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흑백영화시리즈(1) 이 여자는 내 여자요! 내 여자.....
P.S
고3때인 1987년 겨울 KBS 명화극장에서 방송된
시리즈 3편을 보고 적은 고3 남학생이 적은 감상문
제작: LES FILMS GIBE 프로덕션(1946)
원작: 앙드레 지드 감독: 쟝 드라노와 음악: 조르쥬 오릭 미술: 르네 르누 촬영: 아르만 디라르
주연: 미셀 모르강(1920년생, 1946년 '전원 교향악'으로 칸느 영화제 여우주연상, '안개 낀 부두 악녀' 등 출연), 피에르 브랑샤르('죄와 벌'로 베니스 영화제 남우 주연상, '무도회의 수첩' 등에 출연)
추운 겨울 어느 날 시골 마을에 눈이 무릎까지 쌓였다. 마르텡 목사(P. 브량샤르)는 어느 노파의 임종을 지켜본다.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이었다. 그는 한 고아 소녀이며 할머니의 손에서 막 키워진 더럽고 지저분한 모습과 옷차림을 한 계집아이를 찾기 위해 집안을 살핀다. "웨웨웨웨 버지버지 버디버디...: 그가 죽 그릇을 들고 나와 외친다.
이 소리를 듣고 저 언덕 아래에서 로봇처럼 걸어오는 아이. 머리카락은 제멋대로이고 누더기옷에 코를 찌르는 악취, 게다가 앞을 보지 못하는 기구한 운명의 이 아이는 거의 보살핌이 없이 커서 동물적인 반응을 보인다. 냄새를 맡고 찾아온 아이를 목사는 데려가 키운다. 그는 아이한테 여러 가지를 알려주고 교육시킨다. 그에게 있는 2남 1녀의 친자식에게 쏫은 애정 이상으로 돌본다. 어느새 성장하여 어엿한 아름다운 숙녀가 되었다. 이름도 지어줬다. 제르뜨리드라고.
목사의 장남 쟉크는 도시에 나가서 오르간 공부를 하고 돌아온다. 그의 애인은 까스떼랑이라는 부자의 딸 삐에뜨. 아들 쟉크가 마을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는 모습은 정말 멋있고 아름답다. 쟉크는 아버지가 주워와 키운 맹인 숙녀인 제르뜨리드와 인사한다. 함께 춤도 춘다.
제르뜨리드: ".... 저는 춤을 못 추는데요"
쟉크: "괜찮아요. 나만 따라 하면 돼요..."
가벼운 왈츠가 흐르고 둘은 자연스럽게 발을 맞춘다. 이 모습을 보고 놀라는 목사와 삐에뜨. 쟉크는 제르뜨리드에게 친절하게 오르간도 가르쳐준다. 애인인 삐에뜨와는 달리 순진하고 맑은 영혼의 제르뜨리드에게서 사랑의 감정이 싹트게 되는 쟉크. 아! 그러나 그것이 불행의 전주곡이었음을...
삐에뜨는 애인인 쟉크의 이런 분위기를 알고 실의에 빠진다. 목사인 양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과 핸섬하고 감동을 주는 오르간 연구자 쟉크의 이성의 사랑을 느끼는 제르뜨리드. 그녀의 가슴에 그런 혼란과 심적 동요가 소용돌이친다. 쟉크는 아버지에게 제르뜨리드의 수술을 하면 눈을 볼 수 있다고 듣고 그녀의 수술을 요청한다. 그리고 그녀가 눈을 떴다. 병실에 찾아온 쟉크와 그녀는 깊은 포옹을 한다. 아버지에게 쟉크는 제르뜨리드와의 결혼은 청한다. 그러나 아버지 마르텡은 극구 둘의 결혼을 반대한다.
그녀가 교회의 예배에 참석한다. 처음 모습을 보는 아버지 마르텡 목사와 마을 사람들. 그리고 그녀는 냄새와 손길로 함께 자라온 여자 친구들을 알아맞힌다.
"주 예수그리스도여! 그에게 사랑이 가득 차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육신의 눈과 성령의 눈이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빛이 되어 잠 깰 때 주여 오셔서 우리를 축복해 주시옵소서. 주님의 사랑 안에서 언제나 살게 하소서. 아멘!" 그녀의 기도는 고귀했다.
쟉크는 삐에뜨가 제르뜨리드의 수술을 도운 것은 자신이 둘 중 한 사람을 선택하라는 뜻도 담겨있다고 말한다. 쟉크의 결혼 승낙 요구에 목사는 "난 오직 그 애를 자애(慈愛)로만 대했다"라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일축한다.
