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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규석 Oct 26. 2024

유언장 내용 & 스크린 게시판에서 출발한 영화세상

 응답하라! 영화세상 <대전 시네마테크 컬트>

월간 스크린 1993.08 스필버그 감독님도 영화세상의 지분이 있네요.ㅎㅎ


영화세상의 탄생


월간 스크린 1993년 8월호 302p 독자 게시판에 나온 7줄의 메세지
7줄의 짧은 메세지를 보고 12명의 친구들이 편지를 보내왔어요


  대학에 들어가기 전부터 입학하면 동아리 활동을 하는데 영화 관련 모임을 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동아리 사무실을 찾아갔는데 그리 활발한 성격도 아니었던 저는 그 무리에 쉽게 동화 내지는 흡수되지 못했습니다. 그럴 만도 한 게 고3 때 하던 신문 배달을 대학에 입학하곳도 계속하고 있었거든요. 영화스크랩도 계속하고 있었고요. 용돈도 조금 벌고 자료도 모으고 신문 배달을 계속했습니다. 고3처럼 새벽 신문 배달 후 아침 8시까지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었으니 저에겐 더 여유로운 시간이었습니다. 그 고등학교도 그 먼 거리를 매일 2시간 이상 걸어 다녔는데 대학도 집에서 가까워서 걸어 다녔습니다. 자연스럽게 나중에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겠지만 전 늘 걸어 다녔거든요. 지금도 많이 걸어요. 여하튼 동아리에 갔는데 내가 아는 영화의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이야기보다 술을 마시거나 노는 것을 좋아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에겐 아직 안 맞는 옷 같았어요. 그렇지만 단돈 동아리에서 섭외된 극장에 가면 1,000원에 영화를 보는 것은 좋더라고요. 영화공부도 하고 영화도 만들 계획이 있다는 회장의 말이 있었는데...


  하여간 동아리 활동은 그저 영화를 할인해서 보는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했듯이 올림픽에 나라를 지키자는 마음으로 모두가 들뜬 그해 1988년 6월 10일 새벽 신문 배달을 마치고 논산 훈련소에 어머니의 일을 도와주시는 분의 트럭을 타고  당당하게 자원입대하였습니다. 부모님은 일하러 바빴고 혼자 입대했습니다. 돈도 백도 없으니 저 멀리 강원도 화천의 보병 27사단 소총수로 들어갔습니다. 정말 열나게 행군했네요. 지나가는 차에 뛰어들어 다리가 부러지고  싶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1년 후에 첫 휴가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좋아하는 영화와 30개월간 떨어지게 되었으니 오죽 답답했는지는 여러분들도 잘 아실 겁니다. 군에 있을 때도 영화 걱정을 했습니다. 당시에 나오는 영화를 보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것은 누구나 예측하는 일이었고요. 신문 스크랩도 못하고 자료 선전지도 못 구하요. 올림픽 전 훈련을 나갈 때 유사시를 대비해 유언장을 쓰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친구에게 내가 모은  영화 포스터, 자료 등을 잘 부탁한다고 썼네요. 그 유언장도 아래처럼 보관하고 있네요.


  휴가를 나오면 밀린 영화를 보고 또 광고지를 찾으러 다녔어요. 남동생이 또 모아서 보관해주기도 했습니다. 아래에 나오는 친구 이양호는 지금도 저의 단짝 친구입니다. 저보다 더 어렵게 생활하던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인데 이 친구의 도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어머니와 여동생 단출한 세 식 구로 살며 다 쓰러져가는 단칸방에 사는 친구인데요. 그 친구랑 폐지를 모으러 한밤중에 같이 종종 마대 자루를 가지고 돌아다녔어요. 친구랑 어느 날 쓰레기옆에 버려진 폐지더미를 발견하고 자루에 담는데 흑백 필름 하나가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신문 광고에 쓰는 원판 필름 같은데 고전 명작 '벤허'였습니다. 그때 정말 어찌나 횡재한 기분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하늘도 돕는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전 군대에서 쓴 유언장


'영화세상'-모임과 회지의 이름


   영화세상이란 단어가 가지는 다양한 의미와 지향성을 처음에는 잘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단순한 영화에 대한 단순한 열정과 매력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이랄까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좀 편애적인 단어라는 느낌도 듭니다. 영화세상을 통해 무얼 해보겠냐라는 좀 무모한 느낌이랄까 독단적인 느낌도 들고 그러네요. 그냥 영화세상이 모임과 매달 내는 책자의 이름이 된 것은 커다란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모두들 영화를 세상에서 누구보다 좋아하고 애정하는 사람들이기에 어찌 보면 자연스럽세 '영화세상'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영화세상' 하나의 이름 아래 집합하고 활동을 조금씩 늘려나가게 되었습니다.

이 스크린 잡지를 오랜만에 창고의 책장에서 꺼냈는데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蛇足

다음 글에서는 초창기 회지의 내용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글이 두서가 없도라도 이해부탁드립니다. 시네마테크 컬트를 이해하기 위한 여정이니까요. 저의 회고와 추억의 시간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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