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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곰인형 29화

어떤 휴가

by 황규석
2020.12 강원도 정선

엄마에게 보내는 문자를 고민을 했다. 어떤 문자를 보내야 걱정을 덜 하실까 말이다. 매일매일 저녁마다 전화를 해 딸의 안부를 묻는 엄마. 엄마가 놀라지 않게 최대한 가볍게 문자를 보냈다. 아마 조금 놀라시기는 하시겠지만 지금처럼 날 믿어 주실 거다.


엄마는 내가 보낸 문자를 보고 궁금해서 계속 전화를 하리라. 학교의 업무는 당분간 이상이 없도록 어느 정도 마감을 했다. 가정 통신문도 작성을 다 했다. ”안녕하세요. 3반 담임 김은별입니다. 주말에도 우리 어머님 아버님들 잘 아이들과 보내시고요. 아이들이 더위에 지지치 않도록 물을 많이 먹도록 해주시고요. 교과서를 2페이지 같이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예쁜 우리 아이들 사랑합니다.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

“엄마 나 휴가를 냈어. 며칠간 좀 쉬었다 올게. 너무 걱정 말고 다른 선생님들과 같이 가는 거니까 괜찮아. 나도 이제 어른이잖아. 좀 쉬면 머리 아픈 것도 나아질 거니까 괜찮아. 엄마 이 외동딸이 너무 사랑하는 거 알지? 우리 슈가도 보고 싶네. 휴가 끝나고 보러 갈게”


정숙은 딸 은별의 문자를 나중에야 확인했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정숙은 할머니의 목욕을 돕고 있었다. 일을 마치고 문자를 천천히 보고 다른 때보다 더 걱정을 안 했다. 학기 초부터 힘들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 바람이라도 쐬고 오라지 뭐. “저기 아줌마 누구세요?” “어머니 어머니 딸 정숙이, 그새 잊어버렸어? 나 엄니 맏이 숙이잖아 정숙이” “아, 이런 내가 깜빡했어. 숙아, 우리 딸 숙아 고맙다. 근데 우리 손녀는 언제 온냐?” “아 은별이 한번 온다는데 바빠서. 겨울 방학되면 맛있는 호박죽 가지고 온데요. 걱정 말아요” “그래 우리 손녀가 초등학교 선생님이라고 했지” “네 어머니, 내가 볼 때는 애기인데 애가 애를 가르치네요” “은별이가 보고 싶네” “네 저도요. 제가 연락 다시 할게요”


은별은 작은 가방을 하나 둘러메고 지하철역에서 나왔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이 안보였다. 퇴근시간이 다 된 거 같은데 사람들이 이렇게 없다니. 그때 검은 정장을 입은 몇몇의 남자들이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다 은별과 부딪히고 나갔다. “저기요, 죄송합니다.” “잠깐 이거 떨어트리셨어요” 은별은 남자들이 흘린 서류 몇 장을 주워 전달했다. “감사합니다” 남자들이 서류를 받고 고개를 꾸벅거리고는 급히 길을 떠난다.

은별은 지도를 보고 두리번거리며 걸어 나갔다.


골목을 돌자 노란 미니버스가 보였다. 버스 입구에 어깨를 아까 부딪혔던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 둘이 보였다. 그중 키가 작은 남자가 은별에게 손을 들었다. “아, 여기요. 여기 김은별 선생님이시죠?” “네 그렇습니다” “아까 저희가 늦어서 금히 달려가가 그만,,. 감사합니다” “어서 타시죠” “네 괜찮습니다.”

버스에는 나이가 지긋한 남자 선생님 한 분과 은별이 또래의 남자 선생님 두 분이 뒷자리에 타고 계셨다. 운전석 옆에는 은별의 어머니뻘 되는 선생님도 타고 있었다. 은별이 목례를 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네 반가워요. 어서 않아요.” 검은 옷을 입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인 키가 큰 분이 다른 여자 선생님 두 분을 버스에 태우고 일행은 출발했다. 작은 단체 휴가여행. 선생님들만의 짧은 휴가여행. 모두가 휴가를 가는 설렘이 얼굴에 느껴졌다. 그리고 홀가분하면서도 무거운 어떤 침묵이 버스 안에 감돌았다.

