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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Aug 11. 2021

아이야, 내가 자리를 양보한 건

단상 (19)


 버스를 탔다. 교통약자석 스티커가 붙어 있는 자리 바로 뒤에 남아 있는 1인용 좌석에 앉았다. 다음 정거장에서 한껏 들떠 있는 아이와 아이 짐까지 잔뜩 욱여넣은 에코백을 한쪽 어깨에 걸친 젊은 엄마가 탔다. 아이와 엄마는 내 옆에 멈춰 섰다. 버스를 타기 전까지 한 일에 흥이 여태 가라앉지 않아 계속 촐랑대는 아이에게 엄마가 주의를 시킨다.


 "앞에 봉 제대로 잡아야지."


 버스는 마침 그때 다시 부웅- 액셀을 밟았고 관성에 아이는 살짝 휘청였다. 아이는 그제야 봉을 잡는다, 아니 봉에 '매달린다.' 조막만 한 손으로 차내 봉을 잡은 게 아니고 껴안듯이 봉을 휘감은 것이다. 아이의 왼손에는 망사로 된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의 채집함이 들려 있었고 그 안엔 크기가 꽤 큰 매미가 담겨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의 에코백 밖으로 삐죽, 작은 잠자리채의 머리통이 삐져 나와 있었다.


 방학을 맞이하야(?) 곤충 채집을 하고 왔구나... 그래서 애가 이렇게 신이 나 있구나... 녀석, 귀엽네- 라는 생각은 내게 사치였다. 오감을 넘어 육감까지 내 시선 바로 옆에 살포시 앉아 있는 매미에 곤두선 상태라 아이의 천진난만함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렇다. 난 귀신보다 벌레를 더 무서워한다. 채집함 속에 있다지만, '벌레 프로 혐오러'인 날 긴장하게 만들기엔 그만한 크기와 혐오스러운 형체면 충분했다.


 때는 바야흐로 대학교 2학년 때 간 농활. 밭두렁을 거닐다 발 밑에 '물컹'하는 묵직한 이물감을 느꼈다. 쥐. 내 발밑에 느껴진 이물감의 원인은 자그마한 쥐였다. 그때야 지금보다 10 kg는 덜 나가는, 남자치고는 가벼운 몸무게에 속하던 때지만, 그건 다 사람 기준인 거지 쥐가 감당할 무게는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기절한 줄만 알았던 쥐는 다시는 움직이지 못했다. 어르신께서 쥐가 내상으로 죽은 거라고 밭 바깥에 치워 놓으라고 하셨다. 미안한 마음에 호미였나 낫이었나, 들고 있던 기구로 얕게나마 땅을 파고는 쥐를 묻어 주었다. 아무리 시체라지만 쥐를 아무렇지 않게 다루는 모습에 후배들은 내게 '겁 없는 선배'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쥐도 안 무서워하는데, 이걸 무서워하겠냐며 한 후배는 다음 날 내게 해서는 안 되는 장난을 하고야 말았다. 잡고 있던 잠자리를 내 목 뒤에 올린 것이다. 검지와 중지로 얇은 날개 두 장을 딱 잡은 채 내 목 뒤를 발버둥 치는 잠자리 다리로 간질인 것이다. 간지러운 느낌에 고개를 휙 돌렸을 때 잠자리 얼굴을 정면으로 맞이한 나는 '강아지 아이'가 '열 살'이고 '열여덟 아이'가 있다는 식의 욕설을 진심으로 퍼부었다. 전날의 용감무쌍한 날 기억하는 후배로선 고작 잠자리에 경기를 일으키는 내 모습이 오히려 낯설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갑자기 질질 길게도 새어 나온 이 얘기의 요지가 무엇이냐면... 벌레를 무서워하는 이유의 99%의 지분은 그것들의 생김새라는 것이다. 매미가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사실, 내 몸에 붙어 있는 게 아니란 사실은 내 공포심을 조금도 가라앉혀 주지 못했다.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이의 어머니에겐 선뜻 자리를 비켜주는 모습으로 보였는지 괜찮다는 뉘앙스를 내비쳤지만 여기서 일어나지 않으면 안 괜찮은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내 기준에 초등학교 2~3학년 남자아이는 굳이 자리를 양보해 줄 대상이 아니다. 무거운 짐을 들고 있거나(짐은 엄마가 다 들고 있었으니 차라리 엄마한테 양보하면 모를까), 다리에 깁스하고 있다거나 한 게 아닌 이상. (내가 아이에게 너무 냉정한 건가...) 자리에 앉은 아이는 매미 따위가 뭐가 그리 소중한지 무릎 위에 올린 채집함을 양손으로 감쌌다. 고맙다고 인사하라는 엄마의 말에 매미에게서 시선을 거둔 아이는 나를 쓱 보고는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별 의미 없이 나도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어차피 마스크 때문에 보이지도 않았겠고), 그때 그 미소는 감사 인사에 대한 화답이라기보단 속마음을 감춰보려는 머쓱한 시도였다.


 "아이야, 내가 자리를 양보한 건 네가 어린이라서가 아니라 네가 들고 있는 그 매미, 네가 감히 내 오른쪽 눈 옆에 높이를 맞춰 들고 있던 그 징그러운 매미 때문이란다." 라는 속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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