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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곰인형 25화

마중

by 황규석

“어디 가서 마주치지 맙시다 정말요. 내 성질 더러운 거 알잖아요. 그땐 나도 몰라 당신 칠지도 몰라”

“너 이 새끼 어디서 형한테 그런 말버릇이야, 아무리 내가 능력이 없어도 니 형이야 인마!”

“형은 개뿔이나! 형 같아야 형이지 이제 다 죽어가는데 나타나서 뭐 집문서는 지 앞으로 하자고?”

“네가 이제 조금 먹고살만하니 아주 형 알기를 우습게 보네 이 세끼야 형이 너 공부한다고 돈 못 벌어도 아무 말도 안 했어”

동순은 눈을 감고 있었지만 큰 아들 용탁과 막내 용기의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었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 왔음을 느꼈다. 간암 말기. 5년 전 먼저 간 남편이 술에 절어 간암으로 갔는데 자신도 간암이라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의 전 재산 작은 빌라는 원래 큰아들 몫으로 줄려고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혼을 하고 혼자 사는 큰 아들에게 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병시중을 든 것은 셋째와 둘째였다.

“엄마, 나 왔어. 좀 어때 우리 엄마 말 좀 해봐 여기 엄마가 좋아하는 딸기 좀 사 왔어. 봐봐 아이고 우리 엄마 고생만 하고 이게 뭐야.... 엄마....”

둘째 용희가 동순의 침대 맡에 앉아 엄마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그래도 딸이 좋구나. 동순은 말을 하고 싶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참았던 요기가 딸 앞에서 간절하다. 간신히 눈을 껌뻑였다. 그래고 살은 몸이라고 아들 앞에서는 아직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하기가 그렇다.

“참, 엄마 기저귀 갈아야지. 오빠하고 용기는 어디 갔어. 둘이 좀 예민한데 너무 걱정 마. 다 잘 될 거야. 자 보자 조금 들고 자 그렇지 그래도 오늘 소변봤네... 다행이야, 내가 오늘은 자고 갈 테니까 알았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동순은 오래간만에 깊이 잠이 들었다가 서늘한 기운에 잠이 깼다. 치렁치렁한 혈관 줄 그리고 하얀 우유가 담긴 비닐팩. 팔뚝은 검은 멍이 잔뜩이었다. 그런데 왜 몸이 이렇게 개운하지. 병이 다 나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딸 용희는 1층에 갔는지 보조 침대에 작은 핸드백만 보였다. 주말에 가득 찬 4인실 요양병원 병동은 이제 자신과 나이롱환자뿐이었다. 나이롱환자는 근처 집에 갔나 보다. 90대의 치매 환자 김복순 할머니는 밥도 잘 먹고 아주 건강했는데 그제 갑자기 눈을 뜨지 않았다. 동순이는 갑자기 군대 간 손자가 보고 싶었다.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 아이를 볼 수 있으려나.


새벽 2시 5분. 갑자기 창문이 흔들거렸다. 3층 창문이 조금 열린 것이 보였다. 인기척에 정면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아니 이게 누군가. 박인수. 먼저 간 남편이 불쑥 앞에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여... 여보! 아니 어떻게 여기 왔어요?”

“잘 있었는가. 오랜만이네 자네 보고 싶어서 왔지 뭐 그래 좀 괜찮은가?”

“그냥 뭐 그래요, 그래도 많이 좋아졌어요. 당신은 그래 어때요? 거기는 괜찮아요”

“나? 나야 뭐 똑같아. 월림 할머니 모시고 잘 있지. 죽은 누나도 보고 아버지도 만나고, 재미있어”

“어머니는 잘 계시죠? 당신 밥을 잘 먹고 다녀요? 난 그게 늘 걱정이었어요”

“나야 잘 먹고 있어. 할머니 밥을 내가 해주는데 원래 내가 요리를 좋아하잖아”

남편은 갈 때 모습 그대로였다. 시어머니는 동순을 그렇게 구박을 했다. 당신도 그렇게 힘들게 살았으면서 왜 그렇게 큰 아들 인수의 며느리를 괄시하고 무시했는지 모른다. 아들 둘에 딸 하나 낳아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정말 열심히 일을 해서 키워냈는데 말이다. 지들이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배우고 싶다면 끝까지 가르칠 생각이 있었다. 택시 운전하는 남편 인수는 착하기는 한데 주변머리가 없었다. 사고를 종종 냈다. 술을 좋아했지만 싸움은 벌이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모든 뒤처리는 자신이 처리했다. 생선을 떼다 팔고 도축장에서 돼지 피와 소 피를 받아 선지를 만들어 팔았다. 아이들은 그녀가 가져온 살점이 조금 붙은 돼지뼈를 끓여 묵은 김치를 넣고 끓여주고 일을 나갔다. 큰 사고 없이 건강하게 자라준 아이들이 그저 고마웠다. 이제 남편도 가고 홀가분히 좀 살려고 했는데 이렇게 몸져누운 것이다. 그리고 죽은 남편까지 나타났다.

