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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규석 Nov 21. 2024

月刊 영화세상 제45호~제48호 편집 & 활동

영화세상 <대전 시네마테크 컬트>

대전 시네마테크 컬트 제45호(1997.6)


월간 영화세상 제45호(1997.6월)부터 제51호(1998.5월)까지의 편집된 내용과 함께 대전 시네마테크 컬트의 활동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앞에서는 매월 발행하는 영화세상 12권의 이야기를 12개월씩 총 3번에 걸쳐서 해설과 설명을 해드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합본 1호, 합본 2호, 합본 3호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45호부터 48호까지 이 챕터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이유는 말씀드렸던 것처럼 표지 타이틀도 '영화세상'에서 '시네마테크 컬트'라는 이름으로 통합 변경하여 사용되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새 출발을 하면서 시네마테크 'CULT'의 의미도 재정립을 했는데 'C'는 영화세상, 영화천국 및 영화도시를 의미하고 'U'는 영화운동, 영화에 대한 평가, 'L'영화사랑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T'는 영화의 진실 참된 영화를 의미한다고 규정했습니다. 다시 말해 '영화사랑'을 바탕으로 '영화운동'을 펼쳐 '영화의 진실'에 다가가 궁극적으로는 "영화세상"을 만들자는 뜻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팀의 내분으로 하나의 이름으로 활동하지 못하고 따로 독립해 나간 팀(시네타테크 1895)이 있어서 그 시점을 구분하기 위한 뜻도 있습니다. 어쨌든 리더인 저의 부족함으로 팀이 나뉘게 되었는데 지금도 제 부족함을 잘못을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그런 분위기를 일신하고자 하는 뜻도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기존의 영화세상 회원과 친구들의 의견도 묻지 않고 지역적인 활동을 강조하기로 하였으니 이 또한 그분들에게는 죄송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이제 28년이 지나서 생각해 보니 즉 그 당시의 제 나이의 갑절을 먹고 나서 돌아보면 정말 제가 너무 많이 부족하고 저의 아집대로 끌고 나가지 않았나 하도 많이 반성하게 됩니다.

각 지역 테크의 홍보 부츠
1997.5.30 전국씨네마테크연합 발족식


  각설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가자면 45호부터 48호 그러니까 1997년 6월부터 9월까지는 합본 4호가 만들어지는 12권은 제때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용을 보니까 42 호에 나온 내용처럼 영화세상 컬트의 문제점이 있고 나서는 그 활동 동력이 위축되었다는 내용을 보면 강하게 듭니다. 45호에 표지를 '영화세상'에서 거의 4년여 만에 '시네마테크 컬트'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새로운 시도 내지는 시작을 다짐하는 의미를 표시합니다. 45호(1997.6)에 나온 "컬트와 영화세상"의 황규석 씨에게 물었습니다"가 7p에 걸쳐 장문의 인터뷰 기사로 실려있습니다. 25호부터 2년여 동안 회지의 디자인 편집을 해주고 언제나 뒤에서 묵묵히 서포트를 해준 친구이자 운영위원이 최정호 친구의 질문에 답변하는 저의 의견과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최정호 씨도 정말 많은 충고와 고언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또 변화를 요구했고요. 제가 많이 바뀌어서 포용과 의견을 받아서 운영을 해나가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이후 컬트에서 진행한 시민을 위한 열린 영화제와 개봉영화 '킹덤'의 상영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변화하지 않고는 살아나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각 떼끄 대표자들의 인사말 부산 시네마테크 1/24 김성남, 컬트 황규석, 광주 영화로 세상보기 박상백, 전주 온고을영화터 장영목, 대구 제7예술 서영지(좌측부터)


 45호 회지에 안내를 한 것처럼 7월에 처음으로 외부 상영회를 했습니다. 8일간 대전의 신도심의 지하 호프집 '토론토'라는 곳입니다. 중학교 동창하고 어떻게 알게 되어 방문을 했는데 안 그래도 영어를 가르치는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습니다. 맥주도 마시며 영화를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았습니다. 그래서 라쇼몽, 동경이야기, 우게쯔 이야기. 7인의 사무라이, 부초 등 흑백 일본 고전 영화를 상영했습니다. 좀 시원한 액션영화나 재미있고 신선한 영화를 상영할 걸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여하튼 밖에서 영화제를 시도했다는 자체로 의미가 있었습니다. 96년 가을 시네아트홀에서 있었던 영화가 있어 좋은 아침에 이은 두 번째 외부 상영이었습니다. 또 당시 물어물오 컬트에 가끔 찾아오는 외국인들 중에 두 분은 또 개인적으로 제가 찾아가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알바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운영비를 벌었습니다. 바닷가 엠티도 따라온 친구도 있는데 캐나다인인 모렌씨는 지금 홍콩에 사는데 아직도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97.7월  "일본 고전 영화제" 이후 7월 하순에는 영화전문점 칸느를 정리하고 청주에 갤러리를 만은 김진욱 씨가 기획한 뒤집어보는 공포영화제가 있었습니다.  97.8월에는 "홍콩 영화의 이해 - 홍콩 영화제"(8월 4일~ 8월 11 일)를 사무실에서 진행합니다. 총관객은 46명이었습니다. 8월 21일 목요일에는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 대전 동부경찰서 정보과에서 조형사라는 분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동부경찰서 관할인 대전대학교 신문에 기고한 음비법 등 에 대해서 물어보더라고요. 그때 아 우리가 요주의 대상은 대상인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법을 문제를 삼고 또 사상을 건드리는 영화를 다루고 있어서 그런 거 같습니다. 나중에는 근처의 중부경찰서에도 보안과 형사 두 명이 찾아와 사무실을 뒤진 일도 있었습니다.   제주 4.3 '레드 헌트'(조성봉 감독, 1997)를 상영 준비 하던 때였습니다.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의 자료를 뒤져보니 컬트에서 일을 한지 얼마 안 되던 시점에 작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1996년 11월 8일 금요일 대전 중구 선화1동 사무소 이 00 문화공보담장자 호출이 있어서 급히 컬트에 달려갔습니다. "여기서 불법 복사된 테이프로 그것도
의심스러운 내용을 보여주는 것은 불법이라는 것 알죠?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저는 여기서 월급을 받지도 않았고 돈을 벌기 위해
이곳에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화를 공부하고 토론하고..."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분이 복사된 비디오 테이프 몇 개를 가져갔습니다.

