대답은 여전히 유효한가? 프리랜서 맘은 프리하지 않다. 시간도, 마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