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준최선, 집밥은 대충
회사 다니던 때에 매일 11시 30분 즈음이 되면 '밥친구'들과 메뉴 고민하는 단톡방이 울렸다. 매일 회사 근처의 비슷비슷한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아 메뉴 고민하기 귀찮다'를 연발하곤 했다.
프리랜서가 되고 보니 홀로하는 밥 고민은 더 지겨웠다. 나가서 먹을까, 집에 있는 걸로 대충 먹을까부터가 고민이다. 여기에 돌봐야 할 아이까지 있는 프리랜서 맘이라면 더 큰 고민이 시작된다.
매일 늦은 오후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오면서 식품관에 들렀다. 빵집에서 내일 오전에 먹을 샌드위치를 사고, 떨이로 파는 메뉴를 몇 개 사서 비축해뒀다. 그리고 집에 오는 길에 식당에 들러 돈가스나 칼국수 등 아이랑 먹을만한 음식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집에 오곤 했다.
나가는 게 귀찮을 땐 피자나 치킨, 족발을 돌려가며 주문해 먹다가 너무 지겨워졌다. 사실 프리랜서로 집에서 일하다 보니 자칫하면 온갖 집안일과 살림, 육아를 내가 독박쓰게 될까 봐 스스로 몸을 사렸다. 그러다 보니 밥을 안 하게 됐고, 안 하다 보니 못하게 됐고, 못한다고 생각하니 시도조차 안 하게 됐다. 그 결과 우리 집에서 '밥은 하는 게 아니라 사 먹는 것'으로 됐다.
주말 아침이면 내가 늦잠 자는 동안 남편이 맥모닝을 배달해뒀다. 어느 날 맥모닝 왔다며 남편이 날 깨웠는데, 식은 맥모닝이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다(가끔 먹을 땐 진짜 맛있었는데!). 그냥 식빵에 프렌치토스트 후다닥 먹었으면 따끈하고 더 맛있겠다 싶었다.
그 날 결심했다. '큰 힘 들이지 말고 집에서 해 먹자'라고.
돌이켜보니 먹고 싶은 게 있어서 계획 하에 외식하러 나갔을 땐 만족스럽고 좋은데, 밥하기 싫어서 나가서 대충 사먹은 날은 맛도 별로고 이동하는 에너지 소모가 더 큰 거 같았다. 맥모닝 역시 가끔 생각나서 먹을 땐 맛있었는데, 주말 오전에 먹을 거 마땅찮아서 그냥 시킨 날은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배달음식도 마찬가지였다.
집밥의 작심삼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일단 힘을 많이 쓰지 말아야 한다.
'집밥의 롱런화'를 위해서 이렇게 세 가지를 지키려 했다.
- 레시피(특히 재료)에 연연하지 않기. 재료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활용
- 요리에 시간 많이 쓰지 말기
- 시간 많이 드는 음식은 다음날까지 먹을 수 있게 하기
시간을 많이 쓰고 싶지 않아 타이머를 켜 두고 음식을 하기도 했다. 간단한 음식은 30분,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1시간이 넘지 않는 것이 목표다. 내가 밥하고 남편이 설거지하니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요즘 효자메뉴는 김밥이다. 일단 여섯 살 아들이 좋아하고 잘 먹는다. 그리고 낮에 잔뜩 해두면 밤에 남편이 퇴근해서 먹기에도 좋다. 게다가 한 접시는 냉장 보관해두고 다음 날 계란물 입혀서 살짝 구우면 갓 만든 김밥처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무려 세끼를 해결할 수 있다. 처음엔 손이 많이 가고, 양을 가늠하기 힘들어서 기껏 고생만 하고 한 끼 먹기에도 부족했다. 그런데 몇 번 하다 보니 양 조절도 잘되고, 밥하는 것부터 접시에 옮겨 담아 두는 것까지 1시간이면 충분하다.
참고로 김밥에 재료를 많이 안 넣는다. 재료 많이 넣으면 준비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간만 잘 맞추면 네 가지(햄, 계란, 오이, 당근)만 들어가도 맛있다. 그때그때 재료를 준비해도 좋고, 시간 될 때 미리 재료 손질해서 냉동실에 얼려두면 훨씬 수월하다.
이건 맥모닝의 대안이다. 식빵을 잔뜩 사둔 다음 프렌치토스트를 해먹기도 하고, 샌드위치를 만들어먹기도 한다. 예전에 충동구매로 산 브런치팬을 요긴하게 쓰는 중 (브런치팬은 굳이 필요 없음)
남은 식빵은 프렌치토스트로 만들어서 아이와 먹었다. 잡곡빵이라 사진상 맛없어 보이지만 나름 괜찮았다.캡슐커피 한잔이랑 함께 먹으니 나도 아침 해결하고, 아이 먹기에도 딱!
요즘 자주 해 먹는 음식은 감바스랑 알리오올리오. 남편이 감바스를 좋아해서 사 먹으러 몇 번 갔다. 어느 날, 냉동실에 새우가 있고 냉장고에 방울토마토랑 마늘이 있길래 나도 만들 수 있겠다 싶어서 만들어봤다. 아주 만족스러운 맛은 아니었지만, 몇 번 하다 보면 잘할 수 있을 거 같다.
감바스 만들다 보니 거기에 파스타면만 삶아 넣으면 알리오 올리오구나 싶어서 면 삶아서 넣으니 그럴싸했다.
위에서 말한 대로 '집밥의 롱런화'를 위해서 아래 세 가지를 계속해서 지킬 예정이다.
- 재료에 연연하지 않기. 재료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활용
- 요리에 시간 많이 쓰지 말기
- 시간 많이 드는 음식은 다음날까지 먹을 수 있게 하기
그리고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인스타에서 본 #온더테이블 #집밥스타그램 처럼 사진을 예쁘게 남기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주객전도되고, 또 예쁘게 만들려고(예쁘게 사진 남기려고) 신경 쓰다 보면 금세 지쳐서 집밥을 안 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전부 내 손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프(half) 집밥'라고 생각하며 적당히 시판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시판 사골국에 대파를 준비해놨더니, 오늘 아침엔 남편이 아이에게 사골국에 떡국을 끓여먹이고 등원시켰다. 친정엄마가 주신 좋은 가래떡에 싱싱한 대파가 송송 들어가니 시리얼보다 훨씬 나았다.
밥 한 끼 내 손으로 만들고 치우는 일상이 삶을 안정적으로 만들어주는 기분이다.
온전하고 안정적인 일상을 위해 오늘 저녁은 스크램블 에그에 야채들을 투척해 볶음밥을 할 예정이다. 볶음밥을 할 때도 아마 타이머를 켜두고 할 거 같다. 30분이 넘어가면 안 되니까!
일도 해야 하고, 아이도 봐야하는 프리랜서 맘이 지치지 않고 집밥을 쭉 하려면 대충하는 게 답이다.
최근 '준최선의 롱런'이라는 책을 읽었다.
멀리 봤을 때, 최선보다 준최선이 더 가성비가 좋은 거 같다며, '대충하는 것은 아닌데 최선을 다하는 것도 아니고, 그 사이에서 묵묵하게 롱런하기'라는 말이 나온다. '준최선'이라는 말이 너무 신선했다.
하지만 집밥은 준최선까지도 필요없다. 그냥 대충합시다!
현재 이 글이 수록된 매거진 <프리랜서 맘은 프리하지 않아, 그 후>엔
브런치북 <프리랜서 맘은 프리하지 않아> 발행 이후 쓴 글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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