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A(19.2km)와 15-B(13.5km) 섞어 걷기
오늘로 올레 걷기도 후반전에 돌입했습니다. 전체 26개 코스 중 14개를 걸었습니다. 제주올레 걸으면 걸을수록 푹 빠져듭니다.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걸어보길 바랍니다. 그러면 올레의 참맛을 알 것이고 걸어본 자만이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아직 걷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건 사람은 없다고 하지 않던가!
<본의 아니게 5일 전 개장한 15-B코스를 걷다>
한림항에서 출발한 15코스는 중산간 지역의 납읍 숲길과 학술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금산공원을 지나 과오름 둘레길, 고내봉을 거쳐 고내 포구로 가는 코스입니다. 열심히 한림항의 올레 리본을 따라가는데 중산간 지역이 아닌 바닷가만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는 겁니다. 한참을 걷다 지도 앱을 보니 올레길의 상징 파란 점선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순간 당황했지요.
"이게 웬일이래?"
두 손가락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오므렸다 폈다를 수차례. 이미 코스를 벗어난 지 꽤 됐습니다.
"그럼 시방 내 눈앞에 시퍼렇게 펄럭이는 올레 리본은 리본이 아니당가?"
근데 좀 이상합니다. 색이 바랜 오래된 리본이 아닙니다. 밸라도 리본이나 화살표 색상이 싱그럽게 깨끗하고 방금 단 것 같습니다.
"고람 엊그제 개장했다는 먼 다시 비 코스가 여기란 말씀이여?"
바로 검색에 들어갑니다. 한국일보의 '언덕 위 카페 쪽빛 바다 향긋…제주올레15-B코스'가 도움을 줍니다. 맞습니다. 5일 전에 개장한 따끈따끈한 길 15-B코스를 펜이도 모르게 걷고 있었던 것입니다. A와 B가 갈라지는 곳을 놓친 거지요. 덕분에 당초 계획에 없던 곽지과물 해변도 보고, 점심도 먹고, 과물 노천탕의 여탕도 들어가 보는 체험(?)도 했습니다.
올레를 거닐며 배우는 게 많습니다. 맨 처음 비움의 철학을 배웠지요. 무거운 배낭을 어떻게 하면 무게를 줄일 수 있을까? 그래서 두 번에 걸쳐 필요 없는 물건을 집에 택배로 보냈더랍니다. 그리고 숙소에 들어와 빨래하면서 마눌님이 평소 세탁해준 옷가지에 대한 감사함이 절로 나옵니다. 또 혼밥을 하다 보니 가족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얘기가 잠시 삼천포로 빠졌는데 이왕에 간 것 B코스 중간 스탬프를 찍고 당초 A코스 중간 스탬프가 있는 납읍초교를 거쳐 종점으로 갔습니다. 한림항에서 시작된 바다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B코스 중간을 걷다가 다시 A코스 중산간 지역을 거닐며 나만의 루트를 만듭니다. 어제 14코스처럼 절반의 바다와 절반의 숲과 마을 길이 이어지다 마지막 고내 포구 바다로 끝냅니다. 기막힌 혼합 코스입니다.
<또 새로운 만남>
전형적인 제주의 농촌을 보면서 하우스 단지 옆을 지납니다. 하우스 열린 문 사이로 알록달록한 게 보입니다. 꽃입니다. 연분홍에 하얗고 노랗고 빨간 꽃이 아름다운 봄날만큼이나 화사합니다. 하우스 안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께 또 시비(?)를 걸어봅니다. 오늘은 또 무슨 얘기가 오갈까요ㅎㅎ 궁금한 건 못 참는 성미에 사람이 그리워서 한참 일을 방해합니다.
꽃은 '거베라 꽃'으로 부케나 장식용으로 많이 쓴답니다. 서울 양재동 화훼 공판장에 상자째 포장해 올리고 뿌리를 3~4년에 한 번씩 옮겨 심습니다. 그래서 수확한 꽃의 수분은 어떻게 공급을 하냐니까 재빠르게 수송하니 아무런 조치 없이 보낸다고 합니다.
마침 오늘도 거의 져가는 꽃줄기와 잎을 조금 자르고 뿌리째 옮겨 심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일하시면서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꽃이 많으니 따주시겠답니다. 그래서 괜찮다 했습니다. 걸어 다니는데 괜히 꽃만 못 할 일 시키는 게 미안했습니다. 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떠나기가 싫습니다. 그래도 또 다른 만남을 위해 아쉬운 작별인사를 합니다.
