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시네마떼끄 연대모임 참가 후기

by 황규석
서울대입구역 북카페 "지오"에 가면 영화세상 대전 씨네마떼끄 컬트의 지난 회지와 각종 영화자료를 볼 수 있다(회원이 운영)

- 대전 출발 10시 -

12살 된 낡은 베스타 승합차를 몰고 일요일 오전 10시에 광주에 내려갔다. 차가 낡아 사실 중간에 멈춰 서지는 않을지 걱정을 많이 했다. 함께 사무실에서 기획을 해주고 사무실 일을 돕던 최준 씨와 함께 가기로 약속이 돼있었는데 그가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함께 가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그리고 그 모임을 8미리 비디오에 담아 오지 못한 것도 말이다. 함께 간 컬트의 회원 김재경 씨가 고생을 많이 했다. 고마움을 전한다. 시나리오 스터디, 세계사 스터디, 원고 쓰랴, 오전부터 밤늦게까지 아이들 가르치랴 힘들 텐데 나와 함께 광주로 따라나서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모임에 가서 꼭 발언을 하지 않아도 참여하고 분위기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그 연대감을 몸소 느끼는 것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다. 참여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영화세상"의 내용과 "대전 씨네마떼끄 컬트"의 이름을 걸고 대전을 대표해서 참여하는 만큼 많은 사람이 보고 느끼고 배우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이란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난 오후 2시부터 모임이 있는 줄 알고 서둘러 나서서 도착을 했다. 그런데 우리 대전 팀이 제일 먼저 광주에 도착했다. 그 상으로 5만 원짜리 주차위반 딱지까지 떼는 전과(?)를 올렸다. 아깝다. 5만 원이면 공테이프가 몇 개냐... 아이고~ 닭똥 같은 눈물을 아무렇지 않은 듯 숨겨야 했다.


원래 이 연대 모임의 서막은 지난 9월 중순 1회 부산 국제영화제에서부터였다. 그러나 나는 이곳 대전 컬트의 영화상영 프로그램 때문에 토요일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고 월요일에 부산 영화제에 내려갔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영상원 시험 원서접수를 하러 서울에 갔다가 문화학교 서울에 들렀다. 거기서 논의될 내용에 관한 프린트물을 받았다.


- 광주 영화로 세상 보기 -

광주 영화로 세상 보기'의 사무실은 광주 외곽 이름은 찬란하지만 허름한 '예술의 전당'이라는 건물의 지하에 터를 잡고 있었다. 광주에는 '굿 펠라스'라는 모임은 들어봤으나 '영화로 세상 보기'는 처음 들어보았다. 하지만 회장 박상백(25)을 중심으로 주로 대학생 20대 초반의 회원들의 단합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남자회원들 같은 경우 돌아가면서 막노동까지 하면서 건물세를 낸다고 했다. 상영실은 사무실과 마찬가지로 인형극단의 공연장과 함께 쓰는데 그들의 때 묻은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장소로서 문화학교 서울보다 좀 큰 장소로 보였다.


캐비닛에 가득 차 있는 희귀한 테이프를 보고 놀랐다. 얼마 전 영화평론가인 서동진 씨까지 초청해서 퀴어씨네영화제를 할 절도로 일에 대한 추진력은 부러웠다. 하여간 그들은 좋은 뜻의 상명하복이랄까 선후배에 대한 위계질서가 잘 잘 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서로에 대한 신뢰가 밑바침이 된 것은 물론이다.


- 부산 씨네마떼끄 1/24 -

부산 씨네마떼끄 1/24의 사람들은 7명이나 참여한 홈구장인 광주를 빼고는 가장 많은 회원들이 엠티를 겸해서 광주를 찾아왔다. 지난 10월 29일 정보 수집차 부산에 갔을 때 친절히 안내해 주던 우정태 씨는 참 재미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하룻밤을 묶으며 밤을 새울 요량으로 갔던 화순의 한 아파트에서 광주의 회원들이 김밥이다 과일 샐러드등 음식을 만들 때 연식 부엌을 들락날락 도와주기도 했다. 그가 MBC 베스트극장의 극본 공모에서 이미 당선되어 그의 작품이 드라마가 됐다는 사실을 누가 얘기 해줬다. 어리지만 대단한 친구다. 그의 솔직함과 장남끼 등이 영화에 대한 열정과 함께 그를 표현력이 풍부한 부산 사나이로 만들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나는 영세보 사무실에서 아파트로 늦게 도착한 회원들을 실어 나르기도 했는데 군산의 '키노 앤 키드' 팀은 시간이 없어 일찍 자리를 떠서 아쉬웠다. 그들은 그래서 아파트로 이어진 회의 겸 2차 자리에 합석하지는 못했다. 그 팀 3명의 면면이 좋은 인상을 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모임에서 일찍 자리를 뜬 것도 그렇지만 애초에 그들의 활동의 결이 우리와 동질감과 연대감을 가지지 못하는 발언을 한 것도 이유 중의 하나라고 생각이 되었다. 다른 친구들도 그런 시각을 느꼈다고 한다. 하여간 낄 때 끼고 빠 찔 때 빠찌는 타이밍도 참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느꼈다.