"좋아요, 떠나겠어요" 쟉크는 그녀와 집을 나갈 것임을 소리쳤다. 그럴수록 쟉크의 그녀에 대한 사랑과 연민의 정은 깊어만 가는데... "내 곁에 있어줘... 네가 떠난다면 나 자신과 하나님은 파멸이야! 제르뜨리드가 더 이상 목사의 곁에 있지 않으려 하자 마르텡 목사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한다. "네가 가면 목사도 존재하지 않아! 하나님이 떠나지 말래..."
"이러지 마세요. 전 쟉크에게 키스했어요. 제가 사랑한 것은 목사님이 아니었나 봐요. 하지만... 하지만 목사님은 그와 결혼을 못하게 했어요." 라며 울먹이는 제르뜨리드.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책상에서 엎드려 선잠이 들었던 마르텡 목사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선다.
저쪽 창문이 열려 있다. 밖엔 하얀 눈이 많이 쌓여있었다. 그는 허겁지겁 발을 옮긴다. 조그만 발자국을 따라 냇가의 조그만 나무다리를 건넌다. "제르뜨리드! 제르뜨리드!" 그의 함성이 커진다. 저쪽에서 모여있는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예쁘고 고운 제르뜨리드가 얼어 죽어 있었다.
'모두들 가요!" 그는 놀라 소리쳤다. 차갑게 식은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리며 흐느낀다.
"내 여자요..... 더 이상 날 쳐다보지 마!" 마르텡 목사는 그녀의 빛나는 눈을 감긴다. 그러고 나서 터벅터벅 어딘지 모르게 얼빠진 모습으로 걸어간다.
-감상-
프랑스인의 예술 감각을 때 묻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던 감독의 흑백 영화였다. 그 시대는 도시화나 현대적인 면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자연의 모습은 더없이 아름답고 깨끗해 보였다. 맹인 소녀 제르뜨리드는 어두운 동굴에 가까웠다. 죽은 할머니의 썩어가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겠지만 육신의 썩어가는 냄새는 인지하였으리라. 아무도 더 이상 그녀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는 고독과 절망감에 어떻게 견뎌냈을까. 그래서 그 동물의 우리 같은 집에서 그녀를 나가고 탈출하게 했나 보다. 소녀를 부르는 소리에 앞을 볼 수 없는 작은 계집아이는 삐걱삐걱 걸어와서는 겨우 수저를 잡고 죽을 마셨다.
목사의 모습은 차분하였으며 진실되어 보였다. 그의 부인과 행복했던 생활도 아이를 데려 오면서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제르뜨리드에게서 목사의 사랑과 가르침은 신의 손길이었고 그녀의도 소리만 들어도 자신을 데려온 목사를 알아봤고, 그녀가 입고 있는 옷도 목사가 손수 골라 사주었다.
이 영화의 극적 전환은 그의 아들 쟉크의 귀향으로 시작된다. 20십대의 감성을 정말로 따스하고 순수했다. 교회의 맑은 오르간 소리처럼, 쟉크는 이미 약혼한 마을 부자의 딸이 있었다. 그러나 부유한 삐에뜨에게는 없는
맑은 감정이 자신의 집에 들어온 제르뜨리드에게서 느껴진 것이다. 도시에서 공부하다 돌아온 그는 생활의 안정과 고향의 따스함보다도 그녀 제르뜨리드의 조용한 모습에서 안식을 찾게 되었다. 끝내는 결혼을 결심하게 만들었다.
목사인 아버지 마르텡은 그녀가 언제나 절대자를 따르는 한 마리의 고분고분한 양이되기를 바란 것이다. 그 양이 아들과 결혼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도 불행을 가져오리라 확신했다. 제르뜨리드가 빛을 보고 눈을 뜰 수 있게 된 것은 커다란 반전이었다. 앞을 볼 수 있고 세상을 온전히 느끼자 새로운 사랑의 감정을 일깨울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 사랑의 결실인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싶은 충동을 꿈틀거리게 되었다.
궁극적인 문제는 아버지가 목사의 신분을 떠나서 과연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진짜 자애로운 감정이었을까? "내 여자요!" 마르텡 목사가 얼어 죽은 제르뜨리드를 발견하고 절규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이런 사랑에 대한 의문부호(?)를 제시한다.
결국 제르뜨리드는 눈 속에서 얼어 죽음으로서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자살(自殺)이라는 최후의 수단으로 말이다. 목사가 성직자로서의 가치와 윤리성을 그녀에게서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에 대한 이 여러 가지 의문점은 흑백영화의 두 가지 색 음과 양으로 우리에게 각인된다. 아직도 귀에 울리는 소리다. "이 여자는 내 여자요! 내 여자....."
- 월간 영화세상 제3호(199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