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와 벌(Crime et Chatiment)

프랑스 걸작 영화 시리즈(2)

by 황규석
6605c660e5397ad278682a89d6d4ead8.jpg

일러두기:

유럽의 예술성 짙은 명화 3편의 영화 감상문이 이번부터 3회 발행됩니다. <죄와 벌>, <전원교향악>, <무도회의 수첩) 이 3편은 1987년 11월 KBS1TV <명화극장>에서 방영되었던 흑백 영화를 보고 고3 때 쓴 영화 감상문입니다. 다소의 실수가 있더라도 너그러이 봐주십시오. 프랑스 영화를 이해하고 유럽 예술영화의 진미를 느꼈던 기회였습니다. 당시 영화를 보며 메모하면서 썼던 감상문을 '영화세상' 회지 초기에 옮긴 글입니다.


죄 와 벌(Crime et Chatiment)


감독: 조르주 랑페 원작: 도스토옙스키 각본: 사를르 스파로

주연: 장 가벵(겔르), 마리나 블라디(릴리), 울라 지콥신(니꼴), 베르나르 블레에(앙뜨완느), 로베르 오셍(르네), 리노 벤추라

제작: UIES-BROKEN 프로덕션 제작:줄리 보르콘 촬영: 클로드 르느와르 음악: 모리스 티리에


줄거리:


르네 부르넬은 20대 젊은 청년이다. 그러나 젊은 그에게는 젊은 패기와 꿈을 찾아볼 수 없다. 대학을 나왔으나 취직이 안돼 싸구려 하숙방에서 생활을 해야 했다. 그에게 밥벌이는 3류 추리소설을 번역해서 그때그때 일당을 받는 일이다. 그는 생활에 심한 곤란을 겪으며 삼에 대한 증오와 회의로 무기력하게 지낸다. 그에게 당장 빵을 얻을 수 있는 일은 번역을 하는 일이지만 요즘은 그나마 그 일마저 구하기 어렵다. 그의 친구 지팡파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생활비를 꾸기도 어렵다. 밀린 방값, 구차한 주변을 둘러본다. 그의 동네 전당포에는 오르베라는 노파가 있다. 등이 굽고 도수 높은 안경을 쓴 이 가난한 동네에 익숙해서인지 인색하고 여간 눈치가 빠르게 아니다. 여러 번 그 낡은 2층의 전당포를 이용한 르네도 다시 한번 조그만 반지를 가지고 간다. 그러나 여전히 돈을 빌리기가 쉽지 않다.


그 노파의 인색함에 쩔쩔매는 말수가 적은 내향적인 성격의 청년 르네. 그에게는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의 여동생 니꼴의 결혼에 관한 문제다. 니꼴의 결혼 상대자는 40대 후반의 이마가 벗어지고 목소리가 굴은 좀 뚱뚱하게 살이 오른 사람이다. 르네의 어머니는 딸의 상대인 그 중년 남자의 재산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 중년의 대머리 신사는 앙뜨완느라고 하는 사람으로 시내 중심가에서 보석상을 하는 돈이 좀 있는 남자다. 르네는 여동생의 결혼이 늙은이 같은 나이가 든 사람과 하는 것이 싫다. 또한 어머니가 남자의 재산에 뜻을 두고 있다는 알고는 두 사람의 결혼을 무척 반대한다. 왜냐면 어떠한 동정도 받기 싫기 때문이었다. 그는 동생이 젊은 사람과 마음이 맞아서 결혼하기를 바란 것이다.


"난 니꼴이 너무 좋아요, 날 무섭도록 자극시키니까.." 대머리에다가 나이가 든 앙뜨완느의 능청 거리고 ㅇ욕정이 가득한 말에 르네는 그를 더욱 증오하고 경멸하게 된다. 뚱뚱한 앙뜨완느는 그의 말에 괜찮다고 말하고 어린 여자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 아들인 르네의 이런 눈에 보이는 행동에 어머니는 당황한다. 르네의 마음은 점점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르네는 칼을 들고 전당포를 털러 간다. 그러나 행동으로 옮기기는 얼마나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르네. 결국 강도짓을 못하고 되돌아오고 만다. 그의 머릿속에는 가난과 여동생의 문제가 골치 아프게 자리 잡는다.


르네는 다시 결심을 했다. 그리고 전당포에 다시 간다. "문 좀 열어 주세요. 제게 회중시계가 있어요. 오래된 거예요. 은으로 되어 있어요..." 전당포의 주인인 오르페 노파는 그 예의 갈라진 눈을 날카롭게 치켜뜨고는 작은 문을 열고 물건을 확인하고 르네를 들여보낸다. 르네는 긴장해서 엄청 떨고 식은땀이 흐르면서 떨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돌변해 칼을 대고 노파를 구석으로 몰아세운다. 그 오르페 노파는 공포에 질린 외마디 비벼과 함께 땅바닥에 진득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죽게 된다. 르네가 살인은 한 것이다.


그는 전당포 서랍 등을 뒤져서 값이 나가는 물건을 골라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자신이 가져온 회중시계도 도로 뺏어간다. 그때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 깜짝 노란 르네. 한 손님이 돈을 빌리러 온 것이다. 인기척에 놀라 숨을 멈춘 르네는 미동도 하지 못하고 문 뒤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숨는다. 그런데 노인이 흘린 피가 문틈으로 흘러나가려고 한다. 르네는 깜짝 놀라 종이를 밀어 넣어 흡수시킨다. 사람이 없는 줄 알고 돌아가는 손님의 뒷모습을 확인하고 르네는 전당포에서 조심스레 나온다.


