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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Mar 04. 2021

어서와 북페어는 처음이지

커넥티드 북페어 참가 후기


DAY 1


 지난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합정 '무대륙'에서 열린 커넥티드 북페어에, 운 좋게도 셀러로 참가했다. 북페어 텀블벅 기획전으로도 참가해 <말을 모으는 여행기>는 우여곡절 끝에 펀딩에 성공하여 리워즈 배송도 페어 전에 끝마쳤다. 갑자기 들이닥친 몇 가지 개인 일정을 동시에 처리하느라 진이 다 빠졌는지(깨알 같지만 한 후원자님께 배송이 잘못 가기까지 하고...) 북페어 준비에 크게 신경을 못 썼다.


 '어서와 북페어는 처음이지'란 말은 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다. 아니, 말이어야 했다. 처음인 만큼 인터넷으로라도 발품팔아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찾아봤어야 하는데, 하나의 산을 넘고 나니 숨을 좀 돌리고 싶었는지 판매할 책만 덜렁 들고 북페어 현장을 찾았다. 그래도 북페어에 참가하는 만큼 북페어 때만 제공해 드리는 증정용 책갈피를 만들기는 했다. '만들기는'... 그것마저 배송 착오...(내 사주에 배송이 꼬일 사주가 많은가 보다...) 페어에 와 주시는 분의 정성을 생각하여 뭐라도 하나 더 챙겨드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출고처까지 찾아가 수령하려 했지만 그마저 조율이 쉽게 되지 않아 결국 첫날엔 북페어용 책갈피를 개시하지 못했다. 


 오전에 책갈피를 받을 수 있네 없네, 방문 수령을 하러 가네 마네 갈팡질팡하다 북페어가 열린 '무대륙'에는 입장 1시간 전 즈음 도착하였다. 내 자리가 마련된 2층에 올라서니 그제서야 이렇게 휑뎅그렁하게 올 곳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모두들 바쁘게 각자의 자리에 '인테리어 공사'를 방불케 하는 장식을 하고 있었다. 쭈뼛쭈뼛 내 자리로 와서 책을 주르륵 늘어 놓고 나니 셋팅은 끝났다. 5분 걸렸으려나. 허전했던 짐만큼 허전한 셋팅. 하물며 테이블보마저 없어 더할 나위 없이 허전한 테이블...

북페어가 처음인 걸 너무 티냈던 첫 날의 테이블 셋팅 모습... 

 

 북페어 증정용 책갈피 대신 펀딩 리워즈 준비 때 가제본으로 만들었던 엽서 몇 장이 남아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초라한 테이블에 소소한 장식이랍시고 놓아 둔 엽서는 구매자분께 제때 배송이 오지 않은 책갈피 대신 증정용으로 드려 구색을 겨우 맞출 수 있었다. 구색은 맞췄다지만 손님 입장 직전까지 뚝딱뚝딱 부스 장식에 열 올리는 주변 셀러 사이에서 책만 펼쳐 둔 채 멍하니 앉아있으려니 너무 어색해, 그 기분을 참지 못하고 1층 카페로 피신해 있었다. 초짜라서 한 없이 부끄러운 이 행태를 바라보는 다른 셀러 분의 시각은 '웃픈' 응원이 되기도 했다.

페어를 워낙 많이 참가하신 분이구나 했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책만 딱! 심플하게 깔아 놓으신게...


예전 페어 때도 책만 두는 셀러 분도 많이 있었어요.
책 내용에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방증 아닐까요?


 초라한 내 자리에 대한 심심한 위로로 주변 셀러 분들과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 주변 셀러들 모두가 나처럼 개인 참가여서 어색함에 압도당하기 싫다는 모종의 동질감을 느꼈는지 북페어 시작과 동시에 아이스 브레이킹이 이루어졌다. 덕분에 걱정과 달리 처음 참가한 북페어의 첫 날을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보낼 수 있었다. 다만, 선정이 안 되더라도 일단 신청해보자며 겁도 없이 덤벼든 북토크를 하게 되어 스트리밍이 예정된 17시에 가까워질수록 긴장감이 휘몰아쳐 '여긴 어디 나는 누구'의 상태로 멍해지고 있었다.


