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행복 실천기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아빠를 따라 숫자가 가득한 곳에 간 적 있다.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운 화면과 빨간색으로 적힌 숫자들. 아빠는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짚은 채 숫자가 가득 적힌 벽을 바라봤다. 주변엔 아빠와 같은 어른들이 많았고 그 사이에서 나는 아빠의 옷자락을 잡았다. 아빠를 따라 숫자를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아래에서 위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었지만 숫자의 뜻과 그것들의 규칙을 알아낼 수 없었다. 나는 아빠에게 궁금한 걸 묻고 싶었지만, 왠지 질문하면 안 될 것 같았다. 화면 앞에 한참 동안 서 있던 아빠는 “가자.”라는 말과 함께 내 손을 잡았다.
2주 전, 인터넷으로 연금 복권을 두 장 샀다.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다 인터넷을 켰는데, 연금 복권과 관련된 기사가 보였다. 비트코인보다 연금 복권에 당첨되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는 내용의 기사였다. 비트코인을 하지 않아 그것의 위험성을 어림짐작할 뿐이었지만, 세금을 떼고도 매달 오백 만 원의 돈이 들어온다는 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연금 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다 당첨되지 않을 확률이 더 높지만, 호기심과 설레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예전부터 연금 복권을 사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했었다). 인터넷에 연금 복권 구입하는 법을 치니 근처 편의점에서 구입해도 되고, 인터넷을 통해 구입해도 된다는 정보가 나왔다.
인터넷을 통해 연금 복권을 구입하는 건 쉬웠다. 회원가입을 하고 계좌를 만들어 돈을 충전한 후, 랜덤 혹은 선택에 의해 숫자를 정하고 복권을 구입하면 끝이었다. 나는 두 장의 복권 중 한 장은 랜덤으로 돌렸고, 한 장은 나름의 규칙에 의해 여섯 자리 숫자를 골랐다. 처음엔 한 장만 구입할 생각이었는데 숫자를 정한 후 그것만 구입하자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약간의 고민 끝에 랜덤으로 한 장을 더 골랐다. 당첨된 것도 아니고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 기대하지 않아야지, 하면서도 추첨일이 기다려졌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목요일 저녁, 운동을 마친 후 휴대폰을 켰다. 당첨되면 좋겠다는 마음과 달리 당첨자는 내가 아니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수백 장을 사도 당첨이 될까 말까하는 게 복권인데, 겨우 두 장에 이토록 설레고 기대하다니. 내 것이 아님에도 잠시 내 것으로 여겼던 며칠이 떠오르며 웃음이 났다. 나는 언니에게 잠시 동안 기대했던 내 마음을 이야기하며, “나는 내가 될 줄 알았지.” 했다. 사실 예전부터 나는 로또 당첨의 꿈을 꿨다. 하지만 십대 때엔 나이가 어려 살 수 없었고, 스무 살이 되었을 땐 오천 원이 아까워 사지 않았었다. 한 잔에 오천 원이 넘는 커피는 사먹으면서, 로또를 구입하기 위해 드는 오천 원은 그렇게 아까웠다. 그렇게 아주 가끔 로또를 샀고, 언제나 그렇듯 당첨은 되지 않았다. 그럴 때면 매주 복권을 사야 하나, 생각했지만 혹시 복권 사는 것에 중독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들었다. 한 번에 많은 돈을 얻는 걸 기다리고 기대하면서도 복권 사는 걸 멀리 했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월급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든 시대라고. 월세 내고 세금 내고 할부 내고 이것저것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그렇기에 주식을 하고 비트코인을 하고 로또를 산다고. 어린 내 손을 잡고 빨간색 숫자 가득 한 화면 앞에 선 아빠도 그랬을 것이다. IMF 이후 일거리가 줄고, 일당이 줄어든 탓에 아빠는 몇 달 동안 월급을 받지 못했다. 하루 24만 원 하던 일당은 10만 원까지 내려왔고 그마저도 받지 못할 때가 많았다. 힘들게 모은 돈에 약간의 대출을 더해 산 아파트는 매달 관리비를 내야 했고, 아빠와 엄마는 결국 아파트를 전세 주고 관리비가 들지 않는 주택으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엄마와 아빠는 언니의 돌에 받은 금팔찌를 도둑맞았고, 어느 새벽엔 청바지 입은 낯선 남자가 거실을 서성이기도 했었다. 돌이켜보면 아빠는 주말이나 쉬는 날마다 빨간색 숫자가 가득 한 그곳으로 향했고, 그다지 밝지 않은 얼굴로 집에 돌아왔다.
스무 살이 넘은 내가 복권을 사지 않았던 건 어쩌면, 어른들이 말하는 ‘월급만으로는 못 사는 세상’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본가에 살며 용돈을 받는 대학생에게 어른들의 말은 먼 세계의 이야기로 들렸다. 그건 곧 나는 그런 삶을 살지 않을 것이란 다짐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여러 번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취업 준비를 하며 알게 되었다. 나 역시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걸 말이다.
세상이 발전한 만큼 돈을 버는 방법 역시 다양해졌다. 하지만 그 방법은 어쩐지 멀리 있는 것만 같다. 월급만으로는 살기 힘든 세상, 월급 외의 다른 소득을 찾아야 하는 세상. 그래야만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세상, 그런 삶. 이런 삶은 내가 그토록 가고 싶지 않은 방향의 삶이지만, 내게 가장 가까운 삶이기도 하다. 아빠도 그랬고 엄마도 그런 것처럼 말이다. 보다 더 많은 돈을 갖고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 해도 마냥 슬퍼하고 싶진 않다. 다만 아주 가끔 복권을 사며 남몰래 기뻐하고 기대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