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입원했는데도 밤새 일하는 팀장을 보며 ‘현타’가 왔다.
복직했다. 출산 후 5개월 만에 복직하고 또 육아휴직을 썼으니 두 번째 복직이다. 새로운 내 직속 상사는 애 둘 워킹맘이었고, 늦둥이 둘째가 내 아이와 같은 나이다. 내가 결혼 전 대리로 입사했을 때 그녀는 옆 팀 팀장이었다. 한참이나 나이 많은 ‘다른 세대’ 사람처럼 느껴졌는데, 이제는 애엄마라는 이유로 그저 동지 의식이 느껴진다. ‘애 엄마’로 대동단결이랄까.
팀장과 함께 신제품 론칭 행사, 인플루언서 팸투어, 미디어 캠페인 등을 함께 하며 정신없이 일했다. 일주일 동안 출장지에서 한 침대에서 자며 수다 떨기도 하고, 같이 업무 미팅을 다니며 육아 고충을 나누기도 했다. 애가 없었더라면 나이 차이 나는 팀장과 그렇게 속 깊은 이야기로 무한 공감하며 대화했을 리 만무하다. “요즘은 20대 후배들보다 50대 아주머니들과 더 대화가 잘 통하는 기분이에요”라는 워킹맘 동료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3월에 복직해 어느덧 연말이 되었다. 업계 특성상 11월부터 다음 해 연초까진 ‘제안 시즌’이다. 홍보회사의 수익원은 기업에 홍보 서비스를 제공하고 받는 수임료이기 때문에 내년 먹거리를 위한 제안서를 쓰고 경쟁 PT를 해야 한다. 경쟁 PT를 위한 제안서를 쓰더라도 기존에 하고 있는 업무가 있으니 야근이 뒤따라 올 수밖에 없다. 9시부터 6시까지는 평소 하던 업무를 하고, 업무 시간 이후에야 제안서 작성에 본격적으로 매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차장 직급을 가지곤 있었지만, 내 위로 팀장이 있으니 경쟁 PT를 리드하는 건 팀장이었다. 그런데 PT를 앞두고 팀장의 작은 딸이 입원했다. 팀장은 밤새 간호하는 와중에 병실에서 제안서를 마무리 해왔고, 병원에서 정장을 갈아입고 출근했다. 피곤한 얼굴로 경쟁 PT 장소로 이동하는 내내 스크립트를 외우는 팀장을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갑자기 ‘현타’가 왔다. 여기서 몇 년 더 버틴다면 저건 내 모습일 거란 생각이 들면서 ‘우리가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일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내 상황도 팀장과 딱히 다를 것 없었다. 나는 사정 상 늦봄부터 초가을까지 주말부부로 지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회사와 가까운 친정에서 지내다가 금요일 퇴근 후 KTX를 타고 남편과 아기가 있는 우리 집으로 갔다. 그리고 일요일 밤이면 다시 KTX를 타고 친정으로 갔다. KTX역까지 남편이 날 데려다주면 당시 두 살이었던 아들이 엄청나게 울었다. 나랑 헤어지는 게 싫어서 우는 건지, 카시트가 답답해서 우는 건진 모르겠지만 매번 우는 아들을 차에 두고 혼자 내리는 게 마음에 걸렸다. 헤어지기 아쉬워 천천히 내리면 뒤 차가 경적을 울려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헤어지는 날이 많았다. 아들한테 인사를 못하고 내린 어느 날은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란 생각에 울면서 KTX를 타러 간 적도 있었다.
남편이든, 친정 부모님이든, 시부모님이든 내가 회사를 다닌다고 하면 다니는 대로, 퇴사한다고 하면 그런대로 그에 맞춰 내 선택을 존중했을 것이다. 어쨌든 선택은 내 몫인데 회사를 계속 다닌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했고, 퇴사는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진정한 가장은 여자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선택권은 나에게 있는 거 같았지만, 어떤 선택을 하기도 힘들었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천천히 생각해봤다. 어쨌든 난 일을 그만두는 건 원치 않는다. 하지만 지금처럼 장거리 출퇴근이 장기적으론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매일 야근해야 하는 스케줄 역시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잠깐 글 쓰는 일을 했던 게 떠올랐다. 소셜커머스 매거진 에디터로 집에서 글을 썼는데, 아기 낮잠 자는 시간에, 양가 부모님이 봐주던 날 틈틈이 썼다. ‘그런 일이면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동시에 ‘지속성’과 ‘밥벌이’가 문제였다. 그땐 돈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글 쓰는 일을 해보고 싶어서 처음으로 도전해본 일이었고, 용돈 정도 버는 것에 만족했다. 육아휴직 중이니 육아에 방점을 찍고, 취미 삼아 해봤던 일이다.