“미안해.. 여보 고생만 시키고 내가 그 말하려고 왔지”

“미안하기 뭐가 미안해. 당신도 할 만큼 했고 뭐 원망하지 않아요”

“그래 그리 말하니 고마워.... 이제 우리 다시 만나면 더 재밌게 살자고요 조금만 기다려요”

“저기 그래서 말인데 나랑 같이 갈까? 어차피 갈 거면 지금 말이야...”

“지... 지금 가자고? 글쎄 나 아직 준비가 덜 됐는데... 지금 갈까? 어떡하지...”

“애들은 이제 애들 지 인생 자기가 살아야지 언제까지 여보가 챙길 거야... 가서 쉬자고”


계단에서 용희의 소리가 들렸다. 아이스커피를 들고 들어오는 용희. 용희의 아버지 인수가 동순의 옆에 앉아 있는데 보이지 않는지 엄마의 상태를 살핀다. 뒤이어 막내 용기가 역시 커피를 들고 들어온다. 동순은 가만히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릿속으로는 지금 가야 하는가 고민 중이다.


“누나, 형 이제는 안 볼 거라고 말했지? 정말 어이가 없어서 내내 안 보이다가 나타나서 집타령이잖아”

“그래, 알아 그런데 용기야 저기, 할 말이 있는데 엄마 집으로 내가 대출을 받은 게 있어서... 미안하다”

“뭐? 대출이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대출이라니... 너 알다시피 내가 이혼하고 늦둥이 아들 하나 남은 거 대학 보내고 좀 어려웠거든... 너한테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래도 그렇지.... 그래 얼마나 대출받았어요? 여기 지금 병원비도 많이 나올 텐데..... 누나도 참”

“3천 내가 천천히 갚아나갈게.... 미안해. 지금은 우리 어머니만 살리자. 좀 더 사셔야 하잖아”

“병원비도 이번 달 3백만 원 정도 나온 거 같아... 지난달 까진 됐는데 어떻게 하냐고 참.... 나“

엄마 동순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작년 전에 둘째가 신분증을 달라고 하고 사인을 해라 해서 해줬는데 그게 대출을 위한 거였나 보다. 동순은 자신을 손을 잡은 아이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남편 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지금 가는 것이 아이들을 위하는 길이었다.


동순은 마지막으로 아이들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그렇다 내가 가는 것이 아이들을 살리는 길이다라는 결심이 들었다. 용희가 새로운 기저귀를 갈려고 준비하려는 순간이었다. 동순은 꼼짝없이 누워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을 떨군다.


”야! 용기 야 인마 나와! 네가 이 새끼야 형을 알기를 뭐 같이 알아?! 너는 뭐 한 게 있어. 너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았잖아. 부모님 등골 제일 빼먹은 게 너야 인마! “


보호자 침대서 자던 용기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병실을 나가려 신발을 신는다. 용희가 그런 용기를 잡는다. 용기는 뿌리칠까 하다가 다시 누워 작은 담요로 얼굴을 뒤집어쓴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엄마 동순은 일상복으로 갈아입고 침대를 스르르 빠져나왔다. 동순은 자신의 앙상한 거죽을 본다. 주름 진 자신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용기의 뺨을 어루만진다. 일층 원무과 의자에 앉아 자는 용희의 손도 마주 잡아 준다. 밖에서 남편 인수가 가방을 메고 있다. 흰 마차 한 대가 서있다. 동순은 마차에 오르려다가 멈춘다, 병원 옆 편의점에 술에 취해 잠든 용탁을 보았다. 용탁의 등을 어루만져준다.

이윽고 인수의 흰 마차에 올라탄다. 저쪽에서도 마차에 오르는 50대 남성이 보인다. 앳된 여자아이도 보인다. 마차는 손님을 태우고 가볍게 하늘로 날아간다. 그렇게 밤 별빛이 떨어지는 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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