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맘충, 파충은 아이를 낳으면서 충이 된걸까, 원래 충이었을까
동네에 좋아하는 카페 중 한 군데가 노 키즈존이다. 아기를 부모님댁에 맡길 때에만 남편이랑 종종 갔었다. 하루는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서 '근처에 맛있는 카페 있어'하고 데리고 갔다. 그 날은 아들도 함께였는데 노 키즈존인걸 잠시 잊고 차 타고 카페까지 갔다.
들어가니 주인이 '죄송하지만 노 키즈존이라서요'하길래 '아 맞다. 깜빡했어요' 하고 서둘러 나왔다.
친구 중 한 명은 '노키즈존 말로만 듣다가 처음 경험해 봐'라며 놀라워했고, 나는 '아.. 근데 아기 엄마들이 진짜 카페에서 민폐 부리는 사람 많거든. 그래서 요즘 노 키즈존 카페나 레스토랑 많은 거 같아' 대답했다.
'아니, 저출산 시대라고 아기 많이 낳으라 하면 뭐해? 사회가 이렇게 아이를 배제하는데' 라며 정말 놀라운 표정을 짓길래 '근데 여긴 개인 가게고, 가게 주인들 사정은 또 다르니까.. 다른 손님 생각도 해야 하고' 라며 휴대폰으로 근처 다른 카페를 검색해봤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미혼인 친구 조차 '어떻게 카페에서 아이 입장을 막지?'라며 놀라워하는데, 오히려 입장을 거부당한 존재인 나는 노 키즈존에 대한 명분을 이야기하며 노 키즈존에 대해 찬성하는 듯 말한 게 이상했다.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민폐 주는 아기 엄마들이 많다고 생각해 나조차 노 키즈존을 이상하다고 생각 못했다. 아이가 우는 것 까지야 이해하는데 아이가 울어도 그냥 놔두고 본인 할 일만 하는 경우, 아무렇게나 기저귀를 갈고 뒷정리를 하지 않고 가는 경우 등 인상 찌푸릴 일을 경험한 적 있기 때문이다.
'분위기 즐기고 싶을 땐 아이 없을 때 가면 되지'라는 생각에, 핫플레이스 카페를 가고 싶을 땐 프리랜서라는 장소 자율성을 활용해 노 키즈존 카페에 가서 일하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든 생각, '민폐 끼치는 사람이 비단 아이 엄마뿐만 아니라 다양한데, 왜 아기 엄마들은 '맘충'이라는 한 단어에 모두 포함시키며 집단 자체를 거부하는 걸까?
종종 일하러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가거나 책을 읽으러 가곤 한다. 카페는 도서관이 아니니 적당한 소음은 늘 익숙하고 딱히 방해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용한 곳에서 작업하고 싶을 땐 도서관을 가고, 적당한 소음이 상관없을 때만 카페 가서 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왜 저래?' 하면서 돌아보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대학생들이 커피 한 잔을 시켜두고 마치 도서관처럼 중간에 한 시간 정도 자리를 비우고 점심을 먹고 들어와 다시 그 자리에서 공부할 때(옆 자리에 책이랑 옷만 있고 아무도 없길래 여긴 무슨 자리인가 했는데, 한 시간 후쯤 다시 돌아와서 공부하길래 놀랐다.), 남성 서넛이 서 커피 마시던 중 나가서 다 같이 담배를 피우고 바로 들어와 역한 담배냄새가 그대로 실내에 머물 때, 중년의 여성들이 커피를 시키고선 가방에서 고구마나 빵 같은 외부 음식을 꺼내놓고 먹는 모습, 중년의 남성들이 주변 눈치 안 보고 건배사를 외치듯 시끄럽게 대화할 때 등.
그런데 그럴 때마다 '저 사람들 왜 저래'로 생각하지, 그 집단 전체로 생각하지 않는다. '역시 아줌마들 ㅉㅉ' 혹은 '요즘 대학생들 이기적이야'라고는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언정 '노 대학생 카페', '노 흡연자 존 카페', '노 중년 여성 카페', '노 중년 남성 카페'는 없다.
물론 문 앞에 '외부 음식은 삼가 주시길 바랍니다', '3시간이 지나면 추가 주문을 부탁드립니다', '주변을 방해할만한 행동은 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등은 있지만 개인의 행동을 그 집단 전체로 확대해 공간에서 배제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유독 아이 엄마에게는 엄격하다. '아이 동반 시 주변에 방해되지 않도록 주의 부탁드립니다'가 아니라 '노 키즈존'으로 입장을 거부한다.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맘충', '파충'(물론 맘충이란 말이 훨씬 더 흔히 쓰이고 익숙하다)이라는 단어가 쓰인다. 흔히들 맘충 혹은 파충으로 지칭되는 사람들은 부모가 되면서 주변 신경 안 쓰고 이기적이게 변한 걸까?
