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자리 동료는 3시간만 일하는데, 나는 왜 안돼?

육아기 근로 시간 단축 '복불복'

by 세실리아

한 투자증권사에서 워킹맘 관련 글을 의뢰받아 쓰고 있다. 3월을 앞두고 요청받은 주제는 '자녀 새 학기를 맞는 워킹맘'에 대한 글이었다.


새 학기 증후군은 아이보다 엄마에게 더 있다. 특히 일하는 엄마라면 더더욱.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할 아이를 입학식 하루 동행하고 혼자 보내는 마음이 어떨까. 게다가 학교 끝나고 홀로 학원 차를 타고 뺑뺑이 돌려야 하는 심정은 어떨까.


글을 쓰기 위해 자료 조사를 하다가 '육아기 근로 시간 단축'이라는 제도가 작년 10월 1일부터 시행됐다는 걸 알게 됐다. 1년 간 하루에 1~5시간 단축 근무를 할 수 있는데,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않은 경우엔 육아휴직 기간까지 합해서 최장 2년 이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아이 학교 가있는 시간 동안만 일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 워킹맘이라면 번쯤 해봤을 텐데 드디어 이런 제도가 생긴 것이다.


워킹맘에게 '탄력 근무'란 얼마나 매력적인가. 아이가 세 살 때까지 회사에 다녔던 나 역시 출퇴근 시간이 부담스러웠고 아이가 아플 때, 부모 동반 소풍 등 월차를 내야 할 날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어린이집 조기 하원, 병원 방문 등 한두 시간씩 찔끔찔끔 필요한데 반차를 내기도 애매한 나날이 많았다. 오랜 고민 끝, 유연한 시간 활용을 위해 결국 퇴사했다.


난 출산과 육아는 경험했지만 아직 '초등 입학'은 경험하지 못했다. 워킹맘 선배들을 보면 육아휴직 12개월 중 11개월만 쓰고 1개월 정도 남겨놓는 선배들이 있었고, 회사 선배도 나에게 '육아휴직 다 쓰지 말고 한 달쯤 남겨둬. 초등학교 입학할 때 3월에 써야 하니까'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워킹맘 퇴사 고민 이유 50.5%가 초등학교 입학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2019년 12월 발표한 ‘2019 한국 워킹맘 보고서’에 따르면 워킹맘 2,000명을 대상으로 2019년 8~9월 온라인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5%가 퇴사를 고민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퇴사를 고민하는 일이야 직장인 누구나 다 있는 일이니 여기까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눈여겨볼 점은 퇴사나 이직을 고민했던 시기가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50.5%) 출산(42%) 앞지른다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다. 2018 3 이데일리 기사를 보면 2017 학교 개학을 전후해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엄마 1 5,800 명이 사표를 냈다고 한다.


영유아기 힘든 시절 다 견뎌 그때까지 회사 생활했을 텐데, 아이 저학년 때 결국 관두게 되다니 너무 씁쓸한 현실이다. 금세 또 고학년 되면 엄마 손길은 덜 필요할 텐데 2년 여를 위해 결국 퇴사를 택한다는 게 안타깝다. 엄마 손길이 덜 필요해 정작 사회로 돌아가고 싶을 땐 경력단절 여성이 되어 재취업이 쉽지도 않다. '탄력근무만 가능해도 워킹맘 트랙에서 이탈하지 않을 고급 인력이 많을 텐데'라고 생각했었는데, 육아기 근로단축 제도는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다.


육아휴직 하루 차이로 희비 엇갈리는 '육아기 근로 시간 단축'


그런데 새로 알게 된 충격적 사실. 만 8세 이하 자녀가 있는 부모가 해당사항인데, 2019년 10월 1일 이전에 육아휴직을 모두 사용한 사람은 이 제도를 사용할 수 없다는 거다. 그리고 육아휴직을 썼지만 하루라도 남아있는 사람은 육아기 근로단축 제도를 1 이용할 있다고 한다.


내가 잘못 알았나 싶어서 이 제도를 활용하고 있는 사촌동생에게 연락해봤더니 내가 이해한 게 맞단다. 실제로 저 기준으로 희비가 엇갈리는 사람이 많아서 항의가 엄청났고, 국민청원도 있었지만 파급력을 갖진 못했다고 한다.


육아휴직을 1년 썼더라도 회사 사정으로 복직 일자보다 하루나 이틀 먼저 출근한 사람은 육아기 근로 단축을 1년 쓸 수 있다. 하지만 꽉 채워 썼으면 단 하루도 쓸 수 없다. 정말 이상한 적용이다.


내 사촌동생은 워킹맘을 배려하는 중견기업에 다닌다. 육아휴직 중 이 제도가 시행됐고, 예정된 날짜에 복직하면 이 혜택을 전혀 누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육아휴직을 이틀 남기고 조기 복직해 이 제도의 수혜자가 됐다. 하루 4시간만 일하고 월급의 80%를 받는 중이다. '4시간 일하고 80%이라고? 개꿀이네'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돌 갓 지난 아이를 보기 위해 시어머니가 왕복 3시간 거리로 매일 출퇴근해 아이를 봐주셔서 수고비를 드리고 나면 정작 본인 손에 쥐는 건 얼마 되지 않는다. 또 다른 여성의 희생이 없으면 여성의 회사생활은 요원하다.


