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웨이(王家卫, Wong Karwai)에 대한 단상

왕가위 감독 영화의 특성과 그의 영화를 소비하는 형태에 대하여

by 황규석

'왕자웨이'라고 중국식으로 불려지는 왕가위 감독. 그가 나에게 처음 다가온 것은 <열혈남아>에서였다. 당시 중학생이던 남동생은 빌려온 비디오테이프의 대사까지 녹음을 해놓기까지 했다. 그러므로 날 왕자위이에게 소개팅 시켜준 사람은 내 남동생이었다. 호기심이 생기는 영화였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영화에 대해 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동사서독, 중경삼림, 타락천사

<중경삼림>이란 영화를 극장에서 대여섯 번이나 보고 나서 점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열혈남아>를 다시 정독하고 <아비정전>, <동사서독>을 비디오로 감상하였다. 뭐라고 딱 잡아서 말할 수 없는 그의 영화의 매력이 아직도 남아있다. 아직 <타락천사>를 감상하지 못해서 그의 필모그래피 모두에 관해서 얘기할 수는 없지만 왕자웨이 감독의 작품이 갖는 특징을 몇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첫 번째로 그는 심각한 사회의식을 담아내고 문제를 제기하는 의식 있고 중량감 있는 작품을 만드어내지는 않는다. 그의 영화들은 가볍고 단순하며 즉흥적이다. 사회적인 성격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품에 가까운 이야기를 영상화한다. 사회적 리얼리즘 영화 또는 정치적인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


둘째로 그의 영화의 표면상 나타나는 특징에서 슬로모션과 함께 나타나는 점프 컷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물감이 번지듯 서서히 감정의 흐름이 한지에 동화되듯 그려지는 영상이 그의 영화 소품 주크박스와 블루 톤의 질감을 나타내는 조명을 받은 필름과 합쳐져서 아주 감성적인 영화가 되고 만다.


셋째로 감독 자신이 주는 신비스러운 스타성이다. 매끈한 생머리 외모와 검은 선글라스를 낀 고정화된 외모가 영화의 차별성과 함께 그의 이미지를 아주 독특하게 만들어준다. 감독의 스타성의 스타의 이미지를 확대하고 재생산하려는 팬과 언론에게는 아주 구미가 당기는 특별한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왕자웨이 영화가 가지는 특징을 이렇게 주제(theme), 영상(film), 감독(director) 세 부분으로 나누어 나누어 보았는데 이 세 가지 요소가 우리 영화 관객들에게 먹혀들기 위해서는 사실 시행착오도 있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이라는 세기말적인 사회분위기와 문화상품의 주소비층 인 10대와 20대의 의식과 맞아떨어져 그는 다시 부활을 했다.


그가 언제 언제 사망(!)할지 숙청(?)당할지 모르더라도 그의 부활과 열혈신도들의 맹목적인 사랑에 대한 원인을 찾아보는 일은 현재의 문화현상의 일부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이며 나름대로 의의가 있는 일이 아닐까? 홍콩의 스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왕자웨이 감독은 우리와 같은 동양인이라는 동질감을 갖게 함으로써 팬들의 접근이 쉬워진다.


동시에 우리보다 더 자연스럽게 미국이 콜라, 편의점 문화를 습득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직 있다. 갈수록 모든 면에서 개방화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그들의 자유로운 문화향유 형태와 개방적인 사고방식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는 커다란 공감과 동경심과 아울러 부러움을 아주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다.


미국이라는 자본주의의 나라, 기회주의의 나라, 세계 최강의 나라에 우리나라가 지리상으로는 더 근접하고 있지만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여서 영어도 공용어이기도 하거니와 문화적으로나 심정적으로는 그들(여기서는) 왕자웨이)과 더 가깝게 근접하고 있다.


지독한 일상의 탈출구를 찾는 우리 젊은 관객들은 그야말로 지름길을 발견한 느낌이고 동행인을 만나 반가운 느낌일 것이다. 또 할리우드 바이러스 예방백신을 맞이 않은 (맞을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게는 개방과 보수 사이의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편안하게 그의 영화에 접근할 수가 있는 기름진 토양이 된다.


1990년대를 지칭하는 X세대의 기질과 왕자웨이 감독의 개성과 자율성이 자연스럽게 포옹할 수 있었다. 단순하고 즉흥적인 사람들의 구미에 그의 영화는 아주 자연스럽게 맞물릴 수가 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상실감의 문제이다.


실연, 기다림, 자유로움이 그의 시간해석과 맞물려 진하게 풍기는 상실감은 그가 말하는 낙관주의의 또 다른 출구이자 느낌표이다. 10대는 사회와 학교, 개인가 개인 친구 사이의 상실감과 낙관주의를 배우고, 20대는 가족과 연인과 개인의 역사에 대한 상실감을 그에게 기대고 부탁받고 위안을 바는 것이다.


왕자웨이 영화를 즐기은 방법은 따로 있지 않다. 이것은 확대되고 재상산되어 왜곡된 그의 장보에서 깨닫게 되는 실망감과 허탈감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의 영화는 그때그때의 감정에 충실해서 보아야 한다. 예전의 그의 영화를 대했을 때의 기분을 되살리며 추억을 되살리며 보는 방법은 왕자웨이를 사랑하던 때보다 더 왕자웨이를 추하게 만드는 일이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왕자웨이 신도들이여! 자신의 삶에 충실하라. 그리고 그의 영화는 과거 아름답던 우리의 앨범 속의 흑백사진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는 삶의 찰나이자 통과의례라고 생각하자.


특집 / "왕가위 영화와 열풍에 관한 우리들의 생각"에서

(월간 영화세상 제29호 [1996년 2월])



왕가위 감독과 단짝인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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