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가슴속에 새긴 부산영화제의 추억

제3회 부산 국제영화제 참가 보고서

by 황규석

1998년 3회째를 맞는 부산 국제영화제에 붙여서


부산 국제영화제는 아시아의 영화를 소개하는 데 있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영화제가 아니면 우리가 언제 필리핀이며, 인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변방의 영화를 접할 수 있겠는가. 또 세계 영화계에서 지난 50년대의 화려한 명성을 다시 찾아가고 있는 일본의 영화들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까.


그리고 올 가을에 새로 개봉하는 한국영화를 재미있고 맛있게 볼 수 있으며 자본과 내용에서 주류인 충무로 영화와는 다른 독립영화(단편, 다큐, 애니메이션 등)를 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된다. 또한 앞서 세계 도처에서 개최한 다양한 영화제의 수상작이나 화제작들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영화제이면서 성공적으로 열리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그 뜨거운 열기의 현장 부산에서 나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에 주목했다. 영화를 온몸으로 만끽하는 사람들의 환희에 찬 얼굴을 말이다. 그건 부산 국제영화제에 참가하여 영화를 보는 것 이상의 색다르고 즐거운 경험이다.


왜냐하면 영화제의 공간은 영화와 관객이 만나는 장소이면서 또 하나의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관객가 만나는 장소가 극장이라면 관객과 관객이 만나고 관객과 영화를 만드는 배우, 감독, 제작자들이 서로 대화하는 곳이기도 하다. 부산은 이렇게 만남을 통한 다양한 영화문화가 꽃이 피는 곳이다.


무엇보다도 영화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 열기를 직접 느끼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마저도 서로 동지애로 바라보는 곳이 영화제가 열리는 남포동 극장가인 것이다. 이곳 극장 밖에서 보이고 겪는 일들은 내가 스크린을 통해 본 영화의 감동 혹은 잔상들과 함께 더욱더 깊은 향기를 간직한 추억을 만들게 하는 훌륭한 소스가 된다.


1996년 제 1회 부산 국제영화에 BIFF 광장에서..

눈을 돌려 부산극장과 부영극장 골목을 가면 인파들에 치여 발을 떼일 수 없을 정도이다. 시간에 맞춰 초청한 감독과 배우의 인사가 간이 야외무대에서 벌어지는데 그때는 관객의 커다란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요란하다. 늘 여러 매체의 카메라가 돌아가고 열혈 영화광의 카메라 셔터 소리와 캠코더도 부지런히 돌아간다.


구석구석을 구경하며 다리 품을 팔다가 편의점 간이 의자에 앉아 맥주나 음료를 마시기도 한다. 꼬치구이를 먹으면서 프로그램을 들고 영화를 사냥(!)하러 다니는 관객들을 바라보는 재미도 각별하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으며 근처 계단이나 아무 곳이나 일단 앉고 본다.


잠시 후, 아 그 유명한 홍콩의 관금붕 감독, 그리고 대만의 채명량 감독이 지나가는 것을 발견한다. 아! <애정만세>를 보고 얼마나 숨이 막혔던가.... 어떤 영화 영화팬 두 명이 감독을 알아보고 영화 팸플렛에 사인을 받고 얼굴이 붉어진다.


영화계 마당발 문성근, 명계남 씨도 볼 수 있다. 양화잡지나 책에 글을 쓰는 영화가 교수나 영화평론가들도 알아보았다. 독립영화를 만드는 감독들도 아이디카드를 가슴에 차고 다닌다. 영화관계자들이나 스타를 그냥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권리(!)도 있다.


영화제에서 주인공은 영화이기도 하지만 관객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나 배우 그리고 관객 역시 똑같이 소중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옷차람이나 일상의 얼굴의 표정과 주름을 확인하고 다시 스크린에서 역할을 맡은 배우의 연기에 집중을 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종일 혹은 며칠을 극장을 돌아다니면 피곤하고 지치지 마련이다. 그래도 극장엔 불이 꺼지고 영사기가 돌아간다. 하얀 스크린 위에는 우리가 꿈꾸고 상상했던 이야기가 펼쳐진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현실과 상상보다 더 날카로운 사실이 펼쳐진다. 사람들이 스크린을 통해 모이고 만나고 감정을 느끼고 대화한다.


우리 관객들은 영화제를 통해서 현실과 잠깐 단절되었다가 다시 1년 후를 기억하며 각자의 일상으로 삶의 전쟁터로 돌아갈 것이다. 그들, 부산 국제영화제라는 배에 탄 선원과 승객들의 꿈속에서 어떤 스토리에 어떤 배우들이 나와 함께 연기를 펼칠지 궁금하다.


부산은 매력 있는 영화제 유람선을 매년 가을 뛰우고 있다. 우린 설레는 가슴을 안고 그 배에 올라타 바닷속 보물을 발견하기 위해 눈을 끄게 뜨고 항해를 즐긴다. 우리는 부산 국제영화제에 가서 이렇게 우리의 가슴속에 영화라는 추억의 문신과 파편을 새기고 돌아오는 것이다.


<영상문화도서관 대전 시네마테크 컬트 대표 황규석>


"금강산도 식후경" 1998년 10월 12일 월요일 <제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