‘직장’을 떠나 ‘직업’, 즉 어디 소속이 아닌 ‘업(業)’에 집중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조직을 나와 내가 돈을 번다는 게 가능할까 고민해봤다. 언젠가 본 책에서 ‘프리랜서는 많다. 그냥 프리랜서 말고 밥벌이하는 프리랜서가 되어야 한다’고 쓰여있었다. 퇴사한다면 당연히 밥벌이하는 프리랜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조직을 떠나 과연 내가 프리랜서로서 생존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그즈음, 같이 일하자고 하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내가 능력자여서가 아니라 홍보업계는 이직이 워낙 잦고 과차장급 인력이 부족해 오퍼가 많다. 조직을 떠나 일할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보던 시기라 이런 제안이 올 때마다 적극적으로 만났다.
내 우선순위는 (1) 재택근무가 가능한가, (2) 유연근무가 가능한가, (3) 내가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가 였다.
재택근무가 우선순위였던 이유는 야근할 때마다 막차 걱정이 날 초조하게 했고, 아이가 잘 때 출근해 잠들고 나서야 집에 가는 날들에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유연근무를 꼽은 건 아기가 어린이집에 입학하니 잔병치레가 많았고, 부모 동반 행사나 상담 등 자잘한 일들이 많았다. 하루를 통째로 비워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한두 시간 자리를 비워야 할 일이 종종 생긴다. 그래서 출근을 앞당기거나 뒤로 미루는 유연근무도 중요했다.
마지막으로 3번은 내가 누군가의 손발로만 일해야 하는 자리는 지양했다. 재택근무 위주로만 자리를 찾다 보면 업무의 중요도가 떨어지는 일에 배정돼, 단순 업무만 하게 될 확률이 크다. 이런 자리는 배제했다.
그러던 중 업무상 1인 기업가를 만나게 됐다. 파트너사로 같이 업무 진행하며 서로 호감을 갖게 됐는데 “1인 기업이라 그동안 혼자 일하느라 힘들었는데, 솔직히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없었어요. 그런데 차장님 만나보니 같이 일해보고 싶어요”라며 내게 같이 일하자는 의견을 내비쳤다. 나 역시 그즈음 제안받았던 자리 중 가장 촉이 좋았다. 여러 번 만나 ‘어떤 방법으로 함께 일해야 할까’ 고민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나로서도 회사를 관두는 게 큰 모험이었고, 그 대표 역시 혼자서만 일하다가 함께 일할 사람을 영입하는 게 큰 리스크였다. 혼자서 꾸려가던 1인 기업에 고정적인 인건비가 생긴다는 건 엄청난 변화다.
섣불리 함께 했다가 서로 난처한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오랜 시간 고심했다. 지지부진하게 두 달 정도 만남을 이어가던 중, 2017년 첫눈 오던 날 다시 만나 여러 가지를 협의했다. 직원인 듯 프리랜서인 듯 ‘half 프리랜서’의 형태로 같이 일하기로 했다. 내가 ‘Half 프리랜서’라고 명명한 이유는 4대 보험이 보장되는 정규직은 아니지만, 일회성이 아니라 꾸준히 함께 일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함께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직원처럼 함께 일한다고는 해도, 페이 지급 형태를 생각하면 프리랜서는 프리랜서. 이것만 믿고 퇴사해도 되는 걸까 고민스러웠다. 그 대표도 나에게 “안정적인 직장 그만두고 저랑 같이 일하는 거 불안하지 않으세요? 저는 사무실도 없고, 4대 보험을 보장해주는 회사도 아닌걸요”라고 했다. 다니던 회사를 한 번도 ‘안정적인 회사’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이 대표의 말을 듣고 보니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회사였다. 어쨌든 한 달이 지나면 정해진 월급이 입금되고, 4대 보험이 가입되니 국민연금도 쌓이고, 매년 한 달 치의 월급이 퇴직연금으로 쌓인다.
하지만 ‘조직 내에서 언제까지 내가 버틸 수 있을까? 꼭 회사를 다녀야만 하는 건가? 새로운 형태로 일을 할 방법은 없을까?’ 같은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다. 마침 내가 메인으로 담당하던 클라이언트 계약 종료를 앞두고 있는 한편, 팀장 승진을 앞두고 있어 퇴사하려면 지금이 바로 적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