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태어나 처음 간 곳 죽는 줄 알았네...하지만 뷰는 짱!
쥔장이나 스텝 하나 볼 수 없는, 그러나 시스템은 완벽한 '제주동문 게스트하우스'에서 토스트에 죽까지 챙겨 먹습니다. 제주올레 중 난이도가 '상'인 코스가 몇 개 있습니다. 18-1코스 추자도도 여기에 해당하기에 배를 든든히 채웁니다. 더군다나 첫 배가 도착하는 상추자도에는 숙박과 식당 등 인프라가 괜찮은데, 하추자도에는 식당 하나 없는 올레객에게는 사막과 같습니다.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제주항연안여객터미널에서 씨월드고속훼리사의 퀸스타 2호가 09:30분에 출발합니다. 휴일이라 거의 만석입니다. 황금연휴 때문에 며칠 전 예약했습니다. 애초 10:30분 상추자도에 도착할 계획이었으나 파도 때문에 20여 분 지연됩니다. 이 배는 11:00에 해남 우수영으로 다시 출발합니다. 선원이 파도가 다소 높아 뱃멀미할 수 있다며 미리 주의를 당부합니다. 2009년 포항에서 울릉도 갈 때 너울성 파도를 만나 고생한 적이 있어서 심히 우려했습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더니 우려했던 멀미 없이 무사히 도착합니다.
상추자도 항구에서 출발 스탬프를 찍고 항구를 한 바퀴 눈에 담습니다. 꽤 마을이 큽니다. 추자초등학교 뒤에 있는 최영 장군 사당을 거쳐 바로 산행이 시작됩니다. 추자도 올레는 산행코스입니다. 올레책을 보면 오르락내리락을 무려 여덟 번 합니다. 높은 산은 아니지만 여러 번 급경사가 나오다 평지가 나오다 반복됩니다.
거기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길이 상당히 긴 구간도 있어 있는 힘이 다 빠집니다. 완주하고 숙소에 도착할 때는 거의 그로기 상태입니다. 아마 점심을 제대로 못 먹은 탓도 있었겠지요.
하추자도의 중간 스탬프 목리 슈퍼는 말이 슈퍼지 동네 구멍가게입니다. 지도 앱에 종점 신양항에 한식집이 보여서 거기까지 2km를 그대로 걷습니다. 이미 시간은 12:40분이 지났습니다.
산에서 조망하는 바다, 바닷가에서 조망하는 산, 위치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경치는 정말 짱입니다. 산은 산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화룡점정처럼 박혀있는 다양한 섬들의 모습에 추자도에 온 보람이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언어 중에 바다 빛을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저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에 빠져 발걸음은 더욱 꼬닥꼬닥입니다.(꼬닥꼬닥=느리다의 제주어)
그런데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기진맥진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중간 스탬프가 있는 CU 편의점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앱에서 뜨던 그 식당 간판이 보이지 않습니다. CU 편의점 점원에 의하면 오래전에 폐업했다고 합니다. 다른 식당도 없답니다. 어떻게 하추자도 신양항에 식당 하나 없단 말입니까ㅜㅜ 편의점에서 빵이라도 먹을까 하다가 진열장에 햇반이 있습니다. 또 다른 포장지를 보니 제육볶음이 있습니다. 라면보다 낫겠지 하고 레인지에 데워 먹습니다. 적은 양이지만 먹을 만합니다.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리게 생겼습니까?
오후 2시가 되어 중간 스탬프 지점에서 요기했는데 이제 8km 왔습니다. 아직도 10km가 남았습니다. 몇몇 올레답지 못한 각양각색의 길을 걸으며 힘은 들지만 흐르는 구슬땀을 훔치며 내딛습니다. 배낭 멜빵까지 흥건히 젖긴 또 처음입니다.
