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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규석 Nov 25. 2024

시네마테크 컬트 제49호~제51호 편집 & 활동

응답하라! <영화세상 시네마테크 컬트>

1997 시민을 위한 열린 영화제 공식 포스터

  시네마테크 컬트 소식지 제49호는 1997년 12월 제1회 시민을 위한 열린 영화제에 맞추어 제작이 되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외부에서 영화제를 개최하였습니다. 이번 영화제를 기획하면서 좀 더 시민에게 '컬트'가 더 가까이 다가가는 친근한 영화제가 되었으면 했습니다. 그래서 무료로 진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회지는 2천 에 판매했습니다.

일종의 후원 개념이랄까요. 상영작은 왕가의 감독의 '해피투게더'(춘광사설),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 레터', 장 위엔 감독의 '북경 녀석들', 마티유 카소비츠 감독의 '증오' 이렇게 네 작품을 토의 끝에 골랐습니다. 그때 운영위원으로 는 배재대에서 영화를 전공한 통영 출신의 정용진 친구도 최정호 친구와 함께 많은 일을 도와주었습니다. 상영장소가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섭외 끝에 신원텔레컴 지하 강당을 장소로 정했습니다. 영화에 대한 소개는 영화를 기획한 정용진과 제가 쓴 글로 대신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2번째로 대전의 영상문화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설문지는 나눠드리고 입구에서 회지는 2천 원에 판매를 했습니다. 포스터를 만들어서 외부에 회원들이 붙이러 다녔습니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서점과 극장가에 붙였습니다. 그리고 PC통신을 통한 홍보에도 노력을 했습니다.

월간 씨네마떼끄 컬트 제51호 표지 촬영
대전 시민을 위한 열린 영화제(1997.11.29~30)를 마치고...


  1997년 11월 29일(토), 30일(일) 양일간 개최한 영화제는 그야말로 대박이 났습니다. 발 디딜 틈도 없었습니다. 영화 시작 전에 영화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회원들이 했습니다. 이틀간 오후 1시, 3시, 5시, 7시 4번씩 그러니까 작품당 2번의 상영을 했습니다. 역시 해피투게더, 러브레터가 상영된 토, 일요일 저녁은 디딜 틈도 없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때 입장료를 받고 상영기간을 연장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았습니다. 그러나 후회는 없습니다. 조악한 화질의 액정 프로젝터로 상영하는 영화였지만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영화, 화제작에 대한 열망을 가진 관객들이 물밀듯이 정말이지 들어왔습니다. 우리 컬트 회원들이 정말 보람을 느끼던 시간이었습니다. 저희는 월간 컬트 49호 회지를 인쇄해 필요하신 분들에게 2천 원에 판매했습니다. 그건 후원 성격이라는 설명도 들었습니다. 결과론이지만 그때 입장료를 조금이라도 받았으면 이후의 컬트 운영에 크게 도움이 되었을 거 같은데 그래도 많은 분들에게 대전 시네마테크 컬트의 존재를 각인시킨 중요한 영화제였습니다. 아울러 대전의 영상문화발전에 관한 2년 만에 두 번째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미리 설문지를 마련해서 영화제를 보러 오신 분들의 의견을 물은 것입니다. 10대 후반과 20대의 관객 557명(남 205명, 여 352명)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영화제에 참석한 젊은 관객들의 의견을 물은 것입니다.

어르신들도 영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과연 컬트는 이런 분들의 소망을 잘 이어갔을까
불편한 자리임에도 가득 메운 관객들
이틀간 1000명이 넘는 관객이 다녀간 '시민을 위한 무료 열린영화제(1997.11)'


