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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이 Jan 10. 2019

제주올레 완주 19일째 17코스 광령~간세라운지

올레의 부활 그리고 만남(17.9km)

<밋밋한 올레가 바다를 만나 부활하다>


그디글라 게스트하우스와 일용할 아침 식사

  애월읍 광령리의 '그디글라 게스트하우스'에서 4인실을 독방으로 쓰는 행운을 안았습니다. '그디 글라(Gdy Gla)'는 '거기 가자'라는 제주어입니다. 아침에 간단히 토스트를 먹고 오늘은 도시로 진출합니다.




무수천

  제주도의 서북쪽에서 북쪽 제주 시내로 이어진 올레입니다. 제주에 온 지 19일 만입니다. 광령에서 무수천을 따라 북쪽 바다를 향하여 걷습니다. 제주도의 하천은 육지와 완전히 다릅니다. 하천의 깊이가 수십 미터 되는 절벽 수준입니다. 하천 가장자리는 커다란 수풀로 우거져 있어 이 또한 새들의 천국입니다. 대신 물이 거의 없는 건천입니다. 코스로 지나는 외도천교는10년 전 태풍 '나리'로 하천이 범람해 다리가 넘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제 만난 광성식당 쥔장의 얘기가 있어 한번 더 보게 됩니다.




월대(月臺)

  250년 된 해송과 팽나무 가지가 하천으로 쭉쭉 늘어지는 모습이 환상적입니다. 아니사까 옛사람들도 펜이처럼 안목이 있었는지 이곳에서 시를 읊곤 했다네요. 밝은 달이 뜰 때 주위와 어우러져 물 위에 비치는 달빛이 장관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월대(月臺)라고 부릅니다.




  바닷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하늘길을 나르는 뱅기가 점점 크게 굉음을 내며 커다란 그림자를 그리며 착륙합니다. 제주국제공항이 가까이 있다는 거죠. 왼쪽으로 에메랄드빛 외도 포구와 알작지 해변을 지긋하게 응시하며 걷습니다. 그러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누런빛이 감도는 보리가 고개 숙일 준비를 서두릅니다.

  

이호테우 해변의 명물 목마 등대

하얀 백사장이 일품인 이호테우 해변이 나타납니다. <이호테우> 외국어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말이라는 것! '이호'라는 지명에 제주에서 물고기 잡는데 타는 통나무배 이름인 '테우'가 합쳐진 말입니다. 많은 관광객이 바닷물과 밀고 당기는 렌즈 싸움을 합니다. 하나라도 더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죠. 여행은 찍는 게 남는 겁니다. 펜이도 당근 대열에 끼어듭니다. 여기도 서귀포 중문 색달 해변에서 봤던 서핑을 즐기는 젊은이 부럽습니다. 20년만 젊었어도ㅎㅎ 이호테우 해변 바로 위에는 수많은 캠핑카와 카라반이 있습니다. 펜이 당연 눈이 돌아갈 수밖에요. 제대로 된 크기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쓸 수 있는 신차를 뽑아서 캠핑카로 개조를 주문한 상태입니다. 빨리 나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죠.

도두동 추억愛거리

  이호동 마을을 지나 도두동 추억愛거리가 정말 추억 돋게 합니다. 구르던 굴렁쇠가 멈춰 서있고, 여자아이 셋이 쭈그려 앉아 다짜꾸리(공기 놀이)하고, 고무줄놀이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팽이 네 개가 돌아가고요, 딱지치기하는 사내아이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타기에 여념이 없는 아해들이 타임머신을 태워줍니다. 중간중간에 있는 쉼터에서 목을 축이며 어린 시절을 회상해봅니다.




  물고기 생선을 형상화한 구름다리를 건너 도두봉(65.3m)에 오릅니다. 도두봉에서 바라보는 이호테우 해변은 더욱 멋져 보입니다. 도두는 글자 그대로 섬의 머리라는 뜻입니다. 제주도의 머리에 해당하는 거겠죠?




제주공항과 한라산이 미세먼지로 뿌였게 보인다.

