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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규석 Oct 22. 2024

시네마테크 컬트의 시작! 1993 "관객집단 영화세상"

응답하라! 영화세상 <대전 시네마테크 컬트>

월간 스크린 1993년 8월호에 시작 이상우 감독도 원년멤버


  저는 1988년 대학에 들어갔으니 88 꿈나무 학번으로 불렸습니다. 잠깐이지만 신입생 때 선배들로부터 귀염을 많이 받았죠. 그렇게 건국 이후 최대의 행사인 올림픽이 열리던 뜨겁던 해에 군대에 저는 병무청에 가서 일찍 신검을 받고 육군 일반병으로 자원입대를 했습니다. 1년 선배인 87학번도 군대를 안 갔고 86학번 중에도 군대를 안 간 선배가 많았어요. 제다 살고 있는 거기다가 집에서 가까운 대전의 목원대 불문과 1학년 여학생이 득시글 거리던 그곳에서 그럼 전 왜 군대를 일찍 그것도 자원해서 갔을까요? 뭐랄까 나름대로 의협심을 발휘한다고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올림픽이라는  국가적 대사를 치르는 데 있어서 공산주의 북한 괴래집단의 위협과 도발로부터 나라를 구하겠다는 마음에서였습니다." 물론 주변에 이야기를 했는데 또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해 4살 터울의 형님 제대를 앞두고 있었고요. 2살 위의 누님이 비올라를 전공하는 음대생이었습니다. 택시 운전을 하는 아버지와 도축장에서 일하는 어머니의 형편상 3명의 대학생을 가르치는 건 힘에 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갈 거 제가 군에 가면 부모님들 불안이 좀 덜해질 거라는 생각이 있었고 가족에게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영화세상'을 이야기하다가 길이 옆길로 빠졌네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꼭 필요한 배경 이야기이니 말씀을 드립니다.


  하여간 군에 가서도 영화를 잘 못 본다는 것이 많이 아쉬웠어요. 그리고 30개월간 강원도에서 매일 얻어터지는 구타와 선임이란 독재의 신세계를 경험하고 제대했습니다. 군대 일찍 왔다고 맞고 담배 안 피운다고 맞고 낙행군 낙오 했다고 맞고 축구, 족구에서 졌다고 집합해서 맞았네요. 그렇게 맞았는데 맷집이 센지 어디 하나 부러지지도 않았네요. 의무대에 실려가고 훈련에 빠지고 싶다는 꿈은 그렇게 실패했습니다.. 91년 가을 1학년 2학기로 복학을 하고 93년에는 어찌하다 보니 학회장을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막상 과의 행사를 하다 보니 많은 도움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너무 의욕만 앞세워서 그랬지요. 하여간 그렇게 과에서 뭔가 불협화음을 내고 있을 때였습니다. 즐겨보던 당시의 월간 영화잡지 '스크린'은 커다란 위안이자 도피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군대에서도 편지를 많이 썼는데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편지를 나누는 펜팔이 하고 싶었습니다. 당시 저는 강변가요제 'J에게'이선희를 너무 좋아라 해서 팬클럽 홍당무에도 가입한 상태였습니다. 거기도 회지가 나오는데 펜팔란이 있어서 그중 몇몇 친구와 펜팔을 하고 있었거든요. 영화라는 주제로 말입니다. 그럼 너무 재미있을 거 같았습니다. 군대에서 또 복학한 학교에서의 실망이 제가 어찌하다 보니 만든 "영화세상"이란 모임에 풍덩 빠지게 된 이유 중의 하나 같기도 하네요. 힘든 현실에 대한 비상구가 바로 "영화세상"이었습니다.


영화세상 창간 1주년 기념 합본호 제1호 (제1호 ~12호)


  그래서 종종 라디오 신청곡을 적어서 보내던 20원인가 40원짜리 관제엽서를 사서 스크린 독자페이지란으로 보냈습니다. "같이 영화이야기를 나누고 자료를 모아요. 우리들의 삶이 곧 영화입니다. 목원대 불문과 3학년 황규석" 사실 큰 기대도 없었는데 잡지 독자페이지 란에 이렇게 실렸더라고요. 잡지가 서점에 깔리고 내 메시지를 보고서는 학교로 전국 각지에서 편지가 오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집 주소를 알려줘서 저희 집에 편지가 10 통도 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다들 영화를 좋아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눌 상대를 구하고 있었는데 제가 그 단초를 제공해 준 것 같았습니다. 당시 뭐 메일이 있었나요. 인터넷이 있었나요. 그냥 아날로그 감성 물씬한 그런 시대였습니다. 1993년 어찌 보면 참 그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편지도 거의 쓰지 않고  그러니까 우체통도 사라지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어쨌든 그 첫 편지들은 펜팔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기를 소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자기는 어디서 살고 어떤 성향이고 또 어떤 영활을 좋아하고 감명 깊게 보았다는 그런 내용이었지요. 그때 든 생각이 나와 사람들 나중에 과의 교류도 좋지만 서로서로 알고 지내는 것이 더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두 명이면 모를까 생각지도 않게 너무 많은 사람들이 편지를 주었으니까요.  나중에 잡지를 보고 편지가 오는 사람도 한 동안 있었고 지인이나 가족을 소개해서 제게 편지를 주는 사람도 종종 있었습니다. 첫 편지를 그래서 모아서 같이 나누어보기로 했습니다. 모임을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모두가 제가 던진 말 "영화세상을 만들어봅시다"에 같이 참여하고 싶다는 말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모임이랄까 이름은 "영화세상"이라고 이해도 빠르고 부르기도 쉽기도 하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렇게 해서 영화세상 제1호 회지가 탄생했습니다. 아래 한글로 독수리 타법으로 완성한 앞뒤 표지 제외하고 속지 5장 10쪽의 영화세상입니다. 차례도 없고 제목도 없었습니다. 편지를 그대로 옮겼습니다. 마지막에 보낸 사람이름하고요.