사촌동생의 시어머니가 아이를 봐주러 왕복 3시간을 출퇴근하시는 것처럼, 사촌동생 역시 왕복 3시간에 가까운 회사로 출퇴근한다. 몇십만 원 남지 않지만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감사해하고 있다.

동생은 다행히 같은 부서에 워킹맘이 없지만, 만약 이미 육아휴직을 1 모두 사용해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는 동료가 있다면 본인이 민망했을 거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제도에서 배제된 억울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어디 가서 섣불리 꺼내기 힘들다고 했다. 연대해야 워킹맘의 희비가 갈린 셈이다.


워킹맘은 월급루팡? '라떼는 말이야'


당연히 인터넷엔 항의가 엄청났다.

"이 법이 시행될 거라고 2018년부터 홍보하길래 기대했습니다. 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예외사항에 대한 말이 전혀 없어서 1년을 꽉 채 워쓰고 복직했어요. 차라리 이런 제도가 시행된다는 말이 없었다면 초등 입학 시기를 위해 몇 달 남겨두고 복직했을 겁니다."


"아이가 육아기인데 '육아기 근로 단축'에서 저는 왜 제외되나요? 만 8세 이하 아동에게 일괄 적용되어야 합니다. 육아휴직 1년을 다 썼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놀라운 제도네요."


"차라리 2019년 10월 1일 출생 기준으로 이 제도가 적용되었으면 덜 억울했을 겁니다. 초등 입학 대비해 휴직을 남겨놓고 싶었지만, 우리 회사 분위기상 육아휴직을 남겨봤자 남은 육아휴직은 못쓸 게 뻔합니다. 그래서 꽉 채워 썼는데 이런 결과가 있을지 몰랐네요"


"육아휴직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어야 혜택을 적용받을 수 있다고 해서 일찍 복직하려 했는데 회사에서 거절했어요. 정해진 날짜에 복직하면 저는 혜택을 전혀 못 받습니다"


이런 억울한 사연이 수도 없이 올라와있다.


'이렇게 좋은 제도를 누리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왜 관심을 갖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의아했는데 생각해보니 나조차 의뢰받은 글을 위해 자료 조사하기 전엔 이런 이슈가 있는지 전혀 몰랐다.


여기서 억울한 사람은 '일하는 여성' ' 8 이하 자녀' 있고 '육아휴직을 1 여성'이다. 사실 워킹맘이라 해도 본인이 수혜자면 다행이라 생각하며 더 이상 관심 갖지 않게 된다. 아이를 키운 사람은 '더한 환경에서도 키웠다'라며 배부른 투정이라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지금 막 출산한 새내기 워킹맘은 이 제도의 자동 수혜자니 사각지대까지 생각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하는 여성으로서 연대해야 한다. 더 많은 워킹맘 선후배가 자리를 지켜내야 할 테니.


억울한 사람들이 불만을 제기하면 '육아휴직 1년 다 썼다는 게 얼마나 복 받은 건지 모르냐. 그것도 못쓴 사람이 부지기수다'라며 이기적인 사람으로 매도한다. 누릴 거 다 누려놓고 이제와 우는 소리한다는 악플러는 물론, 저렇게 일 안 하고 '튀면' 그 일은 결국 동료에게 민폐로 돌아간다며 ‘워킹맘=민폐’라는 악플도 있다. 육휴는커녕 출산휴가 3개월도 감지덕지였는데 복 받은 줄 알라는 '라떼는 말이야(나때는 말이야)'를 외치는 꼰대도 있다.


법적으로 보장된 육아휴직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다른 권리를 박탈당했는데, 항의하면 되는 것인가?

저출산 사회에서 양육을 위해 탄력 근무를 하는 그렇게 못마땅한가?



한 부서에 같은 연령 자녀를 두었는데 누구는 1년 간 하루 3시간만 일하는 파격적인 단축근무를 사용할 수 있고, 다른 한 명은 전혀 혜택을 볼 수 없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육아기 근로단축은 1년이지만, 육아휴직 남은 기간을 육아기 근로단축으로 전환해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9개월만 육아휴직했더라면 1년 3개월 동안 단축근무를 하는 셈이다. 그럼 육아휴직을 모두 사용한 사람은 육아기 근로 단축만 1년 사용하면 형평성에 맞을 일이다.


프리랜서라 어차피 해당 사항 없다. 하지만 난생처음 국민 청원을 해본다. '워킹맘=민폐'라고 생각하는 나라에서 20 명이 동의할리 만무하다. 그래도 계란에 바위 쳐보고 싶다. 워킹맘 트랙에서 이탈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어야 하니까.


아기 키우기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 취지로 청원에 동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YRAx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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