거의 매일 보는 바닷가의 모습이 육지것은 싫지 않습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망망대해의 수평선 너머에 다다르면 밑으로 뚝 떨어질 것 같습니다. 방파제로 난 올레를 걷는데 파가 무더기로 일렬횡대로 가지런히 널려 얼차려를 받고 있습니다.
"애들아~ 왜 이렇게 나신으로 아스팔트 바닥에 누워 있니?"
물어도 대답이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파는 분명 뿌리와 줄기 식물로 식탁에 뿌리털만 제거하고 먹는데 말입니다. 또 궁금증이 발동합니다. 그런데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습니다. 우도에서 많이 봤던 우뭇가사리가 여기서도 보입니다. 하, 허, 호 넘버의 렌터카를 탄 외지인만 쌩쌩 지나갑니다. 한참을 걷는데 공공일자리에 참여해 바닷가에서 쓰레기를 줍는 어르신에게 묻습니다. 궁금증이 확 해소되는 순간입니다. 안다는 것은 일종의 지식의 밥을 먹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파 뿌리는 내년에 종자로 쓰기 위해 건조하는 거랍니다. 줄기는 자르고 밑동의 알맹이 뿌리를 다시 심는 거죠.
또 농촌의 들녘을 보면서 열심히 걷습니다. 펜이 평생 이렇게 여러 날 많이 걷긴 또 처음이지요. 마치 걷는 게 습관이 되어 일상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올레를 걸으며 많이 본 식물이 나타납니다. 마침 아주머니는 풀을 뽑고 계셨습니다. 밭 한가운데서 일하시는 아주머니께 인사를 건넵니다. 웃으시며 반갑게 화답해주십니다. 흔히 보는 배추는 아니어서 양배추라고 생각했습니다. 보기 좋게 '땡!'입니다. 브로콜리를 닮았는데 브로콜리는 아니고 커다란 잎 속으로 하얗게 생긴 브로콜리처럼 생긴 '칼리'라는 식물입니다. 15일 후 수확하는데 고급 호텔에서나 맛볼 수 있는 귀하신 몸이랍니다. 작별의 인사와 함께 손을 흔들어 주십니다.
20km의 종주를 마치고 오늘의 안식처 '하쿠나마타타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합니다. '하쿠나마타타'는 아주 잘 될 거야 하는 뜻이라고 하우스에 메모 되어 있습니다. 긍정 마인드가 좋습니다. 게하에서 아주 젊은 올레꾼을 만났습니다. 2주간 올레 완주 계획으로 서울에서 내려와 거의 돌고 5개 코스만 남았답니다. 호감형 인상이라 더욱 말을 붙여봅니다. 펜이는 제주시 방향으로 올라가는데 이 친구는 서귀포 쪽으로 내려가는 중이랍니다. 인제대 경찰학과를 갓 졸업하고 경찰 간부나 검찰직 시험을 준비한다는 26살의 아주 다부진 젊은이입니다. 본격적인 시험 준비에 앞서 뭔가 동기부여를 위해 혼자 제주올레 전체를 돌고 있다며 저녁을 함께하며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마침 최근에 검찰직 시험을 본 둘째 딸내미 얘기도 곁들입니다. 인생 준비에 대한 격려의 말도 빼놓지 않습니다. 마치 아들 같아서죠. 추자도는 둘 다 안 갔기에 배편과 숙소 예약 정보를 도미토리에 들어와 함께 공유하니 혼자일 때보다 훨씬 낫습니다. 모처럼 아들 같은 젊은 친구를 만나 펜이도 젊어지는 느낌입니다. 펜이는 이 젊은이와 같은 20대 때 뭐를 했나 잠시 기억을 반추해보며 이내 블로깅을 합니다. 잠시 만났다 헤어지더라도 인연의 소중함을 되새김질하며 꿈나라로 향합니다.
<오늘의 경제활동>
핸드폰 충전 케이블 7,000
점심 곽지 해변 다시정 식당 육회돌솥비빔밥 10,000
저녁 고내포구 뿔난돼지 오겹삽 46,000
하쿠나마티타 게스트하우스 20,000
계 83,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