저녁을 먹을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배가 고프지 않은 게 이상했다. 은별은 차에 앉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떠보니 버스는 엔진 소리도 나지 않고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었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뿌연 안갯속을 달리는 버스. 검은 정장의 남자가 번갈아 운전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눈을 뜨려고 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은별은 가만히 그 작은 몸을 등받이에 기댔다. 한동안 그렇게 멀리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여보, 은별이 문자 봤어” “무슨 문자” 정숙은 남편의 전화를 받자마자 되물었다. “아니 무슨 휴가를 간다고 그런 문자 말이야” 은별의 아빠가 의심 섞인 말투로 말했다. “아 은별이 선생님들이랑 어디 여행 간다고 휴가 간다는데...” “당신은 은별이가 전화를 받아야지 말이야. 전화가 안 돼..” “전화가 안 터지는 데 있나 봐” 정숙은 오히려 태연했다. “당신은 참 한가하네. 얼른 찾아봐” “좀 쉬게 나퉈 여보 호들갑은 이제 얘도 아니고... 전화 오겠지 기다려봐”


“그래서 우리 빈이가 은별 선생님을 너무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하지 뭐예요.” “아니 너무 칭찬해 주셔서 저야 뭐 아이들이 좋아서요.” “자 이건 작은 선물입니다. 받아주세요 선생님” 빈이의 엄마가 작은 쇼핑백을 건넸다. “아니 뭘 이런 걸... 이런 것 받을 수 없어요.” “받으세요” “아니에요” 억지로 박은 쇼핑백을 돌려주느라 옥신각신했다.


웃음과 박수소리에 은별은 잠에서 깨었다. 갑자기 버스 안은 활기찬 분위기가 돌았다. “우리 은별 선생님 눈을 뜨셨구나. 좀 잤어요? 너무 피곤하셨나 보다” “네 죄송합니다. 김은별입니다. 서울 이서 초등학교 1학년 3반 담임이고요. 이제 2년 차 아직 애송이 선생님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모두가 박수를 쳤다.

“제가 여기서 제일 연장자군요. 전 곧 정년을 앞두고 있는데 너무 힘들어서 여러분들과 이렇게 잠시 쉬러 왔답니다. 선생 32년 차입니다. 가족과 떨어지는 게 아쉽지만 이 길 밖에 없는 거 같아요.” 모두가 소개를 하고 나서 검은 정장의 남자가 가운데 서서 흰 서류 봉투에서 종이를 꺼냈다. 그리고 담담하게 읽어 내려갔다.


“선생님들 그동안 애쓰셨습니다. 이제 고생은 끝나셨고요. 정말 미안하게도 이 휴가를 통해 그동안의 고통에서 벗어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도 이제는 이별 아닌 이별을 하게 되었네요.”

“은별아... 은별아 눈떠!!! 눈을 뜨라고” 은별의 아빠가 비명을 질렀다. 영안실에 누워있는 은별은 평온한 얼굴이었다. 손을 잡아보니 아직까지 체온이 남아있는 듯했다. 뒤이어 달려온 은별 엄마 정숙은 은별의 얼굴을 잡고 오열하였다. “은별아, 내 딸 은별아.... 이게 어떻게 된 거니....” 은별 엄마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모든 선생님이 창가에서 가족들의 우는 모습을 보고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은별은 그제야 자기가 어디로 왔는지 실감을 하게 되었다. 쓰러진 엄마의 손을 잡으려 휘저을 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키가 작은 정장의 남자가 말했다. “선생님들. 선생님들은 이제 하늘나라의 아이들을 가르치게 될 것입니다. 너무 걱정 마시고요. 여기서도 지금처럼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살펴주세요. 우리 차 출발합니다”

은별은 버스 뒷 창가에 앉아 일곱 빛깔 무지개를 통과하는 버스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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