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중이라고요? 좋은 회사 다니시나 봐요”

‘문센맘’ 경험했던 열 달의 시간

by 세실리아

드디어 꿈에 바라던 육아휴직자가 됐다. 드디어 나도 ‘문센맘’이 되는 건가! 돌쟁이 아들을 데리고 ‘트니트니’, ‘오감 마사지’ 같은 문화센터를 다닐 수 있게 됐다. 일주일에 두 번씩 유모차를 끌고 백화점 9층의 문화센터에 갔다. 수업은 45분인 반면, 아기 씻겨서 준비하는 시간과 이동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수업시간의 두 세배는 족히 걸렸다. 문화센터에서 다른 엄마들과 서로를 소개할 때 ‘육아휴직 중’이라고 하면 “좋은 회사 다니시나 봐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진 않은데…”라고 말하면 “육아휴직 주는 회사가 어디 흔한가요”라고 한다. 음… 어쨌든 육아휴직 중이니 좋은 회사 맞나? 그래, 어찌 되었든 고마운 회사다!


주 52시간, 전업맘은 예외

집에 있어보니 전업맘 역시 힘들었다. 아기가 어린이집을 다니면 조금 숨 쉴 틈이 있지만, 아직 기관에 다니지 않는 아이를 데리고 하루 종일 복작복작하는 전업맘은 퇴근 따위 없는 ‘극한 직업’이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 중인 요즘도, 전업맘은 예외다. 오죽하면 아기가 잠들고 나면 그제야 ‘육퇴(육아퇴근)’라며 좋아할까. 인스타그램에 #육퇴를 검색하면 무려 70만 개가 넘는 피드가 나온다. 워킹맘은 업무 중간에 커피라도 마시고 동료들이랑 수다타임이라도 할 수 있지만, 집에서 아기와 함께 하는 하루는 쉬는 시간이라곤 없었다. 말 안 통하는 아이랑 하루 종일 있다 보니 말하는 법을 잊어버릴 지경이다.


게다가 돌 무렵엔 한시라도 아기에게 눈을 뗄 수 없었고(잠깐 설거지하는 사이에 스펀지를 꿀꺽 삼켜 119 타고 응급실에 간 적도 있다), 아기가 낮잠 자는 시간이면 밀린 빨래 하고 이유식 만들고 청소를 했다. 출산 후 머리카락이 엄청나게 빠져 방바닥은 누가 머리채를 붙잡고 싸운 거 같은 흔적을 하고 있었다. 부직포로 머리카락을 치우다 보면 어느새 저녁이 됐다.


아기 울음소리를 알람 삼아 시작되는 하루는 너무 길었고, 육아 동지인 남편이 퇴근할 시간만 기다리게 됐다. 아기랑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어서 휴직한 건데, 가끔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언젠가 읽은 한 잡지의 내용이 생각났다.

가정주부는 아주 작은 사이클 속에서 살아갑니다. 밥을 짓고, 먹고, 청소하고, 더럽히고, 다시 치우고… 발전이 없어 보이는 이 일련의 생활이 젊을 때에는 지겨웠겠지만 매일 뭔가를 만들어내고 매일 다시 제로로 돌리는 작은 행위들이 수십 년 쌓이다 보면 결국 한 집안의 강자로 거듭납니다. 반대로 밖에서 평생 일하며 늘 진보와 발전의 경험을 늘려온 한 집안의 가장들은 수 십 년이 지나면 대부분 정년퇴직 후 그동안 쌓아온 자신의 스킬들이 백지로 돌리는 것에 허무해합니다. 스킬업의 정점에서 그 일을 그만둬야 하는 공허함이란 엄청난 거죠. 그래서 미리미리 연습해야 합니다. 매일 ‘플러스마이너스 제로’로 살아가는 가정주부들의 지혜가 필요한 이유죠.


어질러진 거실을 치우고, 이유식을 차리고, 설거지하는 쳇바퀴 같은 일상을 지내며, ‘플러스마이너스 제로’의 지혜를 체득해가는 과정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플러스마이너스제로를 반복하며 회사를 잊을 때쯤이면 한 번씩 카톡이 울렸다. “A팀 공석인데, 그 자리로 올 생각 있나요?”(아니 이게 지금 육아휴직 1개월 차 직원한테 보낼 카톡이냐고요…) 과차장급 인력난을 겪는 홍보회사의 흔한 풍경이라 아주 새롭지도 않다. “부장님 저 육아휴직 들어온 지 한 달 밖에 안됐어요”라고 답장하면 “어머 미안. 아기랑 즐겁게 시간 보내세요” 카톡이 오곤 했다. 회사에서 조기 복귀 여부에 대해 묻는 연락이 오면 ‘고작 열 달인데 그걸 못 기다리나’싶어 짜증이 나다가도 이내,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에 대해 안심되기도 했다.



