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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이 Jan 10. 2019

제주올레 완주 18일째 16코스 고내 포구~광령1리

바닷길과 중산간 길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15.7km)

아기자기한 올레

  간밤에 젊은이와의 대화로 기를 받아서인지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아쉬운 작별을 하고 펜이는 북쪽으로, 그는 남쪽으로 내려갑니다. 고내 포구에서 구엄 포구까지 약 5km는 해안선을 따라 망망대해를 보며 걷습니다. 해안선 오솔길과 절벽을 따라선 소나무 그늘을 걷는 호젓함은 걸어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입니다. 또한, 화산이 폭발하며 만든 절벽 위로 아찔하게 바다를 내려다보며 포즈도 취할 수 있습니다. 간간이 나타나는 솔밭은 재미를 더해줍니다. 애월 해안도로의 포장 구간을 피해 흙길과 자갈길 그리고 잔디길은 걷기에 더없이 좋습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갈매기가 끼룩 끼룩거리며 머리 위를 선회하고 등대로 사라집니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완만한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는 풍광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운이 좋으면 쪽빛 바다를 누비는 고래를 볼 수 있다는데 오늘은 외돌개에서처럼 그런 행운은 없네요.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제는 바다와 빠이빠이입니다.




수산저수지

  구엄 마을과 수산봉, 수산저수지를 따라 중산간 지역으로 올레는 방향을 전환합니다. 수산봉(121.5m)에서 만난 까치와 새들의 교향곡에 흐르는 땀도 선율이 되어 사라집니다. 수산봉에서 내려다보이는 광활한 인조 수산저수지는 마치 바다처럼 넓습니다. 화산섬 제주에서 이런 담수를 보기는 또 처음입니다. 세월을 잊고 낚싯대를 두른 강태공이 부럽기도 합니다.




400살이 넘은 곰솔

  저수지 옆 큰 소나무는 올레를 약간 벗어나야 제대로 조망할 수 있습니다. 중간에 만난 다른 올레꾼은 못 봤다고 합니다. 높이 10m, 둘레 4m의 거목 곰솔은 400년 전 마을이 생길 때 심었다고 합니다. 눈이 가지 위에 쌓이면 마치 백곰이 저수지 물을 마시는 형상이라 해서 곰솔이라고 합니다.




  돌담과 흙길, 오솔길을 따라 감귤밭과 채소밭 그리고 마을 등 수시로 변화하는 파노라마에 눈이 피곤하지 않습니다. 시가 있는 올레에서 대전에서 온 친구 사이인 두 분의 아주머니를 만나 심심치 않은 올레가 되었습니다. 가정주부가 일주일간 시간을 내서 숙소 주변 올레를 걷는다며 좋아합니다. 불현듯 집에 있는 마눌님에게 미안해집니다. 다음에 꼭 함께 와야겠습니다.




  제주도는 고려 시대 때 101년간의 몽골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런 몽골을 마지막에 물리친 분이 최영 장군이지요. 그런 '항파두리 항몽 유적 둘레길'을 따라 중간 스탬프를 찍는 정자에서 발에 안식을 줍니다. 거대한 토성 항파두리를 뒤로하고 숲과 새가 어우러지는 자연을 만끽하며 종점 광령1리 마을회관에 다다릅니다.




새로운 만남

광성식당과 제주 향토음식 몸국

  종점 스탬프를 찍고 오후 2시가 넘어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제주는 향토 음식이 많습니다. 육지의 것하고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올레를 걸으며 지금까지 맛본 것을 나열해봅니다. 자리물회, 자리젓, 고기국수, 보말죽 정도입니다. 물론 흑돼지 오겹살과 갈비도 먹었지요. 앞으로 옥돔국, 보말국, 갈칫국, 몸국 등이 남아 있습니다.

  오늘은 종점 부근 허름한 광성식당에서 몸국을 먹었습니다. 돼지 사골국에 몸(모자반)을 넣고 끓인 것입니다. 나름 먹을 만했습니다.




50대 때 관광버스 회사를 운영하다 십수 년 전에 농업으로 전업한 아저씨와 함께

  거의 식사가 끝나가자 식당 주인들도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그들이 저에 대한 관심과 저의 제주에 대한 관심이 서로 통해 얘기를 길게 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 이슈인 대통령 선거부터 중국인 관광객 감소에 대한 생각, 그리고 농사 등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가 이뤄집니다. 요즘 안보가 중요하다며 혀를 끌끌 차기도 합니다. 올레에서 만난 대전 올레꾼도 똑같은 얘기를 했었거든요. 중국인 관광객 감소는 특별한 관광지가 아니고서는 일반 서민 가게에는 별 영향이 없다고 합니다.

