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영화 시리즈(3) - 마지막
원제: UN CARNET DE BAL
감독: 줄리앙 뒤비비에
주연: 루이 루베, 마리 벨
줄거리---
돈 많은 과부 크리스틴, 그녀는 호숫가 큰 저택에서 쓸쓸히 지내고 있었다. 그러한 그녀에게 20년 전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수첩이 발견된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사랑받던 10대 때의 그리움과 낭만이 담겨있었다. 그녀는 그 수첩을 들고 도시로 나온다. 맨 처음 찾아간 사람은 조르주. 그는 피아니스트였다. 그녀의 행장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조르주의 노모가 그녀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리고 식사를 함께하게 된다.
"조르주가 곧 오게 될 거예요. 여전히 예쁘군요."
그 노모는 호들갑을 떨었지만 예의 있게 행동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렀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하녀에게 꾸중을 하지만 그 하녀는 시큰둥한 표정이다.
"저 여자는 좀 이상하죠, 어서 드세요. 크리스틴."
그러나 노모가 정신이상자였다. 조르주는 벌써 수년 전에 병으로 죽은 것이다. 그러나 노모는 그의 사진을 닦고 아들의 방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던 중이었다. 크리스틴은 실망하고 다른 친구를 찾아 나선다.
조그만 시골 마을의 알렝네요 도미니크 신부. 그는 교회의 성가대를 지도한다. 한참만에 크리스틴을 알아보지만 아주 친절하다.
"욕심을 버렸지요, 주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평화와 자유를 얻게 됩니다."
개구쟁이들의 합창을 성실히 지도하는 도미니크 신부. 배도 알맞게 나온 아저씨의 풍채지만 온화한 모습이다. 지난 일을 자연스럽게 얘기한다. 크리스틴은 위안을 얻고 존경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녀는 다시 알프스산의 산안내자 에릭을 찾아간다. 아직도 젊어 보이는 에릭. 그는 산을 사랑하고 자연을 벗하며 지내고 있다. 함께 스키도 타고 산장에서 오붓하게 지낸다. 그러나 그는 곧 나가봐야 했다. 조난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나가야겠구려. 내일 떠난다니 섭섭하오"
"안 나가면 안 되겠어요?"
"하지만 나는 산을 사랑하오. 나의 도움을 원하는 사람이 있오."
크리스틴은 그의 자연에 대한 사랑과 자연에 대한 애착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섭섭한 마음을 달랜다.
조그만 시골 면장일을 하는 프랑소와 빠뚜세를 찾았을 땐 그는 그의 결혼식 준빌 한창 바쁠 때이다. 신부는 그의 하녀였던 뚱뚱한 여자. 빠뚜세 자신도 배가 나온 배불뚝이다. 빠뚜세는 크리스틴을 반갑게 맞이한다. 큰 성공은 못했지만 그는 활달했고 재미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양아들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하고 근심스러워하고 있었다. 곳간에서 떠도는 망나니 같은 아들이 돈을 요구하자 손지검을 해서 사람들이 달려와 뜯어말리기도 했다. 그는 그러나 기본적으로 정이 많은 사람이어서 크리스틴에게는 좋은 친구였다.
다섯 번째로 찾아간 사람은 낡은 건물의 꼭대기에 위치한 곳에 사는 작은 체구의 치과 의사였다. 그는 크리스틴을 한참만에 알아보았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그는 기억력이 갈수록 흐려지는 상태였다. 그 음침하고 허름한 건물에서 이를 고치거나 빼주고 먹고 산다. 그러나 벌이가 신통치 않다. 함께 식사하던 부인은 막 욕을 하고 남편의 흉을 본다. 도시의 빈민굴에서 스푼을 든 그녀는 그가 애처롭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 의사는 낙천적이다. 갑자기 그가 고통스러워한다. 닥치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진다. 그리고 비명을 지른다. 그의 부인은 무서워 어쩔 줄을 모른다.
크리스틴은 그가 간질병으로 고생하고 있고 가끔 발작을 일으킨다는 것을 첨을 알게 되었다. 한쪽 눈이 실명된 그는 난폭해지면서 참을 수 없는 듯 요동을 쳤다. 서랍에서 권총을 꺼내 총알을 넣는다. 그의 부인은 새파랗게 질려서 크리스틴의 뒤에 숨었다가 다시 이리저리 도망 다닌다.
