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85)
음식 취향이 바뀔 때 흔히들 '나이 먹더니 입맛이 바뀌었나 봐' 같은 말을 덧붙이곤 한다. 보통 어린이의 입맛에는 잘 맞지 않아 어른의 입맛을 장착하고 나서야 본연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음식을 먹을 때 많이들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얼마 전, 알감자를 먹으며 나이 먹어서 입맛이 바뀐 거라고 생각했던 내 사례도 비슷한 사례로 들 수 있을까?
일단 감자와 고구마 - 구황작물의 쌍두 마차-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무조건 고구마를 골랐다. 포테이토 앞에 '스위트'가 붙어 달달한 맛을 더해주는 고구마가 그저 포만감을 채워주는 맛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감자를 선호도 면에서 월등히 앞섰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메인 디시에 곁들이는 사이드 메뉴로 통고구마가 아닌 통감자를 시킬 때면 '아아... 사이드 디시엔 손도 안 대겠구나...'라며 속으로만 아쉬움을 토로했다. (메뉴를 고를 때 내 의견을 강력히 내세우는 편이 아니다)
그렇다고 감자 알레르기가 있어서 아예 못 먹는다거나 감자 자체를 혐오 음식 따위로 치부하는 건 아니다. 감자튀김은 또 그렇게 잘 먹을 수가 없으니까. 감자를 썩 좋아하진 않아서 통으로 찐 감자라거나 감자를 주재료로 하는 다른 음식은 잘 먹지 않는데, 햄버거를 먹을 때 단품을 시켜 감자튀김 없이 먹는 건 용납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근데 또 똑같이 튀겨냈어도 얇게 튀긴 감자 - 프렌치프라이 -는 좋아하면서도 웨지 감자나 알감자는 거부한다. 참 쓸데없이 뚜렷한 음식 취향이다.
며칠 전, 그라탱을 먹는데 거들떠도 안 보던 알감자를 얼떨결에 먹어 놓고선 '어라? 알감자가 맛있잖아?'라며 아무도 모르게 홀로 소스라치게 놀라는 경험을 했다. (소스라친다고 말할 정도로 놀랄 일은 아닌데 말이다) 알감자를 받아들인 내 입맛을 곱씹으니 자연스레 '나이 먹더니 입맛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프렌치프라이는 먹으면서 도톰한 감자튀김은 안 먹은 이유가 뭘까. 아무래도 도톰하게 튀겨지며 감자 본연의 형체를 어느 정도 간직했기 때문인 것 같다. 얇은 프렌치프라이처럼 바삭-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바삭한 겉을 지나면 으깨지듯 뭉개지는 오동통한 알감자 튀김의 식감이 내겐 별로였던 것이다.
프렌치프라이와 알감자라니. 나이가 먹어서 입맛이 바뀐 거라기엔 너무 하찮은 차이가 아닐 수 없다. 원래는 싫어했던 으깨지듯 뭉개지는 그 식감이 나이 한 살 더 먹었다고 좋아지는 대단한 텍스쳐는 아니지 않나. 문득 '겉바속촉'의 유행에 휩쓸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싫어했던 식감이 '속촉'에 가까운 식감을 자아내니까. 촉촉하다고 표현하긴 애매하지만 부드럽게 으깨지는 촉감을 '속촉'으로 표현하기도 하니까. 만 나이가 적용된다는 새해라서 나이는 줄어들 테니 나이 먹어서 입맛이 바뀌었다고 하지 말고, 앞으로는 유행에 적응했다고 해야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