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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Jan 08. 2022

땡땡이 원피스 입고 출근하고 싶은 날,

거의 매일 출장을 다니는 나의 차림은 짧은 머리, 편안한 캐주얼에다 단화를 신고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닌다.

어느 날부터 내 입에서는 거의 매일 “에구 힘들다”가 붙어있다. 

그래서 나는 기분 전환을 위해 평소와는 다른 옷이라도 입고 싶었다.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면서 “오늘 나의 드레스 코드는 원피스다”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얼마 전 남편 몰래 사놓은 까만 땡땡이 원피스를 집어 들고 거울 앞에서 몸에 대본다. 


혹시 ‘오늘 출장이 잡혀 있나? 잠시 망설였다. 

원피스를 입고 출장을 하면 여러모로 불편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방문 시 후원품을 전달하기도 하고, 상담을 하면서 메모를 하려면 바지가 편하기 때문이다. 

잽 빠르게 일정표를 보니 출장이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곱게 차려입고 가는 날 여러 기관이 모여 회의를 하게 되면 뽀대는 날 텐데 하지만 회의 일정도 없다. 


일단 오랜만에 치마한 번 입고 가보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디 챙겨 입고 향수까지 뿌리고 집에서 출발, 엘리베이터도 지하주차장까지 한 번도 안 쉬고 단박에 내려간다. 

오늘 참 운수 대길이네, 랄랄라...


사무실에 들어서니 이른 아침 복지지원팀 미혼의 주무관들이 열 일을 하고 있다.

 “안녕 ~ 오늘, 나의 의상 콘셉트 어때요? 신경 좀 썼는데...”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져 “웬일이냐” 고 한다.

“오늘 내가 말이야 아침부터 기분이 좀 up이네 아싸! 오늘 조증 분위기로 일할 거야” 모처럼 입은 원피스가 단화와도 썩 잘 어울리는 게 뿌듯하다. 


어느 날의 나의 모습이다. 


제발 오늘은 출장이 없기를 바라본다. 

우아하게 사무실에서 컴 작업을 해보리...

하지만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지. 

아침부터 일정에 없는 상담 출장이 줄줄이 밀려든다. 

나는 이럴 때를 대비하여 검은색 바지를 책상 서랍에 준비해둔다. 

화장실에 가서 땡땡이 원피스 안에 얇은 검은색 바지를 입고 가정방문을 간다.


오늘따라 남자 어르신이 혼자 사시는 댁으로 출장이다. 

좁은 골목길을 쭉 따라가 보니 저 멀리 온통 초록이 무성하다. 

병풍 같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중심에 고물이 가득 모여 있는 고물상이 보인다.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겉보기에는 제법 그럴싸한 흰 컨테이너가 보인다. 


햇빛이 강한데 어르신이 고물상 앞에서 꽤나 오랫동안 기다리신 듯했다.

“더운데 뭐하러 나와서 기다리세요.” 

“하도 골목이 많아 내가 나왔지. 길 못 찾을까 봐서.”라고 투박하게 말씀하시더니 어르신이 길을 인도하신다. 

어르신이 이곳에서 산 지 20년 되었다고 하셨다. 


집안 내부로 들어가 보니 너저분한 것보다 악취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마스크까지 했는데 오래된 지린내와 똥 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바닥 장판에 듬성듬성하게 묻은 변과 소변 자국. 오랫동안 청소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그날따라 용변 처리가 급하셨나 보다, 미처 외부에 있는 화장실까지 가기가 힘드셨나 보다.


도저히 바닥에 앉을 수 없었지만 앉기를 권해 그나마 제일 깨끗한 바닥을 촉을 다해 찾아 그냥 앉았다.

‘하필 오늘 땡땡이 원피스 처음으로 입었는데. 내 팔자에 무슨 원피스야!’          

    

“어르신, 여름에 많이 덥고 겨울에 춥겠어요?” 

목소리를 높여 어르신 귀에 대고 말씀드린다. 


“뭐가 불편 혀. 내 집이 제일 이제. 더우면 선풍기 틀고 추우면 난로 틀면 되지….”


“어르신, 지금 가장 불편하고 힘드신 게 어떤 거세요?” 


“당장에 세탁기가 고장 나서 불편 혀. 세탁기가 필요 혀.” 세탁기 필요하니 당장 사오라고 호통을 치시는 듯하다.


나는 모른 체하며 다시 묻는다.

“어르신 혼자서 이렇게 사시는 거 불편하지 않으세요?”

“혼자서 사는 게 제일 편혀. 눕고 싶으면 눕고 배고프면 가져다주는 반찬으로 밥 혀먹고.”

어느새 어르신과 나는 대화 배틀이 시작되기 시작하였다


“임대주택 가실 수 있는데 이사 가시는 것은 어떠세요?”

“아니, 여태껏 살았는데 보상금 받아야 나가지. 1억은 줘야 나가 지.”

“어르신, 여기 개발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하는데 좀 편한 데서 사시고 싶지 않으세요?”

“뭐여? 택도 없는 소리구먼, 뭐가 불편 혀.”

“그런데 왜 저희한테 도와달라고 하셨어요? 어르신이 연락하셨잖아요?” 

“그려도 빨래는 해야 하잖는가?” 

“어르신, 세탁기가 고장 났으면 가까운 수리 센터에 전화를 하셔야죠. 혹시 자녀분들은 안 오세요?”

“뭘 그리 꼬치꼬치 물어 쌌고 그려. 안 도와주려면 얼렁 가.” 


이런 실랑이를 한 시간 정도 하니 아침에 거울을 보면서 ‘아싸! 오늘은 조증이다’ 했던 무드가 우울 상태로 전환되면서 다크 서클이 볼까지 내려온다. 

눈이 푹 꺼져 아침에 총명했던 눈망울이 사라진 지 오래다. 


어르신께 지역에 세탁기를 지원받을 자원이 있는지 찾아보고 다시 방문하겠다고 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내내 깊은 시름에 잠겼다.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가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이 나는 건가?’


그때 노란 야쿠르트 전동 수레가 저 멀리 보였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여사님, 야쿠르트 조그만 거 말고 왕만 한 거로 두 개 주세요.” 

야쿠르트 여사님이 전해주는 왕만 한 야쿠르트 두어 개를 후루룩 연달아 마시자 그나마 떨어진 당이 올라온다. 

아싸! 오늘은 조증은 무슨 조증, 

새로 사서 입고 간 땡땡이 원피스에 할아버지 용변 묻혀 올 뻔한 날…,



그림 최한나 

 글   이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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