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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슬픈 사랑(야다)

꿈을 버리지 않고 버텼기에 대견하고 칭찬받아 마땅한 우리

by 황규석

제27화 이미 슬픈 사랑

- 야다 -


어떤 노래는 어떤 사람을 통해 알게 되고 또 그 사람의 애창곡으로 기억하게 된다. 3~4년 전인가 갑자기 부고 후 보내는 감사의 문자가 왔다. 아버님 상을 당했는데 잘 치르고 감사했다는 K의 문자. 정말 당황했다. 연락처도 잘 기억하지 못했던 때였기에. 꼭 가야 할 문상도 못 가고 너무 미안했다.


“아니 나 지금 문자 받았어. 돌아가셨다니?”

“네 형 그렇게 됐어요”

“나 부고 연락을 못 받았어. 정말 미안하다 야...”

“괜찮아요. 형 잘 지내죠?”

“응 나 그냥 그래. 직장 다니고 뭐 너는? 결혼했니?”

“아직요... 연극해요. 대학로에 있어요. 공연 보러 오세요”


그렇게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한동안 잊혔던 K와의 잊을 수 없는 인연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25년 전 지방 KBS 방송국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그 친구를 처음 만났다. 나는 그때 1주일에 한 번씩 문화정보 프로에서 영화산책이라는 코너의 고정 게스트였다.


지역에서 영상문화운동 컬트라는 단체를 이끌고 영화제를 하고 월간 소식지를 내면서 사무실을 꾸리고 있었다. 그때 그는 극단의 여자 대표님과 새로운 연극을 홍보하러 나왔다. 어렴풋이 전국 연극제에 대전 대표로 나가게 돼 공연 홍보를 하러 왔던 것 같다.


라디오 스튜디오 대기실에서 인사를 나누고 연락처를 교환했다. 우리 시네마테크 컬트가 빔프로젝터가 있어서 그걸 빌려주러 극단 사무실에 가기도 했다. 이후 나는 월세를 내며 사무실을 꾸릴 힘이 부족해 이곳저곳을 떠돌게 되었다. 회원 중 한 사람이 운영하는 '토마토 공격대'라는 카페와 ‘선사 시네마’라는 극장의 지하 엘리베이터 빈자리를 돌아다녔다.


이사는 너무 힘들었다. 많은 영화잡지 및 책들과 비디오테이프가 문제였다. 이후 그 극단의 지하 연습실까지 흘러 들어가게 되었다. 배우가 부족한 상황에 내가 연극을 돕고 배우를 하기로 약속을 했다. 발성 연습을 하고 다음 작품의 스텝이 되어 무대를 만들고 소품을 준비하는 극단의 늙은 막내가 된 것이다.


두 살 아래인 그는 키도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게 천상 멋진 배우 같았다. 누가 봐도 미남이고 말이 나올만했다. 힘도 좋고 손재주도 많아서 뚝딱뚝딱 공연무대도 잘 만들고 또 곳곳의 고장 난 곳을 수리했다. 우리 극단의 마당쇠이자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살림꾼 역할을 했다.


이 친구 K는 연극을 안 할 때는 룸살롱 웨이터 일을 했다. 그 당시에도 공연이 없으면 밤일을 나갔다. 그래서 돈을 꽤 모았는데 당시 우리 전셋집 전세금보다 많은 돈을 모아놓아서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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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형, 눈물 많은 걷기 중독자. 복종에 익숙한 을. 평생 을로 살아갈 예정. 전 영화세상, 대전 씨네마떼크 컬트 대표. 전방위 무규칙 잡종 글쓰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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