  50대 때 관광버스 회사를 운영하다 십몇 년 전에 농업으로 전업한 식당 지인은 무화과 농사를 짓는다고 합니다. 보관이 어려운 무화과는 육지에서는 익기 전에 따서 유통해 맛이 별로 없는데 제주산은 익은 뒤 따기 때문에 훨씬 당도가 높다. 또한, 육지의 무화과가 제주로 많이 들어오는데 제주산이 당도가 높기 때문에 판매에 큰 영향이 없다. 판매는 주로 인터넷으로 한다. 생산량 된 물량이 다 팔리면 절대로 다른 농가의 것을 가져다 팔지 않는다. 생산자와 소비자 간 신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야 내년에 또 소비자가 자기 것을 찾기 때문이라며 자부심이 얼굴에서 피어오릅니다.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농민의 얘기였습니다.

  지난번에 한경면의 신창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70대 할아버지도 귤 농사를 짓는데 비슷한 말씀을 하셨거든요. 고정 고객이 있어서 판로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촌로 분들이 오히려 첨단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올레에 여러 개의 시비가 있는 길을 따라 걷는데 말 사육장이 나옵니다. 펜이가 고개를 내미니 관심이 있는 녀석이 다가옵니다. 며칠 전 14-1코스 문도지 오름에서 방목 중인 말 때문에 식겁했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이제는 울타리가 있어서 마음 졸일 필요가 없습니다. 울타리 밖 풀을 뜯어 주니 잘 받아먹습니다. 이 모습을 본 왕초격의 말이 와서 조금 전 그 말을 밀어내고 펜이 앞에서 고개를 내 미며 아양을 떱니다. 그래서 풀을 몇 번 뜯어 주었지요. 처음 만난 녀석에 미안해서 다시 첫 녀석에게 풀을 가져다주니 늦게 온 녀석이 히잉~ 소리를 지르며 쫓아내고 맙니다. 그러자 처음 녀석이 줄행랑을 칩니다. 서열이 확실히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늦게 온 너는 괘씸죄에 해당하여 금식이야!"




  오늘따라 날씨는 맑지만 이른 따가운 햇볕에 땀도 흐르고 점심때도 넘긴 터라 힘이 빠집니다. 시작점 고내 포구에서 종점까지 식당이 없으니 도시락을 준비하라는 올레 교과서를 무시한 탓이지요. 항몽유적지에 매점이 있다고 했는데 없는 건지 놓친 건지ㅜㅜ 그늘을 찾아 길바닥에 퍼져 땀도 닦고 목도 축이는데 아장아장 하얀 강아지 두 마리가 다가옵니다. 어미가 컹컹 짖자 강아지는 펜이에게 일정한 간격을 두고 경계합니다. 아마 어미 말을 알아듣나 봅니다. 오라는 손짓으로 유혹해도 넘어 오질 않습니다. 교육을 잘 받은 강아지입니다.




  안 오름이 있는 고성 숲길을 빠져나오는데 70대 어른이 숲속 숭조당(崇祖堂) 건물에서 나오십니다. 남 씨 성을 가진 그 어른은 일본에서 태어나 세 살 때 귀국해 제주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1978년 일본에서 돌아가신 증조부를 모셔와 일가친척 조상과 함께 모시는 봉안당을 지었다고 합니다. 후손을 위해 543기를 안치할 수 있도록 십수 년 전에 넓게 지어 현재 78기가 안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주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고 안에 들어가면 사람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낀다며 견학하러 오는 사람이 있다며 자랑하십니다. 사람은 죽어서 영혼은 천국 가고 육신은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진리를 알기에 아무 부질없는 것이라 자리를 이내 뜨고 맙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어렸을 때 대부분 해본 놀이입니다. 점심을 먹고 광령초등학교 옆을 지나오는데 어디선가 낯익은 노랫말이 들립니다. 초등학생 예닐곱이 놀이를 합니다. 어렸을 적 향수를 불러일으켜 한참을 바라봅니다. 놀이 방식이 우리 때하곤 조금 다릅니다. 술래가 뒤를 돌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면 나머지 애들이 동작을 멈추고 술래 모르게 술래가 있는 홈으로 한 걸음씩 다가갔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그런 방식이 아닙니다.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놀이도 업그레이드됐을까요? 학교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니 동심이 자극됩니다.


<오늘의 경제활동>

점심 광령리 광성식당 몸국 등 11,000

자유시간 광령마트 4,200

저녁 화순식당 두루치기 8,000

그디글라 게스트하우스 25,000

계 48,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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