 영화세상 2주년을 맞아 실시한 첫 번째 대전의 영상문화에 대한 636명이 답한 설문조사가 있었는데 그때는 서점가, 극장가에서 직접 우리 컬트회원이 찾아가 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회지 제24호(1995년 9월)에 결과가 발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설문 조사는 영화세상 컬트 4주년을 맞아서 제49호(1997년 12월) 발행과 함께 개최한 '시민을 위한 열린 영화제'와 함께 실시했습니다. 토, 일 양일간 몰린 대전 시민 1,000여 명의 넘게 관람한 관객들 중에서 557명이 설문에 응해주셨습니다. 두 번째 대전의 영상문화 발전에 대한 설문조사의 결과 보고서가 바로 다음 컬트 제50호에(1998년 2월)에 공개가 되었습니다.  총 11개의 설문조사 중의 마지막 11번 문항은 주관식 문항으로 영상문화발전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달라고 설문지 뒷면 여백에 적어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정말 다양한 의견이 적혔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직접 회지에 실인 보고서에 인용을 했습니다. 또한 50호에서는 열린 영화제를 준비한 우리 컬트 운영위원들의 소회를 담았습니다.  불편한 환경에서 개봉되지 않는 작품을 볼 수밖에 없는 관객들이 직접 나서서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이끌어야 한 다는 의견을 펼쳤습니다. 바로 그런 중지를 모아야 하는 우리 시네마테크 컬트의 역할도 중요하게 된 것입니다.

한국방송연기예술원 상영회를 마치고


 컬트 제49호(1997년 12월), 제50호(1998년 2월)호는 기존의 회지와는 달리 마스터 인쇄를 하여 500부씩 발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서점가와 극장에 배포를 조금씩 했습니다. 물론 외부 상영은 계속했습니다. 제50호 회지(98년 2월)에서는 제1회 예술영화감상회를 진행했습니다. 장소는 한국방송연극영화예술원이라는 연기학원의 소강당을 빌려서 1998년 1월 23일부터 25일까지 3일간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 기동대', 김기영 감독의 '하녀',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여자는 여자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키즈 리턴', 스텐리 큐브릭 감독의 '시계태엽 오렌지', 짐 샤먼 감독의 '록키 호러 픽쳐쇼', 톰 디칠로 감독의 '망각의 삶', 왕가위 감독의 '해피 투게더'를 상영했습니다. 오후 1시, 3시, 5시, 7시 일일 4회 총 12회 상영을 했습니다. 내부 상영으로는 '재미있는 영화 알면서 보기. 3'과 한국영화 보기의 즐거움을 2월에 상영을 사무실에서 진행했습니다.

수제 '킹덤' 간판이 달린 대전역 앞 대전 아카데미극장(2006년 폐관)
대학가 차량광고와 게시판 광고
12시 심야상영 아카데미에 가득찬 관객들


  그리고 1998년 5월에 드디어 공식적인 대전 시네마테크 컬트의 마지막 회지인 제51호 회지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2월 이후 또 3개월의 시간이 지나서 나왔는데 이제 매달 나와야 한다는 부담감도 두 번 늦게 나오니 사라졌습니다. 충실한 내용을 채우면 되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시민을 위한 열린 영화제로 힘을 빼서 충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면서 준비한 것이 바로 '킹덤'의 대전 상영입니다. 이 영화는 라스폰 트리에와 모르텐 안프레드 감독의 영화로 1997년 제1회 부천 국제영화제의 화제작으로 영화제에 참가하여 직접 보았는데 4시간 39분의 러닝타임 동안 정말 손에 땀을 쥐게 만든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가 대구에서 상영을 하고 관객의 호응을 얻는다고 해서 우리도 시도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부산에서 올라와 대전에서 살며 컬트의 운영위원이었던 최아휘, 정용진, 김요석 친구들과 함께 기획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대전 최초의 밤 12시 심야 상영이었습니다.

98년 1월 2주간의 '킹덤' 상영후 컬트 제51호(1998.2) 1.000부를 인쇄하여 극장과 서점에 배포하였다.