그때 안 그래도 몸이 안 좋았는데 두통이 심해졌습니다.

일요일 동사무소 직원과 다시 통화를 했습니다
동호회 형태로 영화를 보니까 그건 괜찮다는 반응 보였습니다. 공부를 하고 영화를 본다면 말입니다.

당시 스크린쿼터 명예 감시단 활동을 했는데 그래서

누가 찔렀는가 추측도 했습니다. 역시 쉬운 일이 없다고

느꼈답니다.  '그라, 그게 무슨 문제냐. 그냥 밀어붙이자" 맘을 다잡았답니다.


중부경찰서 보안과 형사 2명이 갑자기 들이닥침
열심히 업무를 보는 척...


  참고로 8월 6일은 대한항공 여객기가 괌의 공항 근처 니미츠 힐에서 추락사고가 나 229명이 숨지는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운영위원이었던 최준 씨가 기획한 97.9월 "재즈 음악 영화제"가 반응이 좀 좋았습니다. 가을날 재즈 음악과 함께 몇 안 되는 회원들과 관객이었만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8월에는 컬트 사무실에서 처음으로 매주 수요일 오후 한국영화 읽기의 즐거움, 컬트 영화란, 영화 관련 법의 문제점과 대안이라는 강좌 프로그램도 만들었습니다. 일정표에는 게시를 했지만 준비부족으로 진행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세밀한 기획이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나우누리 센티스 영화혁명 영화동호회 사람들과 친하게 연락을 하고 지냈습니다. 제가 온라인 회원으로 가입을 하고 사무실에 초대를 했습니다. 흥미와 재미를 쫒던 친구들에게 영화 읽기의 즐거움을 전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47호(97년 8월) 회지에서는 나우누리 테크연합 게시판에 올린 글들을 갈무리해서 올렸습니다. 시시콜콜한 컬트의 홍보에서부터 불안한 미래에 대한 내용까지... 그 내용을 보면 당시 PC통신에 제가 좀 경도된 면이 솔직히 없지 않았습니다. PC 통신 회원들을 또 오프라인이 주 활동무대인 우리 컬트 회원으로 받아 들기도 했습니다. 정보의 공유와 영상문화운동의 연대를 위해서 물론 여전히 시네마떼크 연합의 활동에 참여하고 알리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지난 5월 30일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발족한 전국시네마테크연합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관심과 주의를 기울였던 것입니다.


제48호(97년 9월)에서는 8월 30일 토요일 부천 시네마테크 '영화열망'에서 주최한 전국시네마테크연합 1회 대표장회의에도 참석을 하고 자세히 회의 내용을 정리해서 올렸습니다. 

주관인 부천 영화열망을 비롯해

문화학교 서울, 부산 시네마테크 1/24, 광주 영화로세상보기, 대전 시네마테크 컬트, 전주 온고을 영화터, 대구 제7예술, 대구 시네하우스, 청주 시네오디세이, 제주 영화만세, 성남 시선, 강릉 시네마테크,대전 1895 등 모두 13 단체가 참석했습니다.

 한국영화연구소 기획실에서 작성한 소형단편영화 및 영화제 심의제도 개선을 위한 준비(안)도(1997년 5월 16일) 옮겼습니다. 미래의 창작자들을 위한 안내였습니다. 그래도 이전의 회지에 비하면 좀 허전하다고 할까요 그런 느낌을 솔직히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 운영위원인 최정호 친구의 "컬트- 미래를 위한 도약 제안서"48호 회지의 제일 마지막에 나옵니다. 바로 대전 시네마테크 컬트의 홈페이지 기획안입니다. 그때 이 제안을 받아들여 시작을 했더라면 정말 지금까지도 컬트가 살아남아 보다 멋진 모습으로 영상문화운동을 개척하고 진행하고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시네마테크 대표자회의(1997.8.30.토 오후 7시) 부천 헐리우드 레스토랑 2층
시네마테크연합 제1회 대표자회의(부천 영화열망)
시사실로 쓰인 컬트 사무실 안쪽, 바닥은 초록 에폭시페인트


P.S 다음 16번째 글에서는 49호, 50호, 51호의 내용과 활동을 세세하게 하겠습니다.

폭발적인 호응을 받은 시민을 위한 무료 열린 영화제 개최, 2년 만에 대전의 영상문화의 실태 설문조사 결과 보고서, 그리고 심야영화 상영이라는 대전지역의 화제를 일으킨 <킹덤>의 상영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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