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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Sep 29. 2022

아미와 애미의 싸움

단상(67)


구글이랑 페이스북 계정 있어?


이 질문이 굉장히 뜬금없었던 이유는 질문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누가 질문했느냐 때문이었다. 두 계정을 얼마나 많이 활용하는가는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계정이 있기는 있으니 구글이나 페이스북 계정이 있을 리가 없어 보이는 애라서 있는지 없는지 묻는 질문이 애초에 아니었다. 질문자가 뜬금없었을 뿐인데, 물어 온 이가 다름 아닌 어머니였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나한테 구글이나 페이스북 계정을 빌릴 일이 있을까? 아주 잠시 어쩌고 피싱, 저쩌고 스미싱 하는 사기에 혹 한 건 아닌가 섬찟했지만, 단순히 계정의 유무를 묻는 걸로 큰 불화가 일어날 것 같지 않음은 직감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어머니는 그럼 빨리 로그인해서 '투표'하라고 날 독촉했다. 


잠시나마 사기에 현혹되는 상상을 한 게 무색할 만큼 김새는 권유였다. 뭐, 또 요즘 대세 트로트 가수인 그 친구겠지. 팬은 아니지만 가족이 팬이라는 이유로 결국 두 계정에 로그인하여 투표를 하고야 말았다. 근데 이렇게까지 열성적으로 가족들한테 투표를 독려하는 이유는 경쟁 상대가 어마어마한 팀이었기 때문이었다. 제목을 다시 보면 눈치채실 분이 많으리라. 그렇다. 아미(ARMY)의 그들, BTS였다. 괜히 아미가 팬클럽이 아닌 단어 뜻 그대로 군대인 척해보려고 군복 패턴 사진을 제목에 깔아보긴 했다만... '아미'라는 단어가 이제 팬클럽을 지칭하는 용어로 어째 더 자주 쓰이는 듯한 건 기분 탓이려나. 


투표하고 나니 단 400표 정도의 차로 임영웅이 앞서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몇 시간 전만 해도 BTS가 앞서고 있었단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이니 가족부터 주변 지인들을 끌어 모아 화력을 지원하는 모양이었다. 근데 BTS는 글로벌 팬덤으로 화력을 보충할 테니 왠지 그가 2위로 밀려나는 건 시간문제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입 밖으로 이 생각을 꺼내진 않았다)



그러고는 사촌 동생들한테까지도 투표하라고 카톡을 해야겠다고 하셨는데, 걸림돌이 있다면 동생들 중 한 명이 BTS 팬이라는 점이다(!) 


나: 근데 OO이는 BTS 팬이라 BTS 투표할 걸?
母: 안 돼. 무조건 영웅이 투표해야 돼.


이 대화를 하고 돌아서니 괜한 몽상이 끼어들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도 한창 1세대 아이돌 S.E.S.에 빠져 있던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임영웅과 활동 시기가 겹쳤고 이런 투표 때 1,2위를 다투는 상황이었다면 이 집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과연 아빠와 형은 누구의 편을 들어 어느 팀의 투표수를 올려줬을까. 별안간 시덥지 않은 몽상에 빠져 있는 날 몽상에서 건져 폭소하게 만든 건 어머니의 쐐기를 박는 멘트였다.


지금 이건 아미(ARMY)와 애미의 전쟁이란 말이지.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 낸 문장인지, 다른 팬한테서 주워 들은 문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임영웅 팬덤의 대다수가 어머님들이란 걸 떠올리니 찰떡같이 입에 착착 붙는 언어 유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아미/애미 대첩에서 승리할 군단은 누구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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