  손에 잡힐 듯 제주공항이 보이고 곧 땅에 곤두박질칠 것 같은 뱅기의 힘찬 굉음에 절로 고개가 뒤로 젖혀집니다. 저 멀리 한라산은 제 모습을 보여 주기가 부끄러웠는지 한없이 뿌연 미세먼지 속에 숨어 있습니다.

"근다고 며칠 전에 딱 한 번 보여주고 말아야?"

도두봉도 송악산이나 섯알오름처럼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이 파놓은 진지가 있습니다. 어디건 다 파놨네요...




제주 향토음식 갈칫국, 생갈치라 매우 부드러운 식감이다.

  도두봉을 내려와 제주의 향토 음식 갈칫국을 먹습니다. 배춧잎을 넣어 지리로 끓였는데 육지의 조리 방법하곤 완전히 다릅니다. 비릴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고 아주 담백하고 시원한 맛입니다. 두툼한 갈치 두 토막이 들어 있습니다. 좀 적긴 한데 간장게장이 있어 부족함을 채워줍니다. 실탄은 만 팔천 발입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오라고 한 데는 없어도 갈 곳 많은 펜이입니다.




중간 스탬프가 있는 어영소공원

  액운 방지와 마을 수호의 상징인 방사탑을 뒤로하고 어영소공원에서 중간 스탬프를 찍습니다. 소공원에서 내려다보는 끝도 없이 펼쳐지는 수평선의 망망대해는 가슴을 뻥 뚫어 줍니다. 이렇게 오염원이 없는 제주에 며칠 살다 보니 육지에서 한 달 이상 고생했던 천식기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약도 먹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환경의 중요성을 새삼 절실히 느껴봅니다.




용두암

  용 머리를 닮았다는 용두암의 인기가 대단합니다. 관광객이 북새통을 이룹니다. 중국 관광객도 여럿 봤거든요. 번잡한 도시로 진입하니 다시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수많은 자동차와 사람들 그리고 빌딩 숲... 큰 도로와 주택가 이면 도로로 이어지는 무근성 벽화마을 지나면 17코스 종점 간세라운지에 도착합니다. 제주목관아 바로 뒤편입니다. 17코스 종점이자 18코스 시작점이 2개월 전에 바뀌었습니다. 동문 로터리의 '산지천마당'에서 800여 미터 못 간 '간세라운지'로.

17코스 종점 간세 라운지




<새로운 만남 그리고 재회>

은퇴한 부부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이 파놓은 도두봉 진지

  오늘도 올레에서 어떤 만남이 이뤄질까 신발 끈을 조이면서 드는 생각입니다. 오전엔 별 소득(?)이 없습니다. 도두봉의 일본 진지를 살펴보는데 서로의 관심이 일맥상통했는지 얘기를 나눴습니다. 안양에 사시는 부부인데 효성에 다니다 정년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흔히 아는 회사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보름 동안 제주도 주요 관광지를 거점 형식으로 돈답니다. 부부가 함께 여유롭게 여행하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도두봉을 한 바퀴 돌며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어제는 한라산 백록담에 갔는데 아주 멋졌다며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하십니다. 정말 사진을 아주 잘 찍으셨더라고요. 펜이의 올레 종주 얘기를 듣고 부부가 대단하다며 감동합니다. 그분이 아직 여행 기간이 서로 남아 있으니 인연이 닿으면 약주라도 한잔하자며 연락처를 교환했습니다. 서로 여행 잘하시라며 아쉬운 작별을 합니다.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겠지요. 아마 올레 종주가 끝나기 전에 재회가 이뤄질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올레 완주 이후 그분과 간간이 소식을 서로 나눴습니다. 지난가을 서울의 여행 대학 강의를 들으면서 안양에서 후한 식사 대접도 받았습니다. 안양의 명소와 산도 구경시켜주셨습니다. 그는 일반인 여행이 어렵다는 파키스탄이나 인도, 아이슬란드와 아프리카 킬리만자로도 등정했습니다. 당시에 두 달간 네팔 여행 포부도 밝혔는데 최근 네팔의 고행길을 다녀와 휴식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또 하나의 소중한 인연으로 형님 동생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무조건 떠나라!

