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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Aug 09. 2021

올림픽이 끝났다 2

(18-2) 한 끗 차이에서 퍼져 나온 울림

'오오! 유도 결승 진출했어!'

'대박 방금 태권도 봄? 1초? 남기고 역전승. 결승 갔음!'

'배드미턴 미쳤음. 심지어 한일전, 빨리 봐.'

'와씨ㅋㅋㅋ 펜싱 개잘해! 슉슉 쇙쇙 촥촥!! 금메달 딸 듯ㅋㅋㅋ'

'여서정 도마 결선 곧 하는데 아빠가 해설함ㅜㅜ 내가 다 울컥해ㅜㅜ'


양궁에 이어 차례차례 진행된 경기 소식을 이미 '올림픽봇'화가 된 주변 지인들에게서 받았다. 집에서 카톡을 봤을 땐 바로 TV를 틀었고, 바깥에 있을 땐 핸드폰으로 생중계를 켰다. 결승에서 안타깝게 패한 이다빈, 조구함 선수의 경기와 펜싱 사브르 여자 단체전도 안타까웠지만, 유도 안바울, 안창림 선수, 태권도 인교돈 선수와 펜싱 남자 에페 단체전의 동메달 결정전은 더 조마조마하며 지켜보았다. 아마 그 선수들이 분투했지만 지고 만 준결승전 역시 다 봤기 때문이리라. 결승전이든 3-4위전이든 손에 땀을 쥐며 지켜본 건 똑같지만 져도 은메달은 따는 결승전과 지면 메달을 따지 못하는 잔인한 3-4위전이기에 동메달을 두고 다투는 선수들에게 더 감정이 이입됐다. 은이든 동이든 선수들에겐 너무 값진 결과물이겠지만.


이런 안타까운 마음은 날이 갈수록 더해졌다. 유달리 이번 올림픽에서 한 끗 차이의 성적이 많이 나왔다. 그 종목들이 예전에는 메달권에 다가가기조차 쉽지 않았던 종목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과임은 맞다. 그치만 한 끗 차이로 그토록 바라던 메달을 걸지 못한다는 마음이 얼마나 아쉬울지 감히 상상조차 하기가 힘들었다. 역도나 기계체조처럼 다음 선수의 결과에 따라 순위가 변하는 종목에서 '3위'에 올라있던 이선미 선수와 류성현 선수의 순위가 4위로 내려갈 땐 내 마음도 같이 푹 꺼지는 느낌이었다. 대한민국 최초로 다이빙에서 4위를 한 우하람 선수, 가라테에서 5위를 한 박희준 선수 기사를 보고 이번에도 '웬일로' 경기까지 다 찾아보며 그들이 이룬 업적에 박수를 보냈다. 

시상식에 게양된 태극기보다 조구함 선수 유니폼에 붙은 작디 작은 태극마크가 더 눈에 들어온 건, 결과를 떠나 자기 몫을 해낸 선수들의 마음이 보였기 때문은 아닐까.


내가 하지 못 하는 일을 하는 다른 이들은 누구나 다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사는 내게, 특히 나와는 거리가 먼 스포츠 종목을 해내는 모습을 보는 경험은 실로 벅찼다. (이번이 처음이라 그런 걸 수도 있고) 그래서 한 끗 차이의 아쉬움이 더 컸던 걸까. 어느 날은 친구에게 '내가 뭐라고 그냥 다 제쳐 버리고 (4등 한) 저 선수한테 메달 주고 싶음 ㅠㅠ'이라고 한 적도 있다. 4등도 충분히 대단한 성적이지만만, 그동안의 고생에 자그마한 보상이라도 남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생긴 탓이었다. 


아쉬운 마음만을 남기는 버릇을 고쳐먹은 계기는 역시 4등을 기록한 높이뛰기 우상혁 선수의 경기였다. 살다 살다 높이뛰기 결승 중계를 보다니, 나 자신도 내 모습이 신기했다. 결선에는 진출했어도 육상에서 메달을 딸거란 생각을 안 했기에 다른 경기 때처럼 긴장감은 들지 않았다. 소파에 녹아내릴듯이 기대고 앉은 나를 누군가 봤다면 긴장감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으리라. 그런데 우상혁 선수는 신청한 높이를 자꾸만, 그것도 1차 시기에 폴짝, 폴짝 뛰어넘었다. 높이가 올라갈수록, 그걸 또 뛰어넘을수록 바닥에 가깝게 붙어 있던 내 상체도 서서히 세워졌다. 기어이 그는 한국 신기록까지 갈아 치웠다. 물론 내가 보기에도 '저세상 탄력'인 카타르나 이탈리아 선수를 뛰어넘기 힘들어 보였지만 우상혁 선수는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주눅은커녕 '저세상 텐션'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마지막 3차 시도. 결국 넘지 못했지만, 벌떡 일어나며 외친 괜찮다는 말이 오진혁 선수가 '끝'이라고 외치며 10점 과녁으로 날려 보낸 마지막 화살처럼 내 뇌리에 꽂혔다. 