육아휴직자는 인센티브 급여 제외 대상

내가 휴직할 무렵 나랑 비슷한 연차의 동료 몇 명이 퇴사했다. 퇴사하고 이직 준비하려는 미혼 동료도 있었고, 퇴사 후 임신 준비를 하는 기혼 동료도 있었다. 휴직 중에 동료들에게 연락이 왔다. “퇴사했는데 인센티브가 들어왔네? 대박. 당연히 안 줄지 알았는데”


동료들 퇴사 후에 인센티브 정산이 있었는데, 재직자가 아닌데 회사에서 인센티브를 줬다고 한다. 난 동료들이 퇴사한 시기에 휴직했으니 나도 들어왔겠구나 싶어 월급통장을 확인해봤는데, 난 입금 내역이 없다. 뭐지? 퇴사자는 말 그대로 회사를 떠난 사람이고, 나는 ‘휴직 중’이라 아직 회사 소속인데 왜 나를 빼고 줬지? 혹시 누락됐나 싶어 인센티브 유관 부서에 연락했다. 인센티브에 대해 묻자 회신이 없었다. 강경하게 따지고 싶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회사는 나에게 ‘육아휴직을 쓰게 해 줬으니까’.


훗날 복직 후, 이미 지난 일이지만 어떤 연유였는지 확인이나 해보고 싶어 물어보니 “퇴사자들은 퇴사 선물 겸 지급했었고, OO씨는 복직 후 돈을 더 벌거니까”라는 동문서답을 들었다. 궁색한 이유도 아니고, 말 그대로 동문서답이다. 그냥 육아휴직자가 괘씸했던 거다. 아무리 그래도, 이미 퇴사한 사람보다 못한 대우를 하다니!



“이번 달에 출근 가능하니?” 5분 대기조 같은 휴직

나는 3월 말 복직 예정이었다. 신청해둔 어린이집에 3월 입소인데, 2주 정도 보호자가 함께 가서 적응기간을 보내야 한다. 적응 기간 마치고 3월 말에 출근하면 되겠다 싶어 ‘나이스 타이밍’을 외치며 입소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2월 중순에 복직하라고 연락이 왔다. 나는 이왕이면 아이와 함께 등원하며 적응기간을 보낸 후 마음 편히 복직하고 싶었다.

예정대로 복귀하겠다 했더니 11개월이나 쓰게 해 줬는데, 한 달을 양보 못하냐며 “2월에 과장 한 명이 퇴사할 예정이라 그 자리에 널 배정하려 하는데, 네가 지금 안 오면 그 자리에 새로 직원을 채용해야 해 3월에 복직할 네 자리가 애매하다”라고 했다. 순간 나도 화가 나서 “그럼 어쩔 수 없죠. 그 이후에 공석이 생기면 복직할게요”라고 했더니 밀당하듯 “음.. 그래도 상관없니?” 하길래 “네.” 대답하고 통화를 마쳤다.


불러주는 곳이 있는 걸 고맙게 생각하자던 다짐도 잠시, 5분 대기조도 아니고 매번 ‘출근할 수 있냐’고 불시에 연락 오는 회사가 짜증 나고, 육아휴직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은데 아기가 기관에 입소하기도 전에 급히 출근하라는 회사에 화가 났다. 그간의 과정을 본 남편도 급기야 “그냥 복직하지 말고 집에서 아기 보면 어때?”라고 했지만, 나는 ‘지금 쉬면 영영 쉬게 될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방에서 서울로 통근하기 때문에 회사 위치도 아주 중요했는데, 이만한 위치의 회사를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회사의 입장도 십분 이해됐다. 내가 복직했는데 담당할 브랜드가 없다면 잉여 인력인 내 인건비는 누구 부담이겠는가.


하지만 난 결국 ‘이기적인 육아휴직자’가 되어 예정대로 3월에 출근했다. 퇴사 예정이라던 과장은 이미 퇴사했고, 팀장이 그 공석을 메우며 일하고 있었다. ‘내 복직 자리를 위해 이렇게 공석으로 두다니’라는 고마운 마음보다는 ‘왜 하필 이 자리냐’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내가 도망치고 싶어 휴직을 신청했던 바로 그 팀이었기 때문이다. 오 마이 갓! 막차가 끊기는 시간에 퇴근하던 1년 전 모습이 데자뷔 되었다.

이전 04화퇴사하라고요? 전 육아휴직을 원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