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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Aug 09. 2021

올림픽이 끝났다 1

단상(18-1) 네가 올림픽을 다 챙겨 봤다고?

어제저녁, 폐회식을 끝으로 2020 도쿄 하계 올림픽은 끝났다. 누구나 아는 이 사실을 구태여 글로 쓰는 이유는 살아생전 처음으로 '챙겨 본' 올림픽이 끝났기 때문이다. 2020이란 연도가 붙어있지만 2021년 올해 끝나야만 했던, 개최 전부터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 올림픽에 끌린 이유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솔직한 고백으로 시작하는 글. 이 시국에 올림픽을 연다니. 1년 연기라는 카드를 꺼냈음에도 코로나가 사라지지 않았는데도 무르지 않고 끝끝내 올림픽을 치르는 일본과 IOC 관계자들이 도통 무슨 생각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당장 2명 이상도 모이지 말라는 판국에 사방팔방에서 사람을 불러 재끼다니. (물론 무관중 개최가 되었지만) 욱일기 문양을 자꾸만 끼워 넣는다거나 후쿠시마산 식자재를 쓰려 한다거나 하는 저질스러운 이슈 때문에도 내 눈엔 달갑지 않은 스포츠 이벤트일 뿐이었다. 당시에는 선수 입장에서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우리나라 선수단이 불참해야 한다는 여론에도 조금은 수긍했다.


개회식을 한다는 소식도 흥미를 돋우지 못했다. 나중에 편집본으로 돌아다니는 픽토그램을 재밌다며 본 게 전부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네이버 모바일 화면에 '스포츠' 카테고리를 추가했고, 폰을 손에 쥐고 있는 대개의 시간을 올림픽 중계를 보며 보냈다.


양궁


이 한 단어로 올림픽에 관심조차 없던 사람이 돌변한 행동의 이유가 전부 설명되리라. 이번 양궁 국대 선수 명단, 혼성전이 신설된 점 등의 사전 정보가 없던 무지렁이였던 나는 '안산 김제덕'이란 선수 표기를 보고 '안산시청 소속의 김제덕 선수'라고 생각하기까지했다. (저처럼 생각하셨던 분들 조용히 손을 들어주세요...) 안산시청의 김제덕이 아니고 '안산'과 '김제덕' 두 선수였던 그들의 경기를 보고 나서야 일단 양궁은 챙겨봐야겠다고, 네이버에 등록된 선수 페이지에 들어가서 하트라도 눌러 응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성전으로 첫 금메달을 거머 쥔 자랑스러운 안산 선수과 김제덕 선수 :)


평소 내 관심사의 영역에서 스포츠는 경유를 3번은 해야 갈 수 있는 지구 반대편의 이름 모를 어느 도시 즈음에 위치해 있다. 운동 경기를 대놓고 본 건 중학생 때 2002년 월드컵을 본 게 끝이었다. (실화다. 그때도 친구들이 다 거리 응원에 나서니 따라간 정도였지 축구에 열광해서 경기를 본 건 아니었다) 앞서 처음으로 챙겨 본 올림픽이 이번 올림픽이란 말을 쓴 것처럼. 시차가 없는 곳에서 경기가 열렸기 때문일까? 경기를 편히 볼 수 있는 조건인 건 맞지만, 평창 올림픽은 따로 챙겨 보지 않았던 걸 떠올리면 스포츠에 대한 흥미가 싹 틔운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과감하게 말할 수 있다. 


혼성전 이후 내 심장은 몇 번이고 쪼그라들었다. 버스 안에서 숨을 죽이며 여자 단체전을 봤고, 카페에서 작업하다가 노트북을 제쳐두고 남자 단체전을 봤다. 다른 선수들 모두 고생했고 자랑스럽지만, 남자 단체전 이후 그렇게 난... 김제덕, 아니 '제덕 쿵야'에게 빠져들었다. 


올해 중학생이 된 사촌 남동생이 있다. 동생이 초등학생이던 그 동생은 면도를 하루만 안 해도 삐죽빼죽 솟아 나오는 내 수염을 마주할 때마다  '우웩! 더러워!'를 연발했다. 난 덤덤하게 눈웃음을 보이며 대답했다. "너도 곧이야." 그리고 그 말은 (수염의) 씨가 되어 동생의 윗입술 위에 살포시 흩뿌려졌다. 중학생이 되고서 우리 집을 찾은 그 아이에게서 아직 솜털이지만 거뭇거뭇한 기운이 선한 수염을 보았다. 동생을 상대로 좀 유치한 장난이지만 받았던 놀림을 돌려주려고 '수염 나는 거 봐! 으악! 징그러! 저리 가!'라고 소리쳤다. 남중생도 징그럽다고 저리 가라고 하는 마당에 남고생인 제덕 쿵야가 귀여워 보인다며 해괴망측한(?) 고해성사를 지인들과 카톡으로 나누던 나는 재미진 짤을 공유하기도 했다.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 짤 짜맞추는 거 기가 막힌 듯... 그때 친구들한테 보냈던 단체전 짤.



짤을 주고받는 동안 친한 친구들이 내게 제일 많이 한 말은 '웬일로 네가 스포츠를 다 본데'였다. '그러게나 말이다', 농담처럼 툭 답장할 때까지만 해도 양궁은 늘 금메달을 따는 종목이고 승부도 금방 끝나서 보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선수를 응원하는 마음이 속에서 샘솟는 걸 느끼지 못한 채. 오른쪽 짤 속 주먹밥 쿵야처럼 '파이탱!!!'을 연신 외치던 김제덕 선수. 귀여운 얼굴 덕에 귀여운 캐릭터에 비유되며 화제가 되며 나 역시 김제덕 선수에게 시선이 갔다. 시선에 이어 마음까지 간 건 목이 쉬어라 외치는 화이팅이 자신을 압도하는, 첫 출전이라 더 압도했을 국제 대회의 긴장감을 떨쳐내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기사를 읽었을 때였다. 양옆에 김우진, 오진혁 선수보다 김제덕 선수를 더 애틋하게 바라본 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는 그들의 모습 때문이 아니라 이제는 띠동갑보다도 더 어린 선수가 그 엄청난 중압감을 이겨내며 활약을 펼치는 모습이 보기 좋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개인전에서 아쉽게 탈락을 했을 때, 심장 박동이 170bpm까지 올라간 걸 보면서 더 안타까워 했던 이유도 같은 이유에서였으리라. 


스포츠를 챙겨 보지 않았어도 올림픽 때면 늘 '결과'는 궁금해했다. 시차 때문에 한창 자고 있을 때 경기가 치뤄지거나 하면 다음날 눈을 떴을 때 곧바로 경기 결과를 확인했다. 누군가 메달을 따면 따는 대로 기뻐했고, 경기에서 졌다면 진 대로 아쉬워했다. 딱 거기까지였다. 극적인 드라마를 이뤄낸 장면을 봤을 때도 지금처럼 선수들에게 이입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때도 물론 나보다 어린 선수들이 있었을 테니, 단순히 어린 선수의 활약 때문에 올림픽을 본다는 건 가려운 부위를 시원하게 긁어주지 못하는 부족한 설명인 것 같았다. 올림픽이 계속 진행되며 나만큼 올림픽을 신나게 챙겨 보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다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겪는 우리네인 만큼 상황의 몰입이 더했을 것이라고 내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18-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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