우상혁 선수의 표정, 태도, 에너지 하나하나에 울림을 느낀 건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이번 올림픽에, 선수들이 경기를 펼치는 모습에 마음이 갔던 건 결과가 좋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과정에 최선을 다했다면 그걸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걸 느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전 글에선 그저 10대 선수들보다 나이가 훌쩍 많아진 탓에 삼촌의 마음으로 그들이 대견해 보이는 거라고 썼는데, 올림픽이 다 지나고 나니 그 이면에 이런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올림픽이 막바지에 접어들며 중계 사수에 대한 열의가 한풀 꺾였다. 꺾이라는 더위는 안 꺾였는데 말이다. 올림픽을 열성적으로 보던 오랜만에 만난 친구도 초반만큼 우리 선수들이 활약하는 종목이 없다며 남은 일정에 무슨 경기가 있는지 보자고 했다. 예정된 종목은 근대5종. 내가 스포츠 무지렁이임을 잠깐 또 인증하자면, 이날보다 며칠 전에 진행된 여자 근대5종에서 김세희, 김선우 선수가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올림픽봇' 친구 중 한 명이 카톡을 아래와 같이 보냈다.


'근데오종'

'펜싱에서 2등 기록했나봐'

하필 오타가 났고 숫자 5를 한글로 표기해 '근대 5종 펜싱 라운드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2등 기록 중'이라는 의미를 완전히 잘못 알아 들은 난 이렇게 답장했다.


'오잉? 펜싱 또 해? 오종은 뭐야? 그런 종목이 있어?' 

대화의 화제를 바꾸는 부사 '근데' + '오종'이란 종목과 '펜싱'에서 2등함, 이라고 이해한 것이다. (한숨)


많은 종목을 한 번이 치르는 통에 경기 일정이 오전부터 오후까지 잡혀 있었고, 다른 약속이 있어 근대5종은 챙겨보지 못했는데, 집에 돌아와 뉴스를 트니 전웅태 선수가 결승선을 통과하는 장면이 나왔다. 화면을 둘러싼 CG, '근대5종 전웅태 동메달'이었다. 마침 전날 만난 친구랑 통화 중이어서 어제 얘기한 근대5종에서 동메달이 나왔다는 소식을 곧바로 전했다. 이 말을 전하는 찰나, 아쉬우면서도 가슴이 찡해지는 장면이 이어졌다. 전웅태 선수 뒤, 또 다른 우리 선수가 들어왔고 '근대5종 정진화 4등'이란 CG가 떴다. 온종일 경기를 치른 피로에 쓰러지다시피 필드에 누운 정진화 선수에게 다가온 전웅태 선수가 그를 껴안는 장면이 화면에 잡혔다. 하필 두 선수가 나란히 3-4등으로 갈린 건 참 아쉬웠지만, '괜찮다'는 울림이, '잘했다'는 여운이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다.

뉴스를 보다 가슴이 찡해졌던 장면. 


올림픽이 개회 즈음, 여러모로 진 빠지는 일이 연거푸 생겼다. 열심히 준비한 기획이 코로나 때문에 다 연기, 연기, 또 연기가 되면서 모든 게 다 수포가 되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방역단계 4단계를 일개 개인인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무기력증에 빠져버렸다. 지금까지 연기됐다고 해봐야 고작 2주, 3주인데도 말이다. 코로나 때문에 1년이나 더 올림픽을 준비했을 선수들은 어땠을까. 심지어 펜싱 금메달의 주역인 오상욱 선수는 코로나에 걸리기까지 했다더라... 착착 진행되던 일이 수포가 된 정도로 무기력증에 빠져든 나를 알게 모르게 돌아보는 시간이 올림픽 중계를 보는 시간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다시금 드는 순간이었다.


그나저나 벌써 파리 올림픽의 어마무시한 기획이 소문처럼 퍼지고 있다. 그랑팔레에서 펜싱과 태권도, 앵발리드 앞에서 양궁, 베르사유 궁전에서 승마랑 근대5종을 한다고? 3년 뒤, 파리 올림픽 갈 돈을 모아야겠다는 다짐으로 글을 끝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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