가까스로 마지막 봉우리 추자 등대에 도착합니다. 목을 축이고 무의식 속에 나무계단을 내려옵니다. 거의 수백 개가 될 것 같습니다. 모든 에너지가 바닥납니다. 오죽했으면 등대까지 모노레일을 설치했을까요...
모노레일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한 발 한 발 내딛습니다. 그런데 내려오면서 처음 출발한 항구가 눈에 시원스럽게 들어옵니다. 마을 지붕이 모두 빨갛습니다. 마치 지중해 연안의 어느 도시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빨간 지붕이 피날레를 장식합니다. 힘들었던 모든 것들이 싹 달아납니다. 나무계단에 서서 한참을 바라봅니다. 이국적인 풍경에 도취합니다.
오늘 이렇게 올레 여행기는 피곤한 관계로 급 마무리합니다. 추자도에 대한 얘기는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그런데 올레지기가 운영하는 '추자올레 게스트하우스'에 와이파이가 안 됩니다. 스마트함이 제주 본섬만 못합니다. 그래도 추자도에 대한 역사를 살짝 언급합니다. 추자도는 고려 때 탐라현, 조선 초 제주목에 속했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전남 영암군 땅이었다가 1884년 제주목으로 재편됐다. 1894년 해남현 관할이 되었다가 두 해 뒤에는 전남 완도군에 편입됐다. 이후 1914년 제주군에 이속되었다. 제주도에 편입된 지 100년이 넘었다. 섬은 모두 42개로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가 있다. 올레를 걸으며 다양한 섬을 관찰하는 것도 포인트다.
<후일담>
추자도행 배에 타자마자 구수한 사투리가 정겹다. 거의 3주 만에 들어보는 전라도 표준어이다. 하도 반가워서 한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오메~ 전라도 말 드릉께 겁나게 반갑쏘이잉~ 나는 전라도 광주서 왔는디 거기는 어디서 왔쏘?"
"전에는 추자도 살다가 거시기 제주로 시집가서 시방 고향 해남에 갈라고 탔는디~" 완전 전라도 토종이다.
이튿날 아침 제주행 배를 타러 추자면사무소 승강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어떤 어르신을 만났다. 요지는 외지인이 추자도에 오래 머물렀다 갔으면 좋겠단다. 어제 지중해안과 닮은 감명 있게 봤던 상추자항 마을의 온통 빨간 지붕의 의문점이 풀렸다. 면사무소에서 주민 참여로 붉은색으로 통일해서 볼거리가 됐단다. 얘기를 나누는데 전라도 사투리가 그대로 전해져온다. 제주로 편입된 지 100년이 넘었어도 좀처럼 변하지 않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란다. 생활권이 목포나 완도, 해남으로 자기들도 제주말을 들으면 뭔 소린지 전혀 못 알아듣는다고 한다. 이야기 도중 초등생들이 하나하나 어르신께 인사하고 지나간다. 왜 그런고 했더니 학교 지킴이로 활동하신단다. 버스 승강장 주변에서 아이들이 등하교를 잘할 수 있도록 안내와 지킴이 역할을 하고 계신 것이다.
버스로 신양항에 내려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어제 들른 CU 편의점에 들렀다. 라면은 그렇고 몽쉘통통과 커피라떼로 벤치에 앉아 해결하는데 또 구수한 언어가 흘러나온다. 보아하니 차림이 현지인이다. 서너 명이 서로 얘기를 하는데 토씨 모두가 우리 지역 토종말이다. 잠시 있다 아줌마 부대가 들이닥친다.
"아~따! 오~메~ ~하는 거 봐바~ 근당게~거시기 머시냐..."
전라도 아줌마들의 수다다. 아니 추자도 아줌씨들의 수다인 것이다.
<오늘의 경제활동>
추자도 뱃삯 13,400
점심 하추자도 CU 제육덮밥 3,800
커피, 생수 2,100
저녁 귀빈식당 굴비정식(말로만) 8,000
추자올레 게스트하우스(조식 안 됨) 20,000
계 47,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