르네의 친구 지팡파느는 르네의 여동생 니꼴과 이야기를 나눈 후 호감을 가지게 된다. 니꼴도 부자인 앙트완느와는 다른 지팡파느에게 참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한편 르네는 선술집에 갔다가 어느 술주정뱅이에게 술을 사준다. 알코올중독자인 그 사람의 집에 끌려가다시피 초대를 받고 간다. 허름한 2층집. 들어가자마자 들리는 아내의 욕설. 르네는 작은 동정심이 생겨서 돈을 조금 탁자에 몰래 놓고 나오는데... 그때 그 술꾼이 계단 난간이 낡아서 굴러 떨어져 죽게 된다.


르네는 죽은 알코올중독자의 딸 릴리가 있다는 항구의 사창가를 배회하다 그녀를 만나 아버지의 죽음을 알려준다. 한편 앙뜨완느는 니꼴이 차츰 자신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앙뜨완느는 르네의 하숙방에서 우연히 회중시계를 줍는다. 전당포 노파의 살인 사건 수사는 이미 시작되었다. 노련한 경찰 강력계의 겔레 수사반장은 의미 심장한 미소를 띠며 르네를 주시하게 된다. 르네는 자신이 범인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제삼자처럼 술주정뱅이의 장례식에 참석한 르네는 앙뜨완느와 만난다. 그는 르네에게 시계를 미끼로 타협하자고 제안한다. 겔레 반장의 집요한 추적과 여동생 니꼴의 약혼자인 앙뜨완느의 협박에 시달리게 되는 르네. 그의 작은 희망과 위안이 되는 일은 릴리와의 만남이다.


릴리는 이내 남자친구인 르네가 살인을 했다는 것을 알아버린다. 릴리를 르네와 만난 앙뜨완느는 다시 진정한 사랑을 릴리에게서 느끼게 된다. 소원해진 니꼴 대신 릴리와 사랑에 빠진 앙뜨완느는 르네를 바닷가 포구로 불러낸다. 그리고 증거가 되는 회중시계를 바다로 던져 버린다. 앙뜨완느는 르네의 여동생 니꼴을 단념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니꼴을 찾아가 말한다. "오빠를 구하고 내게 영원한 안식을 줘"라고 말한다. 권총을 든 니꼴. 그러나 앙뜨완느는 면도칼로 자살은 한다. "내가 죽인 것은 나 자신이다"라고 말하며 죽은 앙뜨완느는 욕정에 탐닉했던 자신의 생을 죽음으로 반성한 것이다.


르네는 릴리와 도망할 것을 제안하지만 릴리는 르네에게 자수할 것을 끈질기게 권유한다. 르네는 릴리의 사랑스러운 진심 어린 설득에 자수를 결심한다. 르네가 자수를 하러 가자 심증을 굳히고 있던 겔레 반장은 그런 르네의 자수를 반기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함박 눈이 내리는 겨울밤 호송차에 오르는 르네. 조금 멀리서 머플러를 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릴리는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안타까움과 사랑의 눈물을 흘리고 만다. 멀어져 가는 호송차를 보고 다짐한다. "기다리겠어요. 르네..."


감상:

<죄아 벌>이라는 소설책 이름은 많이 들어봤다. 그리고 그 내용은 안 읽어봤지만 중세시대의 이야기로만 추측했었다. 1956년 작품인 <죄와 벌>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각색했다. 주인공 르네는 시대가 자기의 이상과 맞지 않고 생활의 아픔을 뼛속 깊이 느끼는 인물이다. 그가 죄를 저지른 것은 자신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 점도 있지만 사회에도 원인과 문제는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흑백영화라서 근런지 몰라도 심리묘사가 뚜렷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명암이 짙은 얼굴의 우수와 고뇌는 관객인 우리 청년들의 마음도 어둡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적은 돈이라도 얻기 위해 나름대로 착실히 일했던 청년의 살인은 우리가 동정이 가는 부분이면서도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은 끔찍하고 무서웠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공포심도 가지게 되었다. 다른 인물 앙뜨완느는 자신의 욕정을 젊은 니꼴을 통해 만족하려고 했다. 그러나 조금 비굴하며 두꺼운 이면 속에서 한가닥 양심이 있었다. 모든 것은 체념하게 될 때의 모습은 그를 연민하고 측은하게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를 반성하고 자살을 택하게 된다.


"항거하기 위해서 영웅적 행위를 한다면.... 내 오만함이야 난 인간의 비참함에 머리를 숙이겠어"라는 주인공 르네의 말은 사회의 어두운 한 단면을 보여준다. 알코올중독자의 딸이자 르네가 사랑에 빠지는 여인 릴리의 모습은 차분하고 아름답게 묘사된다. 그녀의 애정 어린 충고로 르네는 사랑에 빠지고 결국 자신을 배반하지 않게 되었다. 프랑스의 어두웠던 지난 시절의 사회상에서 벌어진 숙명적 사건을 보여준 영화였다. 그들 배우의 연기는 단호하고 분명했고 잔기교가 없어서 과장 되고 너무 요령을 피우는 듯한 한국의 배우들이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르네가 죄인 호송차에 압송되기 직전에 겔레 반장이 말한다.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용서하십시오, 질서는 필요합니다" 예리한 백발의 겔레반장은 나약하고 이중적인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 본 것이다. 그가 스스로 자수할 것임을 알았고 기다려주었으니까 말이다. 질서! 부자와 가낭한 사람 간의 질서도 질서다. 남녀 간의 사랑도 질서다. <죄와 벌>은 흑과 백의 화면에 인간의 삐뚤어진 욕망의 행동과 반성을 담아낸 의미 있고 감동적인 영화다.

-영화세상 제2호(1993.10)-



ce6b2b5f8703a9716b3b51f5e6a910eb.jpg






이전 10화전원 교향악(La Symphonie Pastor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