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 유튜버도 아닌 주제에

우리말 1인 2닭

by Fernweh

말을 모으는 여행기, 말.모.여. 38)


우리말 1인 2닭


치느님이야 언제나 환영이지만 1인 2닭은 무리다

필터를 거치지 않고 뱉은 말로 '1인 2닭남'이 되버린 사연


여행 중의 생생한 추억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축제 현장이 떠오른다. 가장 최근에 다녀온(최근이라지만 18년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과 아비뇽 연극제의 추억이 먼저 떠오른다. 시간을 거슬러 더 오래전의 축제를 떠올려 본다. 아비뇽과 에든버러에서 둥실, 떠오른 추억의 풍선은 대구에 다다르자 펑, 하고 터져버렸다. 추억이긴 하지만 ‘웃픈’ 흑역사이기도 한 16년도 대구 치맥 페스티벌에서의 해프닝 때문이다.


치킨&맥주. 제아무리 ‘대프리카’라고 불리는 대구의 더운 날씨도 이 조합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더위는 오히려 열기가 됐고, 입구에서부터 차오른 열기에 흥이 넘치고 말았다. 기념품 매대를 지나치다 여자 일행은 닭벼슬 머리띠를, 난 로고가 그려진 작은 핀을 샀다. 굿즈로 한껏 치장하고 셀카를 찍는 우리에게 KBS 기자가 다가왔다. 인터뷰를 하잔다. 우린 그저 흥이 넘쳤을 뿐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끈다거나 인터뷰를 한다거나 하려는 목적은 전혀 없었다. 손사래를 치며 ‘도망가는’ 우릴 끈질기게 쫓아오던 기자는 간청에 가까운 부탁을 했다.


그 머리띠를 차고 있는 것도 우리뿐이고(축제 분위기가 잘 느껴진다나 뭐라나), 당장 내일 아침 뉴스 보도용이라 인터뷰를 서둘러 넘겨야 한단다. (그럼 더 일찍 오셨어야죠) 바짓가랑이 붙잡고 사정하는 격이니 짧은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다. 우리 중 누가 하느냐,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했다. 꼭 제안한 사람이 걸리는 건 왜일까. 결국 카메라 앞에 선 사람은 나였다.


간단한 호구조사를 하던 중 흥에 겨운 모습을 연출하던 친구들에게 기자가 한 소리를 한다. “죄송한데 가만히 좀 계셔 주시겠어요?” 축제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굿즈를 하고 있다고 섭외해 놓고 그러한 티를 내지 말라는 건 모순 아닌가. (실제 인터뷰를 보면 친구들은 망부석이 되어 멀뚱멀뚱 눈만 껌뻑인다) ‘갑분싸’를 아랑곳하지 않고 질문을 이어 가는 기자. 어디서 왔냐, 이름이 뭐냐, 축제 현장은 어떠냐, 기분이 어떠냐. 단편적인 질문에 대해 한 대답을 이어서 한 번에 말해 달라는 게 실제 인터뷰의 답이 되었다. 순간, 본인이 급하다며 끈질기게 인터뷰 요청했으면서 냉랭한 분위기를 조성한 데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터뷰 말미에 아무 말이나 던지겠다는 못된 심보가 일었다.


1인 2닭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연히 편집될 거라고 생각했다. 공중파여서인지, 원래 인터뷰에서는 그런 건지 모르지만 흥에 겨워하는 친구들을 망부석으로 만들 정도면 저런 표현은 내보내진 않을 거라는 생각. 저 말을 뱉어내고 유유히 소기의 목적을 달성코자 닭을 뜯으러 갔다.

01515ad9d92926caa8a068d733b346d5e1fcbd8972.jpg 문제의 닭 벼슬 머리띠... (부들부들)
13925090_1184055101633248_4447768021386849523_n.jpg 앞일을 모르고 뱉어 낸, 주옥같은 인터뷰. (욕한 거 아님)



다음 날 뉴스를 본 몇몇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친구의 캡처에는 편집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은 단어가 버젓이 들어 있었다. 1인 2닭. 졸지에 닭 두 마리를 거뜬히 먹어 치우는 대식가가 되었다. 그리고 날아든 또 다른 캡처. 이번에는 모바일 버전으로 뉴스를 본 친구였는데 아주 가관이었다. 모바일이란 특성에 맞게 영상 캡션에 몇 가지 태그가 달렸다. 편집될 거란 내 예상은 보란 듯이 비껴갔지만 지금 여러분의 예상은, 생각하는 그 태그가 맞다.


#1인 2닭ㄱㄱ


꼭 두 마리를 먹으라는 듯 ‘ㄱㄱ’까지 붙었다. 이쯤 되면 먹방 유튜버로 데뷔해 치킨 두 마리를 발골 해야 할 노릇이다. '닭최몇(닭 최대 몇 마리)?'에 대한 답을 하자면 고작 한 마리다. 한창 돼지력이 상승했을 때는 가능했던 1인 1닭. 그마저도 먹고 나면 기분 나쁜 포만감이 들어 후회한 적이 많으니 거뜬히 한 마리가 아닌 꾸역꾸역 한 마리인데, 두 마리를 먹으라는 건 너무 하지 않나.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1인 2닭을 할 일은 없겠지만 치맥 페스티벌을 추억하는 말로는 남을 1인 2닭이겠다.

13925090_1184055101633248_4447768021386849523_n - 복사본.jpg 해시 태그를 달 거라곤 꿈에도 몰랐다. (엄지는 왜 추켜 세운 건지)
01c416ae60be0a51746f3461b4e503e66032de5c26-horz.jpg 순살 닭강정과 간장 치킨. 1인 2닭이 아니고, 넷이서 두 마리 먹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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