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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Aug 08. 2021

에어컨 지킴이

단상 (17)


 '버스 차장'이라고 하던가. 7~80년대 버스에 올라 운행을 돕던 분들을. 내 세대엔 이미 존재하지 않는 직업군이었고, 봤다면 개그우먼 이영자가 신인 시절 '오라이~'를 외치며 흉내 내는 영상이 소환될 때나 스치듯 본 게 전부인 그 낯선 버스 차장이 떠오른 건 다름 아닌 에어컨 때문이었다. 


 약속 시간이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중간에 시간이 붕~뜬 바람에 역에서 나와 바로 보이는 2층짜리 카페로 향했다. 1층에는 사람이 꽤 많았다. 괜스레 마스크로 코 주위를 다시 한번 여밀 만큼. 거리두기 등의 이유로 2층은 안 연 건가? 그래서 1층에 사람이 많은 건가 싶어 직원에게 문의하니 2층 이용이 가능하단다. 아무래도 사람이 적은 곳에 있는 게 마음이 편한 시국이니 주문한 빵과 커피를 받아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코시국 기준으로 보기엔 바글바글하던 1층에 비해 2층은 딱 한 손님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것도 제일 구석진 자리에. 사람이 없으니 널찍한 자리에 자리를 잡을 즈음, 직원이 나를 따라 2층으로 올라왔다. 손에 들려 있던 리모콘을 위로 세우더니 천장형 에어컨을 켰다. 그제야 사람이 많음에도 서늘한 기운이 감돌던 1층과는 사뭇 다른 공기를 느꼈다. 그렇다고 불쾌할 정도로 덥진 않았다. (어차피 실내 적정 온도가 26도 아닌가)

 직원은 터벅터벅 내 쪽으로 걸어오더니 아까 그 리모컨을 내 옆 테이블에 올려두며 이런 말을 했다.


 "에어컨이 고장 난 건지, 중간중간 마음대로 꺼지거든요... 

 꺼져서 더우시면 에어컨 틀 수 있게 리모컨 여기 두고 갈게요."


 나도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별로 거추장스럽지 않았다. 에어컨이 꺼지면 왼팔을 뻗어 리모컨을 잡아 에어컨을 다시 켜면 되니까. 근데 직원은 알았을까? 에어컨이 5분에 한 번꼴로 꺼진다는 걸...


 '뚜르르릉...' 

 (3초 정적)

 '띠리리링~'


 5분마다 에어컨이 꺼지고 다시 켜지는 알람 소리가 반복됐다. 몇 번 하다 보니 귀찮기도 하고 책을 읽던 흐름도 자꾸 끊기기도 하고 그다지 덥지도 않아서 에어컨이 다시 꺼졌을 때 이번엔 켜지 않았다. 켜 놓았을 땐 굳이 안 켜도 될 거 같았지만, 끄고 시간이 좀 지나니 실내에 답답한 더움이 느껴졌다. 하긴 창문을 열어둔 것도 아니니까... 확실히 에어컨은 요물이다. 그즈음 손님이 하나둘 2층으로 올라왔다. 


 손님이 오고 나니 에어컨을 다시 켜는 일에 신경이 부쩍 쓰였다. 연거푸 에어컨을 켜자니 사람들이 '쟤는 직원인가...'하고 쳐다보는 거 같은 눈치가 보였지만 꺼진 채로 두기엔 내가 더웠다. 분명 그들도 더울 테니 이 날씨에 에어컨을 끄는 것도 아니고 꺼진 에어컨을 켜는 거니 뭐라 할 사람이 있을까 싶던 타이밍에 더위를 참지 못한 한 사람이 내 쪽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혹시 에어컨 온도 더 낮춰도 될 거 같은데... 리모컨 줘 보실래요?"

 "아 그게 아니라 아까 직원분이 2층 에어컨 고장 나서 자꾸 꺼진다고... 꺼지면 다시 켜라고 리모컨 주고 가신 거거든요... 온도는 지금 18도로 되어 있어요."

 "아..."


 이곳의 더운 공기를 해결할 방도가 없다는 걸 안 남자는 체념한 듯 말없이 돌아섰다. 그냥 아무 말도 없이 리모컨을 줘 버릴 걸 그랬나. 5분마다 에어컨이 꺼지니 연신 다시 켜대도 공기가 쉬이 서늘해지지 않기는 했다. 폭염 속에 '꺼진 에어컨도 다시 보자'며 실천에 나선 행동가가 된 마냥 5분에 한 번씩 2층의 온도를 어떻게라도 낮춰보겠다고 용쓰는(용쓴다고 할 만한 건 없지만) 내 모습에 직접 본 적도 없는 버스 차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 타셨으면 오라이~', 차가 안전하게 출발할 수 있는 상황인지 보고 기사에게 신호를 주는 차장의 모습에 '뚜르르릉'하고 에어컨 꺼지는 신호에 다시 찬 바람이 나오도록 기계를 조작하는 내 모습이 묘하게 겹친 것이다. 


 지금 그 카페 2층의 에어컨은 수리가 되었을까.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에어컨 지킴이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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