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비상탈출 90초'를 확보하기 위한 전직 승무원의 조언 4가지
테이블, 등받이, 창문 덮개를 원위치로 해 주십시오. 이·착륙 전 셀 수 없이 했던 이 멘트. 테이블을 펼쳐 편하게 영화를 보던 승객도, 숙면을 위해 창문 덮개를 꽁꽁 닫은 승객도, 한껏 젖힌 등받이에 노곤한 몸을 맡긴 승객도 예외는 없다. 승객에겐 귀찮기 그지없는 이 규정들에는 당연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노래 한 곡의 1절도 채 안 되는 시간에 200명에 달하는 인원이 탈출해야 한다. 비행은 길고 탈출은 짧다.
0.1초의 순간을 좌우하는
테이블
테이블을 편 채로 화장실에 가 보신 분은 안다. 제 몸 하나 쉽게 일으키지 못하는 공간이 된다는 것을. 창가에 앉은 승객은 비상시 그 좁디좁은 공간을 뚫고 나가야 한다. ‘올리면서 나가면 되잖아요?’ 주어진 시간은 90초. ‘1분 1초를 다투는’이란 말도 쓸 수 없는, 0.1초를 따져야 할 찰나의 순간에 테이블을 올릴 시간 따윈 없다. 그래서 테이블이 다시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끔 잠금장치까지 걸어 두는 것이다.
젖히는 만큼 위험해질 지도,
등받이
등받이를 끝까지 젖히면 테이블을 폈을 때보다 공간이 더 좁아지므로 위와 같은 맥락이다. 다만 뒤로 젖히게 되니 뒤에 앉은 승객을 가두지 않으려면, 등받이를 세워야 한다. 여기 소개하는 것들 중 승객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등받이다. 몇 번을 깨워도 승객이 깨지 않을 때는 나 역시 그의 등받이를 직접 세워야 했다.(잠을 깨웠다고 한 소리 들으면서도) 승객의 단잠보다 안전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맹수의 맞설 신의 한 수
창문 덮개
항공 사고 발생 시 무조건 탈출하지는 않는다. 극단적인 예로 맹수가 우글거리는 사파리에 착륙했다면, 분명 항공기 안이 더 안전하다. 나가서 호랑이 밥이 되느니 자리에서 구조대를 기다리는 편이 낫다. ‘창문이 그렇게 많은데 제 것 하나쯤은 괜찮죠?’ 착륙 충격에 의한 기체 결함이 생겨 밖을 볼 수 있는 창문이 하필 덮개를 닫아 둔 그 창문 하나였다면? 과장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 0.0001%를 대비하는 것이 항공 안전이다.
사람은 길턱에 걸려도 넘어지니
가방은 앞좌석 밑에
짐은 좌석 밑에 두면 안 된다. 무슨 소리냐고? 둘 거면 앞좌석 밑으로 끝까지 밀어 넣어야 한다. 걷다가 살짝 솟아난 길턱에 발이 걸려도 넘어지지 않는가. 아무리 작은 백팩도 길턱보다는 크기 마련. 그래서 앞으로 밀어 넣지 않은 가방은 탈출 시 또 다른 걸림돌이 된다. 종종 발 받침대 용도로 기내용 캐리어를 발밑에 두는 사람도 있는데, 절대 안 된다. 앞좌석 밑 공간에 넣을 수 없는 캐리어 같은 짐은 꼭 선반에 넣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