용두암 근처에서 만난 젊은이

  점심 먹은 후 용두암 도착 전 착륙하는 뱅기를 따라 폰카를 돌리는데 10여 미터 앞에서 펜이를 따라 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그래서 시비(?)를 걸었죠.

  "왜 나를 따라 하느냐?"가 아니라 "올레 걸으세요?" 아니란다. 등을 보니 이미 키를 넘겨 완전군장을 했다. 야외 취침 도구와 배낭 위로 태양 전지판까지 둘러 있습니다. 서울 사는데 삶이 너무 각박해 좀 쉬러 나왔답니다. 펜이처럼 가족의 동의로 이뤄진 고난의 길입니다. 올레를 걸을까 해서 공항에서 미리 주문한 올레 패스포트에 스탬프를 찍기 위해 간세 찾는 것도 스트레스라 생각되어 취소했다고 합니다.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걷자는 주의입니다.

  오늘이 첫날인데 그냥 야박하며 해안선을 따라 한 바퀴 돈다고 합니다. 펜이는 대단하다며 급 관심 모드입니다. 식사는 햇반과 물만 넣고 끓이는 비상식량 그리고 마른반찬으로 해결한답니다. 용두암에 와서 사진도 찍어주고 셀카도 함께 찍었습니다. 젊음이 정말 좋긴 좋습니다. 여행 잘하라며 서로 격려해주며 헤어집니다.





중국인 부부와 재회

게스트하우스에서 처음 만나고 용두암에서 재회한 중국인 가족

  서울 젊은이와 헤어지고 용두암 밑에서 올라오는데 서너 살 꼬마를 유모차에 태우고 오는 부부와 마주쳤습니다. 서로 알아보고 환한 미소로 반가움을 표시합니다.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어 줍니다. 아이도 환하게 웃습니다. 오늘 아침 그디글라 게스트하우스 주방에서 만난 중국인 부부입니다. 사실 혼자 배운 중국어가 짧아 몇 마디 나누지도 못하고 아침에 잘 가라며 헤어졌거든요. 그러면서 꼬마에게 에너지바를 한 개 줬었습니다.

  그런데 용두암에서 서로 만나리라곤 생각도 못 했지요. 이 사람들은 한국어를 못하고 펜이는 중국어가 띄엄띄엄이고 해서 부부가 저에게 영어로 얘기할 수 있냐며 묻는데 대책이 안 섭니다ㅜㅜ 그런데 배우는 언어의 나라 사람을 만나면 왜 이리 반벙어리가 될까요ㅜㅜ

  그래서 할 수 없이 아는 영어와 중국어 단어를 섞어 겨우 몇 마디 하고 함께 셀카를 찍었습니다. 이메일도 받았으니 이제 곧 보내줘야겠습니다. 그런데 헤어질 때 그냥 '짜이찌엔'(再见 안녕히 가세요) 하기엔 너무 성의 없을 것 같아 '뤼씽컬러'(旅行可乐 여행 콜라 또는 여행 기분 좋다)를 해버렸으니ㅜㅜ 중국인 남편도 펜이 말을 듣고 난감해합니다. 펜이가 '컬러'만 했싸니 한참 만에 남편이 '콰이러'(快乐 즐겁다)로 수정해줍니다. 서로의 의미를 찾은 것입니다. 원래는 '쮸니뤼씽콰이러'(就你旅行快乐=就你旅游快乐 쮸니뤼요우콰이러=즐거운 여행 되세요)입니다. 공부할 때 백날 외우고 해봐야 필요 없습니다. 직접 외국인과 거래(?)하지 않으면ㅎㅎ




제비
오늘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 이쁜이들
오늘의 여정


<오늘의 경제활동>

점심 용담3동 어머니와고등어 식당 갈칫국 18,000

동문시장 서울상회 옥돔 100,000

동문시장 제주 향토 음식 빙떡 1,400

동문시장 삼다사우나 5,000

천제연정육식당 갈비탕 10,000

제주동문 게스트하우스(쿠팡가) 18,900

계15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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