이런 영화는 우리 대전 관객들도 극장에서 꼭 보아야 한다는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명제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이 영화의 수입배급사는 저명한 이강백 극작가의 동생인 이강오 대표의 KJ엔터테인먼트였습니다. 그곳의 연락처를 수소문해서 대전의 대전 영화사에서 대전의 극장 담장자와 만나 협상을 했습니다. 그래서 대전 아카데미 극장(2016년 폐관)과 동보극장(현 대전아트시네마)에서 각 1주일씩 상영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전 많은 분들이 오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헌혈증으로 제시하면 무료로 관람을 할 수 있는 이벤트를 했습니다. 이후에 헌혈증 300여 장을 중구청을 통해 백혈병 소년에게 전달하였습니다. 그때 홍보비를 극장과 배급사 등에서 80여만 원을 받은 기억이 납니다. 물론 그 홍보비는 1,000부를 발행한 제51호 회지에도 쓰였습니다.  대전의 영화사 관계자들도 놀라는 대성황을 이룬 상영이었습니다.

참여한 이들의 소회도 51호에 잘 나와있습니다.

킹덤 기획한 컬트 운영위원 최아휘, 김요석, 정용진, 황규석
대전 아카데미극장에서 컬트 홍보 부츠


  반신반의하던 극장 관계자들로서는 영화를 좋아해도 시장을 모르는 젊은이들이 날뛰는 모습에 반신반의하셨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여하튼 저희들은 학교에 차량에 포스터를 붙이고 홍보를 나가기도 했습니다. 개봉이 되자 정말 많은 관람객이 왔습니다. 긴 영화라 중간에 휴식 시간이 있었던 특이한 경험도 했습니다. 모두들 함께 놀라고 마지막에는 박수를 쳤습니다. 긴 상영시간이라 극장에 폐가 되지는 않았으면 했는데 매점도 인산인해였습니다. 그리고 영화상영 전에 우리 컬트의 운여위원이 올라가 개봉 배경에 대해서 컬트에 대해 간단히 소개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말 이지 '킹덤'의 성공은 우리 영화세상 대전 시네마테크 컬트가 진행한 뿌듯하고 감동적인 사례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시민을 위한 열린 영화제와 말입니다.


아울러 제51호 회지에서는 서울에서 당시 작은 화제를 일으켰던 십만 원 비디오 영화제를 기획한 박선욱 씨와 인터뷰로 그 의미를 설명하고 제1회 대전 창작비디오영화제 '비출시(非出視)'를 개최하기로 하고 작품을 모집 공고를 합니다. 십만 원 영화제의 포맷을 가져와 대상에 상금 10만 원을 주는 행사를 기획한 것입니다. 그러나 제작 환경이 크지 않았고 관련 학과와의 연계도 미흡해서 작품이 오지 않아 기본의 십만 원 영화제 수상작을 트는 정도로 하는 실패를 겪게 됩니다. 이제 보는 것에서 만드는 이를 위한 컬트의 여정이 시작되었지만 그 동력은 준비 미흡으로 좌절을 겪은 것입니다. 그리고 51호에서는 제2회 서울 국제독립영화제(1998년 3월, 코아아트홀 & 시네코아)를 다녀온 후기와 함께 독립영화의 제작 인프라 확대와 상영을 위한 인디포럼 '98에 정용진 컬트 운영위원이 참석하여 상영에 대한 기대와 전망에 대한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것은 전국 시네마테크 연합과 지방상영으로 또 이어지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이제 시네마테크 컬트는 극장 상영과 한국의 독립영화에 대하여 포커스를 조금씩 이동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결국은 실패와 단절로 이어졌지만 말입니다.

실패로 끝난 창작비디오영화제
영화소개하는 최준, 김요섭 운영위원
영화소개하는 정용진
나우누리 신원텔레컴 지하 열린 영화제 복도의 홍보부츠
삼성생명에서 진행한 정기 영화 감상회
중구 대흥동 중부경찰서 뒤 대흥빌딩 501호 대전 시네마떼끄 컬트 외벽에 붙인 로고
月刊 영화세상 시네마테크 컬트 합본호1,2,3,4(왼쪽 장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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