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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면(최호섭)

닿을 수 없는 시절 그리고 닿을 수 없는 인연이 있다

by 황규석

제26화 세월이 가면

- 최호섭 -



내가 어렸을 적 살던 동네는 언덕을 올라가면 호수돈 여중, 여고가 같이 자리하고 있었다. 수용소라 불리는 가난한 동네보다 위쪽에 있었는데 우리 동네도 수용소로 불렸는지도 모른다. 경사진 오르막 언덕의 도로 양쪽에 있는 우리 동네. 수용소보다 좀 더 형편이 나았지만 지금 보니 거기서 거기였다.


6.25 사변 이후 피난민들이 모여 살았던 동네라 그렇게 불리지 않았나 싶다. 시간과 역사는 나이가 들어보니 그리 멀지 않은 가까운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69년생인 내가 태어났을 때는 민족 동란의 상처가 아직 남아있던 때였지 않았을까. 그리고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다니던 1970년대 중후반은 또 월남전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우리 집 아래에는 시민슈퍼와 양복점이 있었다.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작은 구멍가게와 그분의 남편인 양복쟁이 아저씨가 일하는 양복점. 그 가게 앞 신작로를 건너면 노란 페인트가 벗겨진 안주 일체라고 나무 간판이 붙여진 왕대포집이 있었다. 바로 동네 친구 숙이네 엄마의 술집이다.


유난히 검은 긴 머리카락에 커다란 눈 그리고 좀 두꺼운 입술. 숙이 누나는 야무진 모습이었다. 친구들은 왕대포집 위에 많이 살았다. 친구들을 만나러 가면 왕대포집을 지나가는데 간혹 거기 사는 아저씨와 우연히 마주치면 날 알아보고는 함박웃음을 지어주셨다. 나도 싫지는 않았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오~ 그래 우리 사위 황 서방 왔는가!”

“숙이 있어요?”

“그래, 숙아! 우리 사위 석이 왔다”


환하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은 아저씨. 숙이 아버지는 목수였다. 늘 귀에는 몽당 연필을 꽂고 다녔다. 절룩이며 걸었지만 신발은 항상 광택이 잘 나는 번쩍이는 구두였다. 날 쓰다듬은 손은 굳은살이 박힌 손이 묵직한 느낌이었다.


대머리에 발목이 돌아가서 절룩거리던 작은 아저씨였다. 친구 숙이는 안에서 나에게 늘 사위라고 하는 자기 아버지를 보고 창피해 어쩔 줄 몰라했었다. 숙이 엄마가 대폿집을 했다. 왕대포가 막걸리라는 사실도 나중에 알았다. 밤이 되면 젓가락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숙이 엄마가 치는 신나는 장구 장단도 흥을 돋았다. 요란한 화장을 한 한복을 입은 아가씨도 본 적이 있었지만 원형 탁자 몇 개만 있었다. 작은 대폿집엔 아주머니가 두부 요리도 하고 시중도 들고 술친구를 했었지 않았을까. 숙이 엄마인 아주머니도 날 좋아했다. 날 보면 항상 웃었고 사탕도 건네주었고 무엇보다 또 자주 취해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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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형, 눈물 많은 걷기 중독자. 복종에 익숙한 을. 평생 을로 살아갈 예정. 전 영화세상, 대전 씨네마떼크 컬트 대표. 전방위 무규칙 잡종 글쓰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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