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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도피 D+21 제주의 빛과 어두움

용두암, 너븐숭이 4.3유적지, 성산일출봉

by 펜이

큰딸과 함께한 4박 5일 일정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온전히 이틀간 비가 와서 낮에 공항에 데려다주면서 괜히 미안하다.


서귀포에서 시계 50m의 안갯속을 뚫고 비상등을 켜고 달렸다.

제주로 넘어오는 순간 언제 그랬느냐며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층이 순식간에 나타났다.


천국의 느낌이 이럴까ㅎ

이구동성이다.




녹색 향연의 극치__새별 오름

그래서 공항 가는 길 도중에 새별 오름에 잠시 들러 녹색의 시원함을 보여주었다.

마눌님의 배려로.




30년 만의 해후__용두암

딸과 헤어지고 부부가 찾은 곳은 용두암이다.

30년 전 신혼여행지는 제주도가 대세였다.


지금처럼 커플 여행이 아닌 관광버스 단체 여행이었다.

'용두암'은 당연 필수 코스였고ㅎ


30년 전과 똑같은 용두암을 함께 보니 감회가 새롭다.

결정적인 순간에 마눌님이 주무시니 간밤에 설쳤나ㅎ





달밤에 뱃놀이__용연 구름다리

작년 걸었던 올레(17코스)의 기억을 찾아 용두암에서 동쪽으로 200여 미터 걸었다.

용이 살았다는 연못으로 여름밤에 뱃놀이를 했다는 용연야범(龍淵夜帆)이다.


용연 구름다리를 건너 주변 하천 절벽이 볼거리다.

물이 더 많았다면 쇠소깍 못지않을 풍광이다.


하천 절벽의 아카시아꽃이 옛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머리는 달짝지근한 꽃 맛을 기억하고 있


용연야범(龍淵夜帆), 한천을 한 바퀴 돌아오니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용연 구름다리와 정자가 운치스럽게 드리워져 있다.




우리의 아픈 현대사__너븐숭이4.3유적지

기수는 다시 동으로 동으로 천천히 달렸다.

시속 40~60km로 바다와 돌담이 쌓인 밭을 보며 여유도 부려본다.


제주4.3평화공원과 비슷한 곳을 찾았다.

너븐숭이4.3기념관이다.


올레 19코스로 작년에 이어 두 번째 방문이다.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지 천을 쳐놨다.


애기 무덤

주변에 4.3유적지가 있어 둘러보는데 보는 이의 가슴을 후벼판다.

군인들은 1949년 1월 혹독한 추위 속에 주민 천여 명을 북촌초등학교에 모이게 하고 빨갱이를 찾는다며 총으로 쏘고 마을을 불지르고 다른 곳에 데려가 죽이는 등 주민 620여 명을 학살했다.


갯무꽃이 이들을 위로하는 걸까...

비를 맞아 고개를 숙인 게 애처롭다.


북촌리 마을은 마을 규모에 비해 최고 인명 피해지였다.

기념관의 영상은 10여 년 전에 제작한 것으로 사망자가 300여 명으로 나오나 그동안 추가 신고를 통해 늘어났다는 해설사의 설명이다.


애기 무덤과 인형

학살 당시 어른 시신은 다른 곳에 안장되었으나 어린아이들은 임시 매장되었다.

현재 20기가 있는데 누군가 갖다 놓은 인형이 쓸쓸히 무덤을 지키고 있어 마눌님은 가슴 아파했다.


옴팡밭의 순이삼촌 문학비다.

'옴팡밭'은 오목하게 쏙 들어간 밭이라는 제주어다.


1973년 현기영 소설가의 소설 <순이삼촌>이 처음 4.3사건을 고발했다.

작가는 정보기관에 끌려가 고문도 당했다.


붉은 피를 상징하는 화산재 위에 비석들이 어지럽게 쓰러져 있다.

그날 총격에 의해 쓰러져 가던 주민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위령비가 보슬비를 맞으며 쓸쓸히 서 있다.


70년 전 그날의 아픔을 지켜본 너븐숭이 북촌리 앞바다

'낸시빌레'는 냉이나물 평지라는 제주어로 바위 위의 작은 틈에 자라는 낮은 평지를 얘기한다.


기념관에 전시된 강요배 화가의 작품이다.

엄마 주검 위에 배가 고파 젖무덤을 찾은 애기의 모습을 증언을 통해 그렸다.


아직도 미완성인 우리나라 현대사의 질곡 제주4.3사건을 하나라도 더 알기 위해 열심히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설명 하나하나에 깊은 한숨만 나온다.


실내 기념관에 이어 실외 유적지까지 안내하며 열정적으로 설명하시는 해설사분

이 글을 빌려 감사하다.


4.3사건 치유를 위한 대통령들의 노력들이다.

김대중 대통령: 4.3특별법 제정 서명


노무현 대통령: 정부 최초로 제주도민에게 사과

문재인 대통령: 너븐숭이 방문 및 정부 최초 70주년 행사 주관




몽환적인__성산일출봉

다음은 성산일출봉을 찾았다.

비와 구름에 드리워져 절반만 보인다.


여기도 펜이 신혼여행지다.

네 번째 찾았지만 신행 때만 신록의 맑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멀리 왼쪽에 광치기 해변이 보인다.

작년 올레(1코스)를 걸을 때 비바람이 너무 거세 우산이 부러졌던 아픈 추억이 떠오른다.


180m 높이의 성산일출봉을 끝까지 오른 기억이 없어 함께 추억 쌓기를 했다.


등경돌 바위의 앞 모습과 뒤 모습이다.

그리고 전설..


성산일출봉에는 독특한 바위들이 많다.


산을 오르며 빗물 사이로 코를 날름날름하게 만든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 녀석이다.

근데 이름은...


일출봉을 오를수록 시야는 구름 속을 헤맨다.

성산포 시내 조망은 포기한지 오래고 앞이라도 제대로 봤으면...


드디어 해발 180m 일출봉 정상이다.

매표소에서 30분, 하산까지 하면 총 50분이 소요된다.


운무에 가려진 세상이 더 신비롭게 다가온다.

역시 정상은 시야 확보가 어렵다.


내가 신선인지 신선이 구름인지 도통 헷갈린다.

고로 나는 구름인가ㅎ


"재잘재잘~ 조잘조잘~"

어서 올라오라는 선생님과 힘들다며 어리광을 부리는 학생들


이런 신경전을 여러 차례 목도했다.

먼저 간 아들 또래다.


또래들만 봐도 이리 보고 싶으니...

어이할꼬..


하산해서 본 일출봉 해변

비바람에 파도가 예사롭지 않다.


내려오니 일출봉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윤곽을 또렷이 보여준다.

변화무쌍한 제주 날씨에 또 한 번 혀를 내둘렀다.


연 이틀 장대비에 오늘은 오락가락했지만 제주 도피 행각은 계속됐다.

30년 전 신혼여행지 용두암과 성산일출봉을 돌며 추억을 곱씹을 수 있어 좋았다.


지난번 제주4.3평화공원을 통해 어렴풋이 알았던 제주4.3사건너븐숭이4.3유적지를 통해 정확히 알게 된 마눌님이다.

일조를 하게 돼 감사하다.


일정이 짧아 딸들에게 현장을 못 보여줘 아쉽다.

물론 이론상으로 알려줬지만...


제주4.3사건은 국민 모두가 알아야 할 우리의 아픈 현대사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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