- 문화학교 서울-

모임과 회의의 발제자이자 주최자의 성격이 있는 가장 잘 운영되는 우리나라 최고(!)의 씨네마떼끄 문화학교 서울의 사무국장 곽용수(29)씨가 저녁 늦게 광주에 도착했다. 밤 9시 이후에 그것도 혼자 내려온 것은 공인(?)으로서 태도에 좀 결레가 된 행위가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런 행동 밑에 깔려있는 자신감과 그의 논리 정연한 언어와 회의 진행력은 과연 높은 평가를 줄만 했다. 탄탄한 회원들과 프로그램을 가진 문화학교 서울의 저력이라고나 할까.


- 대구 씨네하우스 -

대구는 여성 회원 두 분이 왔는데 담배를 길게 내뿜으면서 그들의 현재 고민을 토로했다. 현재 커피숍의 대형 TV를 통해서 영화를 보고 있고 회원수도 적어서 자신들의 씨네마떼끄라는 정체성을 찾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는 이번 씨네마떼끄 연대가 앞으로 결속력을 가지고 또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모임의 성격과 연관 지어서 아주 중요한 문제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궁극적으로 단순한 영화동우회들은 현재 명동성당에서 매주 열리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법철폐 대책위원회에서나 이번 씨네마떼끄 모임에서 합류나 참여는 고려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대구의 경우에는 씨네마떼끄를 지향하는 모임이다. 영화공부도 아직 하고 있고 다시 예전의 좋은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 강릉 씨네마떼끄 -

가장 먼 곳인 강릉에서 온 김태완(27)씨는 도서관 강당을 빌려 매주 영화를 상영한다고 했는데 아주 쾌활하고 정열적인 사람인 거 같았다. 이번에 서울 영상원 시험 접수하는 곳에서도 그들 보았었다. 그는 씨네마떼끄가 '영화운동인가?' 하는 면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말을 했다.


부산은 아시아영화에 대한 자료를 가장 많이 갖고 있고 그 정보와 자료의 양과 수준에 있어서는 문화학교 서울에 버금가는 우리나라 제2의 씨네마떼끄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번 부산 방문 때 사무실을 옮긴 다고 했는데 현재 사무실을 옮겼을 것이다. 지난 29일 2층의 사무실에 갔을 때 빽빽이 꽂힌 책과 테이프를 보고 그들의 영화에 대한 열정과 집념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각 대학의 영화서클들이 월회비 2만 원을 내고 단체회원으로 가입했단다. 그곳의 프로그램을 무료로 가져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도 인상 깊었다. 항구도시 부산만이 가지는 개방성과 자유로움 그리고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 전주 온고을 영화터 -


전주 온고을 영화터는 대학동아리연합회와 연합해서 인권영화제 등을 개최하는 등 신생팀 치고는 그 의욕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회의는 밤 10시경에 시작하여서 밤이 깊어갈수록 그 열기를 더해갔다. 우리는 독립영화협회에서 극영화협회, 다큐멘터리협회, 애니메이션협회 그리고 씨네마떼끄협회로 구성되려고 그 팀을 짜는 노력을 했다. 먼저 현 살황에서 씨네마떼끄의 순수한 정의와 지향점을 찾는 노력을 했고, 또한 각 지역의 씨네마떼끄가 처한 어려운 상황 현실적이고 개별적인 상황을 이야기하고 공유했다.


우리 대전은 내가 테이프의 확보와 관련해서 연대모임 안에서 적은 돈으로 공유가 가능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현했지만 서울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떼끄의 성패가 최신 영화 자료의 많은 숫자를 보유하거나 공개하는 데 있지는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나의 제안에 대한 답으로 다음 달 청주에서 있을 3차 준비 모임에서 결정하기로 했는데 내가 이야기를 꺼냈지만 의외로 반발이 거세서 위축되기도 했다. 결국 설익은 이야기를 하지 말걸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그냥 지금처럼 내가 부산, 광주를 뛰어다니며 모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뒤풀이-

무거웠던 분위기의 회의가 대충 끝나고 질펀하게 술판과 이야기판이 벌어졌다. 삼겹살과 맥주 그리고 부침개 등으로 말이다. 저녁은 광주 분들이 싼 김밥으로 먹었는데 배가 고파서 그런지 아주 꿀맛이었다. 그런데 여자고 남자고 모두가 다 담배를 그리도 많이 피우는지 굴뚝에 연기가 마르지 않았다. 나와 같이 간 김재경 씨만 담배를 안 피워 대전팀은 담배 연기로부터 고통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대전에 있는 영화세상, 컬트의 회원들은 담배를 싫어하는 게 특징이었다. 나도 이 잔 저잔 받고 술을 따르고 옮겨 다니며 서로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웃고 마시느라 시간이 가는 줄을 몰랐다. 하지만 난 다음날 다시 차를 운전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새벽 5시에 방에 들어가서 수면을 취했다.


아침 7시 반, 정확하게 대구 사람 둘, 강릉 사람 둘, 서울의 곽용수 씨를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거의 4시간 만에 대전에 돌아왔다. 대전에 와서 그럼 쉬었냐? 아니다 사무실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피곤에 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사무실 문을 열고 와서 의자를 펴놓고 모자란 잠을 보충했다.


하여간 끼니도 제대로 못 먹고 이렇게 지금까지 생활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내가 무엇에 씌어도 단단히 씌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가야 할 길이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를 믿고 따라주는 영화세상 컬트의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기꺼이 이런 즐거운 고행을 감내할 작정이다. 나 이뻐?


컬트의 발자국
열린 영화제 기획회의(맨 뒤가 필자) 컬트 다큐 중 - 촬영 중앙대 영화과 이종윤 (유트브 '시네마테크 컬트'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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