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커플의 어긋난 사랑, 중경삼림에 대한 K.S의 두서없는 질문세례
"이해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별개예요. 사랑은 변하기 때문이죠"
'6시간 후 그녀는 다른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다'(독백) 푸른색 쫄티에 흰 브래지어 끈이 살짝 드러내면서 나타난 훼이(왕정문). 하얗고 창백한 얼굴에 커다란 검은 눈동자. 이 세상에 유통기한이 없는 것은 없을까? 나와 통조림은 아무에게 별 상관이 없음을....(무슨 뜻일까?)
아무: '이제 첫 번째로 들어온 여자를 사랑해야지" 경찰 223호 그리고 57시간. 숫자의 조합. 똑같은 가게. 들고 찍기. 교묘한 편집이 주는 허무함!
벽에 등을 기대고 번화기에 대고 말하는 아무의 모습을 바르게 스크린에선 보여주고 주위의 다른 모습을 기울어져 보인다. 스쳐 지나가는 주인공들의 모습 - 커다란 호랑이(고양이?) 인형을 완구점에서 사가는 왕정문은 임청하가 담배를 물고 쇼윈도에 기대에 갈등하는 모습을 보일 때 스치듯 지나간다.
곧 이어서 양조위사 육교의 난간에 기대어 멍하니 바라보는 그의 모습의 스치듯 지나간다. 코믹한 장명, 다리에 쥐가 난 것처럼 안 움직여요. 물병에 뭐를 넣었을까?
세 번째 감상에서, 블랙커피를 마시는 양조위를 위한 수면제구나. 정어리 통조리에 파잉애플 상표를 붙인 이유는 무얼까? 임청하도 괴로워서 금성무와 모텔에서 쉬었다. 왕정문은 우리 집에서 잠을 잤다. 물론 나(양조위)도 잠을 잤고 깨우지 못했다. 두 에피소드 모두가 먼저 잠든 사람은 여자였다. 내 여자가 자면서 꿈을 꾸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겠다.
인도인들의 역할? 왜 백인 남자가 죽었을 때 떨어진 통조림 깡통이 클로즈업이 되었을까? 그리고 던져진 금발의 가발... 패스트푸드 점에서 중년 주인의 말: "너무 실망하지 마, 여자는 또 있어" 양조위 방의 호랑이 인형은 왕정문이 사다 놓은 게 맞지? 양조위는 방이 많은 변화를 일으켰는데 왜 누가 그랬을까 하고 의심을 한 번도 안 했는지 궁금하네... 그런 걸 눈치채지 못할 만큼 실연의 아픔에 울었는지 궁금하다.
왕정문: "즐기고 싶어요. 아무 데서나!"
촬영: 양조위의 머릿속으로 유리창 너머로 그의 연인이었던 스튜어디스가 한 남자의 오토바이를 타고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 쓰레기통에 버린 왕정문이 편지를 양조위는 바로 주웠을까? 왕정문이 머리를 길러 제복을 입고 나타난 모습은 양조위가 제복을 벗어버린 모습과 마찬가지로 나의 눈에게는 첫인상이 깊어서인지 그리 이쁘게 보이지 않았다. 변하지 않는 첫 모습의 인상이 너무 뚜렷하고 기억하고 싶어서...
그들은 짧은 머리와 제복이 어울려... 그렇지? 맞지? 안 그래?
캘리포니아 드리밍이 주는 아려나고 섬뜩한 & 기쁨과 슬픔의 정체는 무엇일까? 왕가위. 그의 영화가 주는 이 허무와 고독과 사랑의 최종 목적지는 과연 캘리포니아라는 것일까?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코카콜라, 야채샐러드, 삐삐의 음성 사서함. 그의 영화가 주는 아련한 아름다움이 나를 플라토닉 러브와 나르시시즘에서 혼돈케 한다.
왕정문이 양조위의 방에서 들썩이며 머리카락을 찾을 때 자연스럽게 클로즈업된 작지만 탄력 있는 귀여운 히프. 요것도 부드러운 촬영이다. 그 환한 어느 영화보다도 아름다움 조명과 스튜디오가 아닌 실제 장소에서의 촬영이 준 빼꼭한 사실감과 솔직한 디테일.
극장에 두 번 가서 3번을 보았지만 몇 번이라도 더 보고 싶은 이 영화 <중경삼림>. 나, K.S 이 영화에 홀딱 빠지고 말았다. 갖고 싶다. 왕정문의 저 새침한 표정을....
홍콩의 정치적, 문화적 특수성이 발효되어 빚어낸 아시아의 작은 나라의 연인들의 혼란스러운 모습. 거기에 묻어난 서양인의 개인적 사고방식과 생활. 거기서 황인종(?)의 특성(!)을 발견하겠다는 마니아(나)의 열기. 그것이 호기심이든 할리우드적인 영화를 탈출하겠다는 반항심도 한몫하고 있다.
이미 우리는 문화의 다양함에 노출되어 있기에 이 영화는 지금의 우리의 현실을 바로 영화의 곳곳에서 찾아내고 대비시킬 수 있는 것 같다. 그야말로 세계화.... 캘리포니아 드리밍. 난 이 노래에 사실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