비혼주의 후배 한 명은 나에게 ‘선배, 회사에서나 주변에서나 충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냥 그 사람들이 부모되면 맘충,파충 되는 거에요. 그 사람들은 애 안낳았어도 그냥 쭉 충이에요. 근데 애엄마들만 특정하는거죠’라고 했다.
일리있는 말이다. 출산 전에도 카페에서 주변 신경 안 쓰고 시끄럽게 하던 사람들이 아이를 동반한 지금도 주변 신경 안 쓰고 아이를 방치하는 걸 테고, 자녀를 키운 후에도 친구들과 카페에 가서 담배 냄새를 가득 채우거나 외부 음식을 가지고 오는 중년으로 늙을 거다.
그저 '아기 엄마'는 여러 구실로 비하하기 쉬운 존재라 '맘충'이라는 프레임으로 피해 주는 집단으로 매도하고 공간에서 배제한다. 몇 년 전 여행 중에 갔던 초밥집이 맛있었던 기억이 나서 그 지역 가기 전에 계획을 짜면서 그곳에 전화했다.
'혹시 우동도 파나요?'
'죄송합니다. 우동은 따로 없습니다'
'그럼 다른 면류도 있나요? 아이랑 갈거라 아이 먹을 만한 게 있나 해서요'
'저희는 노 키즈존입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미리 전화했으니 망정이니 한적한 시골 동네에 있는 그 초밥집까지 찾아갔다가 발걸음을 돌릴 뻔했다. 그러다 문득 궁금했다 '노 키즈존'에서 말하는 키즈는 도대체 몇 살인 걸까?
최근 가족 여행 중 혼자 숙소 근처 카페에 잠시 갔을 때 카페 입구엔 '노 키즈존'이라는 안내와 함께 16세 이하 출입금지라고 쓰여 있었다. 아들 잠 들고나서 혼자 나오길 잘했구나 생각이 드는 동시에, 1세와 15세가 동시에 한 카테고리에 묶여서 입장을 거부당하는 이유가 뭘까 궁금증이 생겼다.
아이들 중엔 정말 활동적이어서 가만히 못 있는 아이도 있고, 밥 먹는 동안 얌전히 잘 앉아있는 아이도 있다. 뿐만 아니라 '밥 먹을 땐 시끄럽게 떠들지 않고 밥 먹어야 한다'라고 교육받아 얌전히 밥 먹는 아이도 있다.
또한 시도 때도 없이 우는 돌 전후 아기와 초등 고학년은 완전히 다른 존재다. 하지만 식당에서는 똑같은 '키즈'로 묶인다.
언젠가는 노 실버존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 이미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친구 한 명의 어머니가 패스트푸드점에 커피를 사 마시러 갔는데, 키오스크 작동법이 어려워 점원에게 주문했더니 '키오스크로만 주문을 받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어려워서 그러는데 그럼 주문 좀 도와줄 수 있냐고 했더니, 다른 일을 해야 해 안된다고 해 커피를 마시지 못하고 가게를 나섰다고 한다.
'암묵적 노 실버존'이다. 물론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야 한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으나 적응할 수 있는 시간 역시 필요하다. 적응 조차 어려운 사람도 있을 테고.
이러한 암묵적 노 실버존이 늘어나면서 언젠가는 당당하게 카페 앞에 '노 실버존'이 붙을지 모른다. 일부 시끄럽게 하는 노인들을 이유로 노인 전체 집단을 거부하지 않을까. 노인들을 '애 엄마' 만큼이나 아무렇게나 혐오하는 요즘을 보면 언젠가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몇 년 만에 대학 동기 모임이 있었다. 아이들 어린이집 가는 시간에 만나고 하원 전에 빨리 헤어지기로 했다. 친구 한 명이 식당 리스트 몇 개를 단체 카톡방에 보내주면서 고르라 하면서 '참고로 3번은 노 키즈존이다'라고 하니, 다들 '그럼 3번 가자. 다른 때 못 가니까'라며 만장일치로 3번이 꼽혔다.
하지만 애엄마처럼 보이는 네 명이 핫플레이스에서 밥을 먹으면 또 누군가는 '남편 등골 브레이커'라고 쯧쯧 대겠지? 남편은 돈 벌러 회사 간 시간에 애 유치원 보내 놓고 브런치 한다고 욕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애유엄브(애는 유치원, 엄마는 브런치)'라는 신조어에도 이런 조롱이 담긴 거 같다.
핫플레이스에 애를 데리고 가면 입장을 거부당하거나 맘충의 시선을 견뎌야 하고, 애 없을 때 가면 등골 브레이커로 매도되는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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