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 반 바닷길 반 딱 좋아~
아침 '바람의정원 게스트하우스'에서 토스트를 먹는데 비가 내린다. '음.. 오늘은 우중 올레가 되겠군...' 지은 지 얼만 안 돼 젊은 쥔장만큼이나 깔끔한 게스트하우스, 신창 포구 일몰 뷰가 너무 좋았던 게스트하우스다. 마침 출발하려는데 펜이에게 축복이라도 내리듯 비가 싹 가셔준다. 코스는 저지리에서 중산간 지역 숲과 밭이 반복해 나타나 지루하지 않다. 무명천을 따라 푹신푹신한 올레를 걸어 애월 포구, 금릉으뜸원 해변, 협재 해변을 지나 한림항에서 마무리된다.
<숲길 반, 바닷길 반 올레 지루할 틈이 없다>
클로버가 빗물을 머금었다. 행운은 뜬구름이고 행복은 현실이다. 클로버 꽃말이 세 잎은 '행복', 네 잎은 '행운'이란다. 오늘도 어제의 곶자왈 여운이 아쉬웠는지 숲으로 이어지는 올레다. 큰 소나무가 많다 해서 이름 붙은 '큰소낭숲'이다. '낭'은 나무의 제주어다.
때로는 이런 푹신푹신한 올레가 좋다. '굴렁진 숲길'이다. 굴렁진다는 것은 움푹 팬 곳이라는 제주어다. 곶자왈처럼 이런 깊은 숲이 잠깐씩 나타나는가 하면 뻥 뚫린 농토가 나와 숲과 농지를 번갈아 지난다. 이런 길이 걷기에 심심치 않다.
숲길이 끝나면 가슴을 뻥 뚫리는 뷰가 나온다. 월령 포구를 지나 금릉으뜸원 해변과 협재 해변의 에메랄드빛 바다와 하얀 떡고물 모래에 푹 빠져 행복감마저 든다. 행글라이더에 서핑을 즐기는 젊은이들 모습에 입이 짜악 벌어진다. '어쩌면 저리 잘 탈까~' 이름하여 '카이트 서핑'이란다.
하얀 모래를 적신 투명한 바닷물에 발을 담그지 않고는 못 배긴다. 발끝으로 전해져오는 시원한 느낌이란 '아~ 여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펜이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아쉽다. 사랑하는 마눌님이 생각나고 사랑하는 가족이 생각난다.
'함께 올 건데...'
"다음에는 꼭 함께 오자~"
<선인장 가시에 펜이 손들다>
올레책에 저지에서 한림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선인장과의 특별한 조우를 놓치지 말라고 했는데 올레 40분 만에 벌써 등장했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선인장에 붙은 빨간 열매를 땄다. 열매의 2~3mm의 작은 가시를 히피보고 손톱으로 껍질을 반쯤 벗겼다. 자줏빛 고운 색감에 먹음직스럽다. 한 입 베어 보니 약간 단맛에 알로에처럼 조금 끈적거림이 있다. 그대로 씹는데 포도 씨만 한 게 나온다. 별로 맛이 없어 일부 삼키고 일부 버렸다.
사단은 이제부터다. 아주 작은 가시가 입술과 손가락 여러 곳에 박혀 따끔거린다. 워낙 작아 손바닥을 하늘로 향해 하나하나 빼고 입술도 촉감으로 빼냈다. 그런데 이제는 혀 안쪽 한 군데가 침을 삼킬 때마다 조금씩 따끔거렸다. 몇 번 침을 뱉거나 물을 마셔도 소용이 없다. 올레를 걸어도 마음은 손가락과 혓바닥에 있다.
한 시간여를 씨름하다 마침 땅콩 초콜릿을 먹으니 따끔거리는 게 사라졌다.
"이렇게 시원할 때가 있나ㅎㅎ"
비가 오락가락하는 사이 우산을 들었다가 폰카질 했다가 하는 사이 장갑 속으로 전해져오는 따끔거림이란ㅜㅜ 장갑을 벗었다. 십여 개의 선인장 가시가 장갑을 뚫고 손바닥에 박힌 것이다. 너무 작아 역시 하늘에 비추고 손톱으로 정리했다. '작은 고추가 맵다더니...' 오늘 당해보니 '선인장 가시'가 더 맵더라! 선인장은 남미가 원산지나 어떻게 바다 건너 제주가 자생지가 되었다. '백년초'라고도 한다.
