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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Jan 10. 2022

보이는 게, 산인지 구름인지

                                 

얼마 전 지방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해 질 무렵  풍경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하늘이 빨갛게 물들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니, 이문세의 붉은 노을의 후렴구가 어느새 내 입가에 맴돌았다.


'후회 없어 저 타는 노을 붉은 노을처럼

너를 사랑하네, 이 세상은 너뿐이야 소리쳐 부르지만

저 대답 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데' 흥얼거리며 

'이 세상은 너뿐이야 소리쳐 부르지만 '생각이 멈추었다. 

젊은 시절 내게 '너뿐이야' 해주었던 그 친구는 잘살고 있는지...

'참 세월 한번 빠르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해 저무는 석양에 넋을 빼앗겼다.


내 흥에 겨워 멍 때리면서 운전을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순간 내 눈을 의심하였다.

갑자기

내 앞에 있는 익숙한 아기자기한 산이 아닌 설악산에서나 보이는 거대한 산이 하늘까지 높아 있었다.


'이곳에 이렇게 하늘을 가릴 만큼의 높고 넓은 산이 있었던가?' 

하늘도 보이지 않도록 큰 산의 위압감이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다가올 줄이야...

등골이 오싹하면서 갑자기 무서웠다.


앞에 높여 있는 산을 내가 뚫고 지나갈 수 있을까? 산 높이를 쳐다보면 더 무서워 내 눈높이만 보고 운전을 하였다.


20여 분을 달렸더니 앞에 보이는 산이 점점 작아지면서  산과 구름이 구분되는 모습이 보였다.

위엄 가득한 산은 산이 아니라 구름이랑 합체가 되면서 마치 거대한 산처럼 보인 것이었다.

산 위에 구름이 걷히면서 늘 봤던 산이 보였고, 그날따라 초승달에 매달려있는 평화로운 금성의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웅장하다 못해  금방이라도 주위를 잡아먹을 것 같은 태산이 나를 압도하여 그 속에 내가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죽을 것 같았다. 

가까이 가보니 산 위에 모여진 구름이 걷히는 모습을 보면서 미리 앞서 겁을 먹는 일이 수없이 많았음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행정복지센터에서 근무해보니 ‘세상에 이런 일이...’ 수도 없이 많이 있다.

풀리지 않을 것만 같은 지역 내 어려움이 늘 내 어깨를 짓눌렀다.


수년 동안 지역사회 내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이용자가 그 위에 더 큰 과제를 가지고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 상황은 나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내 속은 타들어 갔다.

이용자를 만나 재 사정을 하고 나면 ‘이 일을 어찌 해결할고!’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어떻게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 몰라 책상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양손을 이마에 대고, 눈을 감아 본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느새 내 어깨에는 산인지 구름인지 모르는 큰 짐이 올라와 있었으며,

민원창구에 민원인들이 소리가 웅웅 거리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머리를 짜내어도 반복되는 상황을 풀 수 있는 묘수가 없는 듯하였다.

이용자의 삶에 너무 깊숙이 빠져있어 눈에 있는 것만 보면 될 것을 너무 멀리 바라보게 되어 스스로 깊은 구덩이에 빠져 있듯이 좌절했었다.


산처럼 크게 다가오는 장애물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장애물을 제거할 방법들을 사례회의를 거쳐 각 기관이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모색하고, 이용자가 자기결정권을 이용하여 해결할 수 있다는 나의 믿음이 순간 사라질 때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사례관리를 처음 시작할 때의 가졌던 미리 걱정,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해야한다는 강박증을 

이제는 내려놓을 법한데 아직도 노심초사 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여전히.

나는 하수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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