"제발 그만둬, 여보!.... 남편을 좀 말려주세요...." 아내가 다급하게 크리스튼의 도움을 요청한다.
"제발 돌아가 크리스틴, 나가!" 크리스틴은 그 무섭고 어두운 집에서 도망치듯 나온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사람은 키가 크로 마른 사람이었다. 그의 직업은 남자 미용사. 여성들의 머리를 다듬는다. 그는 요즘도 트럼프를 즐기며 재미있는 말을 늘어놓는다. 크리스틴은 오랜만에 웃어본다. 그는 여전히 젊고 아름다워 보이는 크리스틴과 무도회에 나간다. 젊었을 때처럼 회색 왈츠를 부담 없이 즐겁게 춤춘다. 그의 춤솜씨는 녹슬지 않았다. 그러나 크리스틴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이제는 돌아가야겠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섭섭해하는 남자 미용사 친구를 남겨 두고 자신의 별장으로 급히 돌아온다. 그리고 그녀는 전담 변호사인 브레몽 씨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크리스틴: "젊음은 날 배반했어요. 환상, 후회였어요. 과거는 미래에게 약속을 지켜주지 않았어요."
부레몽: " 마지막 기회가 있습니다. 부인, 하트 에이스 제라르의 주소가 있습니다. 이 근처입니다."
크리스틴: "다시 누군가 만나보고 싶지 않아요...."
남동생인 제라르의 아들 쟉크가 "대모님!"이라고 크리스틴을 부르며 뛰어온다. 어린 줄만 알았던 쟉크가 벌써 무도회에 갈 나이가 되었단다. 크리스틴은 작크의 옷매무새를 살펴주고 독백하듯 내뱉는다.
"첫 번째 무도회는 아주 중요하단다. 그리고 그 이상은 아냐"
그릭 이어서 하얀 커튼에 환상적인 그림자들이 춤춘다. 회색 왈츠와 함께. 발걸음을 옮기고 치마를 휘말리면서...
감상---
크리스틴 역의 배우 마리 벨은 드골 장군의 훈장을 받았단다. 레지스탕스(나치 저항운동)의 공로로 말이다. 마리 벨의 연기는 차분하고 호소력이 있었다. 한 여인이 중년에 접어들어서 젊은 시절의 친구들을 찾아다녔다는 이야기를 무리 없이 이끌어 갔다. 그리고 여기에 나온 피에르 블랑샤르, 페르 낭델, 레위, 루이 주매 등도 쟁쟁한 배우라고 자막에 나왔다.
이 작품에서 전달하려는 것은 삶의 진실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모두가 젊은 시절의 낭만과 꿈은 나이가 들수록 잃어버리고 깨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때의 추억과 설렘은 가슴속에 영원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나리가 들면 알게 되고 느끼게 되는 인생무상의 심정이 영화 곳곳에 배어있었다. 어릴 쩍 같이 꿈꾸던 친구들의 커서 각자의 삶을 살면서 다른 사고와 역할을 하고 가족을 이룬다. 그녀는 꿈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현실에 꺾어진 이상을 보았을 것이다.
크리스틴은 미망인이 된 자신보다 그들이 나름대로 젊고 활기차고 행복하리라고 생각했다. 젊었을 때의 꿈처럼. 그러나 현실은 친구들을 돕지 않았다. 절대 만만하지 않았다. 물론 방해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커가면서 부딪히는 문제를 안고 또 가정을 이끌면서 우리들의 생각과 꿈은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 아닐까. 이 영화는 졸업생이나 주부들, 중장년층에 알맞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들을 위한 동화라고나 할까?
다시 한번 흑백영화의 생명력은 아주 길다는 것을 느꼈다. 사람은 모두 지나간 과거의 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시대가 변하고 사회상이 달려져도 기본적으로 느끼는 보편적 감정이란 같기 때문이리라.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무도회라는 설렘에서 한발 물러나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여유가 허락된 것은 다행이었다. 불행을 맛보고 어렵게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 비해선 상대적으로 그녀에게 행운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직 중년이니까 남은 삶을 보다 윤기 있고 활기차게 해 나가는데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는 그림자가 춤추는 장면은 우리들의 잊혀가는 꿈과 설렘 그리고 친구들의 흔적을 떠올리게 한다. 희미해진 친구들 그리고 낡은 수첩을...
-월간 영화세상 제4호(199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