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어 ແຈ່ວ 태국어 ส้มตำ 캄보디아어 ឡុក ឡាក់
* 외래어표기법상 '솜땀'이지만 통용되는 '쏨땀'으로 본문에는 표기했습니다.
먹거리에 있어서는 뚜렷한 성향이 있다. 한 가지 음식에 꽂히면 주구장창 그 음식만 먹는 것. 내게는 스테디셀러 격인 떡볶이는 주 2~3회는 꼭 먹어줘야 하고, 그달의 베스트셀러로 꽂힌 음식은 하루에 두 번이라도 먹는다. (저번 달은 역×우동의 ‘매콤치킨마요덮밥’이었다)
여행 중엔 다양한 현지 음식을 경험해보려 하지만 한 음식에 꽂히는 순간 다른 음식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새로운 시도, 특히나 처음 보는 음식에 대한 시도를 두려워하는 또 다른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다행히 동남아 국가에서는 처음 먹는 메뉴에도 큰 고충이 따르지 않았다. 고수에 큰 거부감이 없어 고수가 담뿍 담긴 요리도 척척 잘 해치웠다. 그러던 중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에서 ‘찜’한 메뉴가 있었으니 바로 쏨땀, 쩨우, 록락이었다. 우리네 밥, 반찬과 장(醬)을 떠올리며 얼추 구성을 맞추니 메인 메뉴는 록락, 하얀 쌀밥에 얹어 먹을 장은 쩨우, 반찬으로 곁들일 쏨땀이라는 훌륭한 한상차림이 완성된다.
쏨땀이야 워낙 유명하니 ‘파파야 샐러드’란 설명으로 충분할 듯하다. ‘팟팍붕파이댕’(ผัดผักบุ้งไฟแดง), 모닝글로리로 불리는 공심채 볶음도 빼놓을 수 없지만, 젓갈이 들어간 쏨땀보다 감칠맛이 덜하다. 한상차림으로 꾸리기엔 좀 심심해서 쏨땀을 골랐다. 저렴한 가격으로 후딱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푸드 코트 ‘Pier 21’에선 항상 쏨땀과 카오카무를 시켜 먹었다. 태국식 돼지족발 덮밥인 ‘카오카무(ข้าวขาหมู)’도 베스트셀러 메뉴지만 뒤에 소개할 록락이 입맛을 제대로 저격했기에 카오카무는 아쉽게 한상차림 후보로 머물렀다.
쩨우는 모양만 봐도 우리네 된장, 고추장을 떠올린다. 메뉴판에도 ‘소스’로 분류되는 라오스식 ‘장’이다. 비엔티안에서 현지 음식을 맛보고 싶을 땐 항상 라오키친을 찾았다. 쩨우를 처음 맛본 것도, 계속 찾게 된 것도 이 라오키친 덕분이었다. 된장, 쌈장, 고추장, 초고추장, 장의 종류가 많듯 쩨우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매운맛을 가미한 칠리 쩨우가 제격이다. (칠리까지는 라오어로 모르겠다) 토마토 베이스만 고추와 고수를 갈아서 넣어 매콤하고 알싸한 풍미가 고추장과 비슷하다. 갓 지은 뜨끈한 쌀밥엔 고추장만 쓱쓱 비벼 먹어도 꿀맛인 것처럼, 쩨우는 포슬포슬한 안남미 밥에도, 쫀득한 찹쌀밥 ‘까오 니여우(ເຂົ້າ ໜຽວ)’에도 잘 어울린다.
샐러드도 좋고 장도 좋다. 그래도 고기가 빠지면 왠지 섭섭하다. 캄보디아식 촙스테이크, 록락이 한 상 차림 메인 메뉴의 대미를 장식한다. 네모나게 잘려 나온 소고기에 밥 한 공기가 툭, 같이 담긴다. 딱히 캄보디아식이라고 언급하기 민망한 모양과 맛이지만 그렇기에 누구든 거부감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채식주의자에게 미안하지만, 고기는 언제나 옳다. 앙코르 와트 앞에 있는 카페 블루 펌킨에서 록락을 처음 맛보고 다른 식당에서도 줄곧 록락만 먹었다. 록락이 질릴 즈음, 크메르키친이란 식당에서 생선이 들어간 카레 ‘아목’에 도전했다. 역시는 역시. 생선보다는 고기다. 크메르키친의 록락도 꿀맛일텐데, 못 먹고 온 게 여전히 아쉽다.
록락의 완성은 같이 나오는 후추 소스다. 방금 소스로 쩨우를 소개하지 않았느냐고 할 수 있지만, 밥용 소스와 고기용 소스는 엄연히 다르다. 밥 위에는 쩨우를 양껏 올려 한 입, 록락 한 점은 후추 소스에 푹 담가 먹어야 제맛이 난다. 밥 한 숟갈에 김치 한 점, 고기 한 점에 쌈장을 푹 찍어 먹는 우리 식성과도 많이 닮았다. 고기의 잡내를 잡아 준 후추 소스가 느끼함까진 잡지 못할 때 쏨땀을 한 움큼 입에 넣으면 느끼함이 싹 내려간다. 파파야의 상큼함과 버무려진 젓갈의 감칠맛도 좋은데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도 입맛을 계속 돋운다.
요즘은 워낙 외국 식자재를 쉽게 구할 수 있으니 한상차림에 도전해볼 법하다만, 요리는 영 젬병이다. 코로나가 종식되고 여행을 가더라도 각 메뉴가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에 있으니 한 번에 맛보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상상으로라도 내 최애 조합을 하나로 엮어 보는 수밖에. 이 야밤에 배가 고파 오니 라면이라도 끓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