높은 지대에서 마을과 농경지를 보면 마치 조각보를 깔아 놓은 것 같다. 간밤에 비바람이 많이 불었나 보다. 보리가 융단 폭격을 맞았다. 무명천이 나온다. 하천 깊이가 육지 것하곤 차원이 다르다. 조그마한 천인데도 상당히 깊다. 물이 없어 물이 좔좔 흘렀던 강정천과 비교된다. 무명천을 따라 다리를 몇 번 건넌다. 자세히 보니 철저히 포장도로를 피해 숲과 잔디나 풀로 이어지는 비포장길로 코스를 정했다. 올레사무국 관계자의 노력이 돋보인 대목이다. 감사하다.
다리를 건너다 글자가 엎어진 돌이 나타난다. '왜 저렇게 써 놓았지?' 하며 뒤를 살펴보니 올바르게 쓰여있다. 참 개구쟁이다. 갯무꽃이 점령한 올레, 비를 머금은 갯무꽃길이 외길이니 지나가야 한다. 그러다 신발과 바지가 쫄딱ㅜㅜ 하지만 스판바지라 5분 만에 OK~ 드디어 중산간 지역 올레가 끝나고 바다가 보인다. 월령 포구다. 이렇게 중산간 지역에서 시작해 바다로 마무리하는 14코스는 숲길과 바닷길 두 개를 맛볼 수 있어 개인적으로 꽤 마음에 드는 코스다.
<카페 속에 바다 동굴이 있다?>
월령 포구에 도착해 점심 먹을 마땅한 식당이 없어 도둑넘처럼 남의 집 담장을 기웃거리다 발견한 카페다.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를 판다는, 나무의 실내장식과 통유리 너머의 바다 뷰가 너무 멋진 카페, 2002년에 건물을 신축하면서 발견한 용암 동굴을 이 집의 콘셉트로 잡은 카페, 쥔장의 범상치 않은 외모와 카페 중앙이 바다로 연결돼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카페, 바로 '바다 동굴 카페'다.
VJ특공대와 생생정보통에 소개됐다는 카페, 2년 만에 또 방송 녹화하자 해서 잦은 엔지로 인한 피로감과 스텝들 뒷바라지에 잠시 녹화를 보류한 카페, 여름철이면 아름다운 일몰을 보러 오는 젊은이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카페다.
해녀분이 직접 잡은 해산물과 생선을 수족관이 아닌 자연 바다 수족관에 담아 파는 카페, 식사하고 있는데 동네 검은 개가 다소곳이 손님 옆에 앉아서 주는 음식을 받아먹고 한숨 자고 가거나 쥔장 노릇하며 자유스럽게 돌아다니는 카페, 1층에서 지하 바다 동굴을 바라보며 가족과 함께 음식을 먹고 싶은 시원한 카페다.
"사랑하는 가족들아~ 캠핑카 나오면 여기 꼭 와서 오감 만족하자~"
<보말 잡기 체험>
사람이 그립다. 아침에 버스정류장에서 할아버지께 말을 걸었다. 나 홀로 올레 걸으며 생긴 버릇이다. 이발하고 집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시란다. 제주 본토 발음으로 하시니 잘 못 알아듣겠다. 하지만 이럴 땐 대충 눈치로 때려잡아야 한다. 90%는 소통된다.
오후엔 비가 그쳐 점심 먹은 지 얼마 안 돼 음악 들으며 바닷가를 걷는데 쑥을 손질하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무조건 옆에 붙어 인사하고 말을 걸었다. 쑥떡 해 먹으려고 한단다. 펜이는 올레와 제주가 좋다는 얘기, 아주머니는 '6시 내고향' 보니까 전라도가 살기도 좋고 축제도 많이 해서 좋다는 얘기로 금세 친해진다. 그러다 쑥 바구니를 들고 오는 아저씨가 보말을 잡아야겠단다. 두 분은 부부지간이었다.
그래서 보말이 어떻게 생겼는지 함께 잡자며 배낭을 내팽개치고 따라나섰다. 바다 조개를 '보말'이라 한단다. 주로 죽을 쑤거나 맛을 가미하기 위해 전복을 넣는다. 삶아서 까먹기도 하는데 많이 먹으면 배가 아파서 주로 죽이나 된장국으로 먹는다.
처음 보는 보말이다. 서귀포여행자쉼터에서 숙박할 때 조식으로 먹었던 보말죽, 그 보말을 오늘 캐 보는 체험을 했다. 처음엔 잘 몰라 돌에 붙은 것만 잡으니 아저씨 왈
"그렇게 작은 것은 안 잡아요"
아무리 눈 크게 뜨고 봐도 아저씨가 잡은 왕구슬만 한 보말은 없다. 그런데 아저씨가 지나가는 말로 누가 돌을 다 뒤집었다는 뜻의 제주어를 해서 우리 말(?)로 해석해 물으니 그렇단다. 그래서 아예 돌들을 뒤집었더니 거기에 큰 구슬만 한 보말들이 숨어 있었다. 돌을 뒤집을 때마다 나타나는 재빠른 게들과 술래잡기 하며 여러 놈 잡았다. 30~40분 수그리고 보말과 게와 승강이를 했더니 허리가 뻑적지근하다. 잡은 것 모두 드리고 두 분과 아쉽게 작별을 했다. 오늘 보말 잡는 법을 확실히 배웠다.
