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1인 2닭
여행 중의 생생한 추억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축제 현장이 떠오른다. 가장 최근에 다녀온(최근이라지만 18년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과 아비뇽 연극제의 추억이 먼저 떠오른다. 시간을 거슬러 더 오래전의 축제를 떠올려 본다. 아비뇽과 에든버러에서 둥실, 떠오른 추억의 풍선은 대구에 다다르자 펑, 하고 터져버렸다. 추억이긴 하지만 ‘웃픈’ 흑역사이기도 한 16년도 대구 치맥 페스티벌에서의 해프닝 때문이다.
치킨&맥주. 제아무리 ‘대프리카’라고 불리는 대구의 더운 날씨도 이 조합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더위는 오히려 열기가 됐고, 입구에서부터 차오른 열기에 흥이 넘치고 말았다. 기념품 매대를 지나치다 여자 일행은 닭벼슬 머리띠를, 난 로고가 그려진 작은 핀을 샀다. 굿즈로 한껏 치장하고 셀카를 찍는 우리에게 KBS 기자가 다가왔다. 인터뷰를 하잔다. 우린 그저 흥이 넘쳤을 뿐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끈다거나 인터뷰를 한다거나 하려는 목적은 전혀 없었다. 손사래를 치며 ‘도망가는’ 우릴 끈질기게 쫓아오던 기자는 간청에 가까운 부탁을 했다.
그 머리띠를 차고 있는 것도 우리뿐이고(축제 분위기가 잘 느껴진다나 뭐라나), 당장 내일 아침 뉴스 보도용이라 인터뷰를 서둘러 넘겨야 한단다. (그럼 더 일찍 오셨어야죠) 바짓가랑이 붙잡고 사정하는 격이니 짧은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다. 우리 중 누가 하느냐,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했다. 꼭 제안한 사람이 걸리는 건 왜일까. 결국 카메라 앞에 선 사람은 나였다.
간단한 호구조사를 하던 중 흥에 겨운 모습을 연출하던 친구들에게 기자가 한 소리를 한다. “죄송한데 가만히 좀 계셔 주시겠어요?” 축제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굿즈를 하고 있다고 섭외해 놓고 그러한 티를 내지 말라는 건 모순 아닌가. (실제 인터뷰를 보면 친구들은 망부석이 되어 멀뚱멀뚱 눈만 껌뻑인다) ‘갑분싸’를 아랑곳하지 않고 질문을 이어 가는 기자. 어디서 왔냐, 이름이 뭐냐, 축제 현장은 어떠냐, 기분이 어떠냐. 단편적인 질문에 대해 한 대답을 이어서 한 번에 말해 달라는 게 실제 인터뷰의 답이 되었다. 순간, 본인이 급하다며 끈질기게 인터뷰 요청했으면서 냉랭한 분위기를 조성한 데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터뷰 말미에 아무 말이나 던지겠다는 못된 심보가 일었다.
1인 2닭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연히 편집될 거라고 생각했다. 공중파여서인지, 원래 인터뷰에서는 그런 건지 모르지만 흥에 겨워하는 친구들을 망부석으로 만들 정도면 저런 표현은 내보내진 않을 거라는 생각. 저 말을 뱉어내고 유유히 소기의 목적을 달성코자 닭을 뜯으러 갔다.
다음 날 뉴스를 본 몇몇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친구의 캡처에는 편집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은 단어가 버젓이 들어 있었다. 1인 2닭. 졸지에 닭 두 마리를 거뜬히 먹어 치우는 대식가가 되었다. 그리고 날아든 또 다른 캡처. 이번에는 모바일 버전으로 뉴스를 본 친구였는데 아주 가관이었다. 모바일이란 특성에 맞게 영상 캡션에 몇 가지 태그가 달렸다. 편집될 거란 내 예상은 보란 듯이 비껴갔지만 지금 여러분의 예상은, 생각하는 그 태그가 맞다.
#1인 2닭ㄱㄱ
꼭 두 마리를 먹으라는 듯 ‘ㄱㄱ’까지 붙었다. 이쯤 되면 먹방 유튜버로 데뷔해 치킨 두 마리를 발골 해야 할 노릇이다. '닭최몇(닭 최대 몇 마리)?'에 대한 답을 하자면 고작 한 마리다. 한창 돼지력이 상승했을 때는 가능했던 1인 1닭. 그마저도 먹고 나면 기분 나쁜 포만감이 들어 후회한 적이 많으니 거뜬히 한 마리가 아닌 꾸역꾸역 한 마리인데, 두 마리를 먹으라는 건 너무 하지 않나.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1인 2닭을 할 일은 없겠지만 치맥 페스티벌을 추억하는 말로는 남을 1인 2닭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