다들 신청하는 줄 알고... 일단 신청만 해보자 했다가 얼떨결에 하게 된 <말모여> 북토크. 표정을 자세히 보면 혼이 빠져 있다 :(


 일단 스트리밍 이벤트에 참가하는 만큼 나름대로 대본도 준비했는데... 대본은 하나도 눈에 안 들어오고... 긴장감에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상태가 토크를 마칠 때까지 지속되었다. 지인이 찍어준 사진을 보면 '여긴 어디 나는 누구'의 멍한 표정이 드러나는 데, 그저 기분 탓이려나... 촬영을 담당하신 PD님도 북토크 혼자 하는 거냐고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는데, 휴지가 있는 문답형식이 아닌 탓에 혼자 주저리주저리 말을 이어 나가야 했고 어느 순간부터 혼이 빠져서 끝나고 나니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잘 기억도 나지 않은 지경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책이 궁금하신 누군가에게 홍보가 됐기를 소심히 바랄 뿐이다.


DAY 2


 지난 날의 과오를 어내려 주변 셀러와 지인의 조언에 귀 기울여 이틀차엔 테이블을 꾸밀 아이템을 바리바리 챙겨왔다. 남들은 셋팅을 다 끝내두어서 둘째날은 페어 시작 시간인 11시에서 십 분 전 즈음 여유롭게 왔는데 이 날이 페어 첫 날인것처럼 자리를 꾸며야 하는 난, 둘째날도 한 시간이나 일찍 페어 장소에 와야 했다. 처음으로 들어온 셀러가 바로 나... <말을 모으는 여행기> 기획의 시작이었던 '마그넷은 너무 뻔하잖아요'를 모티브 삼아 표지 사진에 보이는 마그넷을 대거 가져와 책 주변에 뿌리듯 깔고, 인상이 인상인지라 손님이 쉽게 말 걸지 못하진 않을까 해 귀여운 나의 분신 한 마리도 데려왔다. (사진 참고)


첫째날의 오명을 씻어내기 위해 나름 심혈을 기울인 페어 테이블 셋팅
표지 사진 속 마그넷을 포함 최대한 '예쁜' 마그넷을 정성들여 골라 왔다.
그리고 날 닮은 아이...ㅋㅋㅋㅋㅋ 

 

 뒤늦게 도착한, 전날 그래도 안면을 터서 어색함은 많이 사라진 주변 셀러들이 오자마자 하나같이 예쁘게 단장한 테이블에 박수를 보내주었다. 옆에 계시던 작가님은 몸소 사진까지 찍어 인스타그램 피드, 스토리에까지 올려주셨다. (북페어는 역시 상부상조!) 어제의 초라한 테이블은 잊고 멀끔히 꽃단장을 해서인지 오늘 가져온 책을 다 팔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몽글몽글 솟았다.


 여기서 반전. 페어가 열린 삼 일을 통틀어 이 날 제일 적게 팔렸다. (한 손으로 셀 수 있다. 심지어 온라인 주문보다 덜 팔림...) 전날 황량한 내 테이블을 보고 적극적인 피드백과 마그넷을 깔라는 아이디어를 준 지인에게 톡을 보냈다. 네 말대로 했는데 전 날보다 덜 팔렸다고. 기운이 더 빠진 이유는 관심이 테이블 장식에서 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 부스에 관심을 주신 많은 분이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찰칵. 그리곤 슝. 가버렸다. 샘플책이라도 펼쳐 봤더라면 마음이 덜 아팠으려나. 책이 메인인데 책 주변에 깔아 둔 아이템이 메인이 된 듯해서 페어 종료 시간이 다가올수록 괜히 조바심만 났다. 사진을 찍어간 사람이 올린 피드를 봤는지 인스타에서 사진 봤다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역시 찰칵 그리고 슝- 이었다. 북페어 인증샷 맛집이 되었으니, 그리고 아예 한 권도 못 판 건 아니니 씁쓸한 위로를 보내며 둘째날을 마무리 했다.


DAY 3


 무려 두 친구가 꽃 선물을 주고 가서 다음날 테이블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되었다. 마그넷이 냉장고에 너무 요란하게 붙어 있어 말을 모았다는 취지와 달린 테이블을 너무 요란하게 꾸민 건 아닌지, 널찍널찍한 공간을 충분히 활용하고자 마그넷 사이에 여백을 두었다. 책도 너무 많이 올려 놓았던 거 같아 마그넷을 테두리 삼아 그 안에 3권만 정렬해 두었다. 모서리에 두었던 샘플책은 책상 한 가운데로 옮겼다. 내 테이블 왼쪽 끝은 ㄱ자로 꺽이며 더 안쪽 공간으로 이어지고, 그 반대편이 진행 방향으로 이어지는 통로인데 그걸 생각 못하고 왼쪽 모서리에 샘플책을 두었다. 북페어 공간이 하염없이 넓은 게 아닌지라 통로가 좁았기에 사람들이 ㄱ자로 꺽여지는 왼쪽 끝에 일단 통로 안쪽으로 걸어 들어와 책을 구경하는 식이었는데, 웬걸 샘플책이 구석에 동떨어져 있으니 샘플책을 찾으려 두리번 거리는 사람도 많았거니와 이쪽에 있다고 알려주어도 인파가 더 많은 공간에서 샘플책을 보려니 불편한 눈치였다. 페어도 하다보면 점점 업그레이드 되는 구나-를 느낀 ...


