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자왈에서 자연과 하나 되다(저지~무릉 올레17km)
<신작로의 추억>
봄날 제주올레를 걷기에 좋은 날씨는 맑은 날보다 구름이 좀 낀 흐린 날이 좋다. 거기에 약간의 산들바람이 불어주면 금상첨화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다. 저지예술정보화마을에서 남쪽으로 조금 걸으면 신작로가 나타난다. 어렸을 때 당시 국민학생 시절 신작로를 많이 걸었던 생각이 난다. 신작로는 차가 다닐 만한 폭으로 비포장도로다. 등하교 때 차가 먼지 폴폴 날리고 지나가면 친구들 모두 인상 찡그리고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러다 똥장군이라도 만나면 아비규환이다. 이젠 코를 틀어막고 똥장군을 피해 잽싸게 먼저 지나쳐야 한다. 뒤따라 가다간 채독 걸리기에 십상이다. 그때 똥장군이 뭐라 한다.
"야 인마! 너는 똥 안 싸냐?"
"안 싸요~"
똥장군을 알 정도면 당신은 40대 이상이다. 대한민국 국민 평균 연령이 40을 넘었다고 하니 반은 알겠네~
<말과 한판 씨름>
신작로를 따라가다 보면 명성 목장이 나타난다. 더불어 목장 안까지 들어가야 올레를 걸을 수 있다. 이미 올레 기행문에서 목장길 통과 방법을 읽어서 이젠 실행만 남았다. 목장 문을 열고 들어가 말이 목장 밖으로 못 나가도록 문단속을 잘하고 지나간다. 그런데 문도지 오름으로 오르는 경사로 외나무다리가 아닌 외길에서 말 세 마리와 마주쳤다. 말에게 비키라고 말을 거니 말이 말 같지 않은가 보다. 어떻게 한 마리는 지나쳤는데 오르막에 두 놈이 펜이만 바라고 왕방울만 한 눈만 껌벅거린다. 천천히 두 번째 작은 말에게 다가가니 좀 전에 지나쳤던 큰 말이 뚜벅뚜벅 펜이 등 뒤로 다가온다.
"야 인마! 미쳤냐? 왜 따라와!"
계속 따라와 펜이가 한쪽으로 피하니 큰 말이 망아지 옆에 딱 붙어 완전 부동자세다. 이제 보니 모자지간이었다. 망아지에 대한 엄마 말의 보호 본능이었다. 외길에서 오도 가도 못 하니 참 대책이 없다. 그래서 옆 담을 기어올라 겨우 오르막을 오르는데 어미 말이 망아지를 데리고 한쪽으로 비켜선다. 이 나이 먹도록 말을 멀리서 보거나 고삐에 묶인 말 옆에만 서봤지 네 발이 자유스러운 말에 주눅 들긴 또 처음이다.
"후유~ 십 년 감수했네~"
<제주의 밀림 곶자왈에서 물아일체에 빠지다>
14-1코스는 오름은 물론 곶자왈을 세 개나 지난다. 문도지 오름에서 사방을 둘러보는 조망은 어제 오른 저지 오름만큼이나 멋지다. 문도지 오름과 멀리 풍차가 보인다. 마치 높은 산에 올라 모든 세상이 내 발밑에 있는 성취감에 감개무량하듯 오름도 그런 기분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단지 아주 짧은 시간에 오른다는 것 외에는.
문도지 오름을 뒤로하고 작은 돌길과 스펀지 잔디길을 지나면 새들의 지상낙원 저지 곶자왈에 들어선다. 원시림 그대로다. 한라산이 폭발하고 수많은 세월이 흘러 만들어진 다양한 식생에 마치 아프리카 어느 밀림에 온 착각을 일으킨다. 나무를 타고 오른 덩굴나무 줄기를 타고 타잔이 금방이라도 '아~아아~~' 하면서 나타날 것만 같다.
지금까지 보름간 올레를 걸어오는 동안 올레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없다면 이상할 정도다. 올레의 후유증 중의 하나일 것이다. 지도 앱에서 현 위치의 위성 사진을 보니 온통 시컴하다. 곶자왈이다. 새들의 합주를 들으며 펜이의 서걱이는 발소리만이 들린다. 이 넓은 곶자왈에 숲과 새 그리고 펜이만 있다. 자연과 하나 되는 물아일체의 깊은 명상에 빠져든다. 명상하면서 코끝으로 전해져오는 나무들의 숨결인 은은한 숲 향기에 눈을 지긋이 감긴다. 바위에 앉아 물 한 모금 마시고 새들의 합창을 듣노라면 천지창조 때의 아담이 되는 착각에 빠져든다.
<오설록의 연둣빛에 반하고>
저지 곶자왈에 심취해 발길 이끈 대로 걷다 보면 갑자기 하늘이 환해지면서 녹차 밭이 나타난다. 바로 오설록이다. 시작점에서 출발한 지 3시간 만인 12:30분에 도착했다. 녹차 밭 입구 들어서는 곳에서 중간 스탬프를 찍는다. 연둣빛 새싹이 막 올라와 부드럽게 그려지는 곡선을 따라 자연히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다. 관광객은 여기저기서 모델과 사진작가가 된다. 연둣빛 푸르름에 하루 종일 눈이 행복하다.
14-1코스에서 점심이 가능한 곳은 이니스프리 제주 하우스밖에 없다. 청정 제주산 원료로 만든다는 해녀 바구니 브런치로 점심을 대신한다. 김가루 비슷한 것을 붙인 조그만 주먹밥 3개, 감자를 으깨 만든 돈가스 비슷한 것 2개, 야채샐러드와 된장국 한 컵이 전부다. 한 끼 식사로는 괜찮다. 가격은 만 육천 발.
오설록은 평일인데도 관광객으로 북새통이다. 아스팔트를 따라 청수 곶자왈로 접어들다 어느 순간 무릉 곶자왈로 또 이어진다. 올레객을 위해 콘크리트 도로 가운데에 잔디를 심었다. 곶자왈을 걷다 훤한 세상이 그리울 때쯤 인향동 마을 입구가 나온다. 곶자왈 출구에는 '오후 3시 이후 진입 금지'라는 안내판이 있다. 그만큼 숲이 깊어 어둠이 빨리 내리기 때문이다. 인향동 버스정류장의 종점 스탬프로 오늘 코스를 마감한다.
#14-1코스 변경 : 청수 곶자왈의 자연휴식년제 도입으로 지난 5월 이후 변경되었다.
- 변경 전 총 거리 17km --> 변경 전 총 거리 9.2km
- 시작점 : 저지예술정보화마을
- 중간지점 : 오설록 녹차밭 --> 문도지 오름 출구
- 종점 : 인향동 버스 정류장 --> 오설록 녹차밭
<오늘의 경제활동>
초콜릿 4,000
한경면사무소~저지리 버스비 1,300
점심 이니스프리제주하우스 해녀바구니브런치 16,000
안향동~한경면 버스비 2,300
한경농협 목욕탕 4,000
칭따오팅피쥬 2,900
저녁 워낭소리 식당 해물된장찌개 7,000
바람의정원 게스트하우스 30,000
계 67,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