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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도피 D+20 비 오는 날 딸과 함께 싸돌아댕기기

올레시장 주전부리, 이중섭거리와 우중 올레 걷기

by 펜이

제주를 다녀온 지도 벌써 1년이 되어간다.

아들이 갑자기 하늘의 별이 된 후 도피하듯 떠났다.


별이 된지도 1년 3개월...

시간이 안 가는 것 같아도 참 빠르다.


이 밤도 정신과 약을 먹고 잤건만 두 시와 네시에 깨어 잠을 뒤척인다.

아들이 떠난 후 현상이다.


남들은 다 잊은 줄 아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리움이 배가 된다.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는 말이 실감 난다.


이 세상과 하직하는 날 이 모든 고통이 끝날성싶다.

2017년 여름휴가 때 아들과 함께했던 제주의 추억을 생각하며 작년 부부 둘만의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서귀포올레시장 구경과 주전부리

어제에 이어 오늘도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모처럼 제주를 찾은 큰딸과 함께 느지막이 집을 나섰다.


비는 간헐적으로 내리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장대비가 쏟아지곤 한다.

어느 정단에 춤을 춰야 할지...


서귀포올레시장을 찾았다.
비가 오니 갈 곳 없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관광객의 발걸음과 상인의 손놀림이 활기차다.
점심때라 주전부리 하기 딱 좋다.


한라봉 주스와 흑돼지 꼬치를 샀다.
대게 그라탕과 마늘 통닭을 사서 시장 통로 벤치에 앉았다.

너도 나도 시장통 주전부리에 여념이 없다.
올레시장 만의 또 다른 매력이다.


시장통 횟집에서 신기하게 생긴 부채새우를 처음 봤다
발가벗은 딱새우는 펜이의 혀를 유혹했고, 수족관의 고등어는 활기차게 유영했다.

맨 우측 갈치는 워낙 커서 징그럽기까지 했는데 한 마리에 십만 원이 넘는단다.
며칠 전 구워 먹은 갈치는 육지의 맛과 비교할 수도 없는 부드러움을 선사했다.



이중섭 거리와 주거지

올레시장 인근의 이중섭거리를 찾았다.
다행히 비가 소강상태다.


셋이 우의를 입고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카페와 소품 가게를 둘러보고 이중섭 화가의 작품이 새긴 보도블록도 디뎌본다.


이중섭거리에 있는 이중섭 화가의 생전 주거지를 찾았다.
초가처럼 보이지만 제주에서 나는 새(억새와 비슷한 풀 종류)로 엮은 집이다.

이중섭 화가 가족이 제주에서 1년간 살았던 집이다.
이곳을 대여섯 번 찾았지만 오늘 아주 특별한 모습을 봤다.


이중섭 화가에게 당시 새를 놓은 주인 할머님을 만났다.
올해 97세로 귀가 안 들려 대화는 하지 못 했지만 마침 해설사분이 계셔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처마 끝에서 빗물이 운치 있게 떨어진다.
이중섭 화가도 이런 모습을 보며 작품을 구상했을까...


이중섭 화가 거주지 바로 옆 골목이다.
담쟁이덩굴이 이색적인 올레 6코스다.


이중섭미술관과 연리지

미대 출신 딸을 위해 예전에 봤던 이중섭미술관을 찾았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다.

월요일은 휴관ㅜㅜ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하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딸과 마눌님은 옷도 사고 소품도 사며 쇼핑도 즐겼다.
남자들은 딱히 살게 없다는ㅎ




올레 7코스 걷기

비 온 뒤에는 엉또 폭포를 찾으라는 얘기가 있어 내비를 맞췄다.

그런데 갈수록 장대비와 물안개로 시야가 30m도 안 됐다.


서귀포 구시가지에서 3km 밖에 안 벗어났는데...

제주에 와서 느끼는 건데 정말 제주 날씨는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급히 집 앞 올레로 수정했다.

우중 올레 걷기다.


올레 7코스
길 한가운데 민달팽이가 열심히 지나가고 있다.


백서향이라고 불리는 천리향이다.
향기가 천리까지 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비 오는 중에도 향기를 피운다.
작년 올레를 걸으며 콧잔등에 올려 상쾌하게 걷던 생각이 떠올랐다.


외돌개
서귀포항과 새섬, 문섬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외돌개다.

지난여름 아들과 함께했는데...


그 아들은 없다.
멀리 보이는 문섬이 순식간에 아들과 숨바꼭질한다.


비 오는 날 올레를 걸으며 엄마와 딸의 대화는 끊임이 이어진다.
요즘 근황과 인생살이일 게다.

펜이는 이따금 올레에 대한 정보만 툭툭 던질 뿐이다.
작년 올레 완주의 경험담으로.


저녁은 올레시장에서 공수해온 딱새우회와 고등어회가 혀를 춤추게 했다.
딱새우 2만 냥, 고등어 두 마리 3만 냥으로 셋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비는 밤에도 그칠 줄 몰랐다.
집에서 바라본 광경이다.

비와 물안개가 레온 사인과 가로등에 반사되어 몽환적이다.
육지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다.

시공간을 넘어 아들이 꿈에서 물안개 속에 짠~ 하고 나올 것만 같다.
기대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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