꽃 장식이 더해지고 조금 더 심플하게 꾸며 본 셋째날 테이블.
샘플책은 모서리 쪽 말고 가운데 쪽으로 옮겼다. 


 이틀차에 인스타를 통해 <말.모.여>를 알려 준 작가님, 여행에세이를 좋아한다는 지인을 데려와 준 작가님 등등 전날 상부상조의 따뜻한 마음을 받았던 차라 손님이 많아지기 전 나도 주변 부스를 찍어 인스타에 올렸다. 팔로워가 코딱지만큼이라 홍보 효과가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독립출판으로 책을 만드는 과정이 (당연한 소리지만)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원고 집필부터 인쇄, 유통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쉽기만 하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느껴서인지 다른 창작자의 창작물도 소개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저도 모르게 솟아났다. 주변 셀러 모두 개인 참가자라 자리를 비울 때면 종종 부스를 봐줬고, 손님 응대할 때 책 소개 멘트를 옆에서 하도 귓 동냥을 많이 해서 간단한 책 콘셉트를 묻는 손님에겐 옆 자리 셀러인 내가 직접 설명한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러고 책이 팔렸을 땐 괜히 뿌듯)


주변 셀러 분들의 부스. 


 또 다른 상부상조는 한산한 오전 시간에 절정을 이뤘다. 셀러임에도 책을 '팔려고'가 아닌 '사려고' 페어에 온다는 작가님이 꽤 많았다. 셀러라고 적힌 북페어 종이 패스를 목에 걸고 북페어 2층과 3층을 한 바퀴 휭 둘러 보고 유유히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작가님들의 손에는 책이 여러 권 들려 있었다. 그 사이에 내 책이 종종 끼워져 있기도 했는데, 기쁘기도 했지만 책을 쓰시는 분들이 이제 처음 독립출판에 도전한 사람의 글이 성에 안 차진 않을까 부끄러운 마음이 더 컸다. 


 나도 '판 만큼 사가리라'는 다짐을 하며 지갑을 주머니에 챙겼는데 셀러들과는 인사를 나눈 후에 서로의 책 이야기를 하느라, 여행을 좋아하는 손님 몇몇 분과 여행 썰을 공유하느라 시간이 훌쩍 지나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쳤다. 눈 깜짝할 새 북페어는 인산인해가 되었다. 보통 토요일이 제일 복작거리고, 일요일엔 한가해서 2~3시 쯤 일찍 정리하고 가는 셀러도 많다고 들었는데 마침 다음 날이 삼일절(!)- 공휴일이어서 토요일과 비슷한 정도의 인파가 몰렸다. 책을 사 주신 분 책을 사진 않더라도 부스에 '답방'을 가는 게 매너라 느껴, 내 테부스의 인기가 식었을 때(눈물...) 눈치껏 다른 부스 답방 겸 쇼핑을 떠날 수 있었다. 


 한 부스, 한 부스 이야기가 길어지는 통에 오기로 한 지인들이 2층에 올라왔을 때, 자리에 정작 주인이 없어 신나서 수다떨고 쇼핑하고 다니는 날 지인들이 와서 데려가기도 했던...  (타이밍 한 번 잘 맞춘다)


 "어서와~ 북페어는 처음"인 셀러였기에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사연도 많았던지라 주저리주저리 일기처럼 후기를 써 두고 싶어 적은 글. 3일치를 한 번에 쓰느라 하염없이 길어졌지만, <말을 모으는 여행기> 속 여행지에서 들었던 말처럼 어디 적어두지 않으면 영영 잊혀질 것만 같은 좋은 추억이라 브런치에 기록을 남긴다.


어려운 시국임에도 정말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게끔, 자리를 만들고 3일간 고생해 주신 커넥티드 북페어 관계자 분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리며 글을 끝내려 한다. 



출구 통로에 있던 코로나를 주제로 한 포스터 전시. 코로나가 하루 빨리 종식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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