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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 사람 또 없습니다(이승철)

찜질방에서의 2년 그리고 운명 같은 만남과 함께 한

by 황규석

제18화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 이 승 철 -


군대에 가서 중대 행정사무실에 있던 노래 테이프 중에 이승철의 '마지막 콘서트'가 있었다. 낯선 풍경이었다. 초록 견장의 하사 달고 야간 당직근무를 설 때 그 노래를 종종 들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행정실의 낡은 카세트 데크에 걸고 작은 볼륨으로 나직하게 불렀었다.


"소녀는 나를 알기에 (중간 생략) 밖으로 나가 버리고" 이상하게 끌리는 목소리 남자지만 매력적인 목소리였다. 그리고 정확히 19년이 흐른 뒤 타인을 통해 이 노래를 우연히 알게 되었고 금세 빠져들었다.


싸이월드 미니 홈피의 배경음악으로 은은하게 흘러나왔는데 처음엔 누구의 노래인지 몰랐다. 바로 지금 내 반쪽이자 평생을 섬기고 살아야 할 아내가 징검다리가 되어 즉 파도타기를 통해 알게 된 가수 이승철의 노래였다. 가사를 천천히 되새기며 들어보니 어쩜 저리 순애보 적인 헌신적인 사랑이 있을까 싶다. 바라만 보아도 바라지 않아도 좋은 그런 사람을 위해 심장도 떼어주고 싶다는 남자.


사랑은 정말 힘들 때 어려울 때 더 뜨겁게 다가온다. 노래 역시 그렇다. 밝고 환한 노래보다 이렇게 애절하고 애잔한 노래가 더 가슴을 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바로 공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노랫말이 자신의 현실을 반영하니까 습자지처럼 나의 마음속에 또렷하게 스며들어 인식하게 되니까 좋아하게 된 노래다.


역시 힘든 시기에 묵묵히 삶을 헤쳐나갈 때 이런 노래가 가슴에 와닿았다. 누구 말대로 아내는 출구를 몰라 헤맸던 나에겐 비상구였다. 삶을 뒤에서 보살핌으로 말미암아 지금 이렇게 그나마 사람 꼴을 하고 살지 않나 싶다. 바보같이 아니 진짜 바보니까 꽤 큰 목돈을 사기도 당했다. 가진 게 없어 그야말로 집도 절도 없었다.


옥탑방, 고시원, 잠만 자고 나오는 아파트 생활 그리고 이어서 2년째 찜질방에서 살 때 꿈을 위해 한국에 들어온 아내를 운명처럼 만났다. 아주 큰 집에 산다는 내 농담. 내가 사는 집에 가보고 싶다는 여자를 난 지하철역 지하의 내가 사는 찜질방으로 데려갔었다.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시간이 참 빠르다.


없이 살아도 형편에 맞는 꿈을 키우고 계획적으로 살게 된 건 역시 전부 현명한 아내 덕이다. 이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리며 힘들어도 위로를 받았고 막연한 희망을 그려보았다. 이 노래도 가끔 거실의 불을 끄고 나서 반짝이며 돌아가는 작은 조명기를 켜서 운치 있게 노래하곤 한다. 아내와 함께 마이크 스피커를 들고 동영상 반주를 틀어놓으면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못하는 노래를 감정을 잡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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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형, 눈물 많은 걷기 중독자. 복종에 익숙한 을. 평생 을로 살아갈 예정. 전 영화세상, 대전 씨네마떼크 컬트 대표. 전방위 무규칙 잡종 글쓰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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