<1002년에 태어났는데 나이가 가장 어린 비양도>
바닷길을 따라 변화되는 비양도를 조망해보자! 내가 섬을 따라가는지 섬이 나를 따라오는지 어렸을 때 달님을 바라보며 걸었던 추억이 돋는다. 제주에서 가장 나이가 어리다는 비양도. 조인성, 고현정 주연의 드라마 '봄날' 촬영지다. 한림항 비양도 도선 대합실에서 표를 끊어 들어가면 1시간 정도면 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고 한다.
<보말 체험에 핸드폰과 맞바꿀 뻔한 사연>
보말 체험 왕초보다. 김 여사도 운전 배울 때 들치기 박치기하지 않던가! 폰카 끼운 셀카봉 한 손에 쥐고 돌 굴리며 열심히 보말을 잡는데... 갑자기 핸드폰과 셀카봉이 분리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국전쟁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갑자기 달그락 소리에 놀라 소리 나는 곳을 보니 이미 아뿔싸ㅜㅜ 펜이의 분신과 같은 핸드폰은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다행히 완전히 빠지지는 않았다.
스마트폰은 올레를 안내하는 길잡이요(펜이는 지도 앱을 켜고 위치를 잡는다. 제주올레가 파란 점선으로 안내된다), 음악을 듣고, 라디오를 듣고, 기록을 남기고, 숙박지를 예약하고, 체크카드 잔고 점검과 각종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만물박사다. 그리고 이렇게 여행기를 올리는 블로거의 필수품이다.
'그런데 바닷물에 빠져? 안되지~~~'
냅다 집어 들고 수건에 물을 탈탈 털어 보니 맛은 안 갔다. '후유~ 다행이다' 하며 보말 잡기에 여념이 없다. 보말 잡기를 가르쳐준 아저씨와 헤어지고 룰루랄라 하며 올레로 접어든다. 배터리를 많이 써서 점심 먹고 나면 대용량 보조 배터리에 케이블을 연결해 쓰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충전이 안 된다ㅜㅜ 기능은 이상 없는데 단순히 충전만 안 된다ㅜㅜ 목적지에 도착해 핸드폰 가게에 들렀다. 서비스받으려면 제주 시내에 가야 한단다. 이미 서비스센터의 퇴근 시간은 다 되어 가고 해서 배터리가 5% 남아 절전모드로 전환했다. 아직 숙소도 못 찾았는데ㅜㅜ 핸드폰이 영양실조로 거의 실신 상태라 멘붕이 밀어닥친다. 하지만 안 되는 걸 어떡하랴ㅜㅜ 펜이가 어떻게 고칠 수도 없고ㅜㅜ
그래서 내일 올레 걷기를 포기하고 제주 시내에 가서 고칠 작정으로 우선 사우나부터 찾았다. 일단 쌓인 피로는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숙소를 물어 물어서 찾아 세면실부터 들어갔다. 일단 핸드폰 전원을 끄고 바닷물에 잠수 된 홈버튼 아랫부분을 물에 담가 칫솔로 잭 연결 홀을 씻어냈다. 이러다 더 고장 나면 서비스센터에 가거나 아니면 이번 기회에 새로 갈아타든지ㅎㅎ 드라이기 찬바람으로 솔솔 말려주었다. 이제 충전기만 연결하면 끝~ 마치 시험을 보고 나서 결과를 기다리는 수험생 마음 같다.
"스탠바이~ 연결!"
똥구멍에서 녹색 불꽃이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위로 위로 치솟아 오른다~~~ 이렇게 펜이의 분신은 펜이의 정성스러운 치료(?) 덕분에 기사회생했다. 그래서 이렇게 블로그도 작성할 수 있고 올레 걷기는 중단 없이 15코스로 이어지게 됐다. 검증되지 않은 방법이니 절대 따라 하지 마시라. 상태에 따라 다 다르니까요~~~
<오늘의 경제활동>
신창~저지리 버스비 1,300
핸드폰 충전 케이블 9,000
점심 애월포구 바다동굴 돈가스 10,000
한라 사우나 4,500
저녁 한림항 생고기통김치찌개 8,000
한림읍 항아리 게스트하우스 20,000
계 52,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