중간에 이런 알림을 알렸네요.


영화세상 1호  내지 첫 페이지 . 표지와 같고 사진이 없습니다

 

원고와 소식 문의 -

 전화: (042) 226-2141 (042) 220-6161(학교)

 우편: 301-729 대전 직할시 중구 목동 24 목원대학교 불문과 3학년 <영화세상> 황규석


표지에 슬로건도 정했습니다. "우리들의 삶이 영화입니다" 물론 영화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알아가는 젊은 친구들이지만 결국 스크린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오면 우리들이 삶이 바로 영화가 된다, 영화처럼 극적이다. 누구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살아간다라는 의미를 말하려고 했답니다. 제1호(1993년 9월 14일) 그 아래 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를 바라는 의미에서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습니다"라고 적었네요. 아 그리고 좀 있어 보이려고 영어를 썼네요. -WE DO IT FILMS- 당시에 제가 배우고 공부한 바로는 MAKE 보다 더 광범위한 의미로 DO라는 단어를 선택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듣고 말하고 쓰는 모든 행위를 하고 싶다는 표현이죠. 그리고 영화를 보다 원론적인 의미로 고전적인 의미로 'CINEMA' 보다는 'FILM'이란 단어 그리고 맞는 표현이지 모르겠지만 복수 접미사 'S'를붙여 'FILMS'라고 적었습니다. 어떤가요? 그럴듯하지요..


첫 회지 작업에 자기소개가 실린 저를 포함한 13명의 영화세상 1기 친구들의 명단입니다.

1. 정종향(25, 여, 대전, 직장인)

2. 김명선(26, 여, 부산, 직장인)

3. 최종원(20, 남, 부산, 학 생)

4. 한성수(20, 남, 서울, 학  생)

5. 박병우(21. 남, 대전, 직장인)

6. 강유정(21, 여, 부산, 학 생)

7. 이상우(23, 남, 서울, 군  인)

8. 김정구(21, 남, 구미, 학 생)

9. 김영애(16, 여, 대구, 학 생)

10. 조재형(22, 남, 청주, 학생)

11. 이경림(20, 여, 부산, 학생)

12. 손영애(22여, 대전, 직장인)

13. 황규석(25, 남, 대전, 학생)


1호 영화세상 끝페이지 주소록


회지 영화세상의 내용은 자기소개서가 나오고 맨 끝 주소록 앞에 한 페이지로 영화계 소식이 짧게 정리해서 싣기도 했네요. 내용은 영화진흥공사 93년 극영화제작사전 지원사업에 71편이 집계되었는데 통속, 멜로물이 34편, 사회고발물과 시대물이 각각 11편과 8편이라는 뉴스와 영화산업에 문체부에서 완성도가 높은 작품에 편당 5천만 원 이내에 30억을 융자하기로 했다는 소식. 그리고 정진우 감독, 신성일, 문희 주연의 <초우>(1966년작)가 서울 시네하우스와 코아아트홀에서 재개봉한다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대전엑스포 93 영화제에서 13개국의 22개국의 영화가 상영한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중에 공언한 대로 미국 유학 후 영화감독이 된 이상우 감독의 영화세상 1호에 실린 자기소개서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간단하게 저의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영화'에 미쳐있는 사람입니다. 중학교 때부터 전 장래희망란에 '영화감독'이라고 썼을 만큼 전 제 사신이 영화감독이 되리란 확신에 자신 넘쳐있습니다. 스크린, 로드쇼, 시네마 등 한국엣 발간되는 ('시네마 잡지는 망함) 영화잡지는 매달 사보고 있습니다. 특히 스크린은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한 권도 빠짐없이 보관하고 있습니다. 영화 포스터, 비디오 테이프, 영화 시나리오, 영화 관련자료 등 영화에 관계된 모든 것들이 있습니다.

  저도 당신처럼 영화광들의 모임을 만드려고 했으나 제가 알고 있는 연극영화과 선배님들과 영화모임을 만들어 또 다른 시간을 낼 수가 없습니다. 전 당신이 얼마큼 영화를 사랑하는지 모르겠지만 당신도 나처럼 영화라는 매체우 흥미 내지는 관심, 더 나아가서는 영화를 위해 목숨 바칠 만큼 사랑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당신과 그리거 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영화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 단기사병입니다.

P.S 조나단 뎀 감독의 "양들의 침묵" 사진을 보냅니다.


반송 우표도 받았습니다. 편지가 일상이던... 1993년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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