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행복 실천기
여러 개의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은 쉽지 않다. 바로 앞의 것을 택하려면 뒤의 것이 보이고, 버릴 것을 손에 들면 그것이 다르게 보인다. 모든 것을 다 안고 가거나 충분한 고민 끝에 하나를 고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주변과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생의 여러 지점에서 우리는 선택하고 결정한다.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부터 일의 순서를 정하는 것, 직장과 대학을 정하는 것까지. 선택과 결정은 캐릭터가 달리는 트랙 위에 놓인 아이템처럼 삶 곳곳에 놓여 있다.
지난 해 7월, 학기를 마침과 동시에 휴학을 결정했다.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던 일이기에 휴학을 신청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부서를 찾아갈 필요도 없이 몇 번의 클릭으로 나의 재학 상태는 휴학으로 바뀌었다. 휴학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이었다. 방학을 제외하곤 부모님께 용돈을 받았지만 휴학을 하고서도 용돈을 받고 싶진 않았다. 나는 알바몬과 알바천국을 드나들었고 되도록 풀타임 알바를 찾았다. 시간이 괜찮으면 거리가 멀었고, 거리가 괜찮으면 시간이 짧았다. 몇 군데 이력서를 내고 문자를 보냈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공허한 메시지 창을 볼 때마다 알바를 구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취업은 어떻게 하지 싶었다. 그러던 중 법률사무소에서 사무보조 알바를 구한다는 공고가 눈에 띄었다. 번화가에 있는 그곳은 집과 가까웠다. 나는 곧장 이력서를 넣었다. 몇 시간 후 면접 안내 문자가 왔다. 단지 면접 일정 안내 문자를 받았을 뿐인데 기분이 좋았다. 며칠 후 면접은 진행됐고 그 날 오후, 합격 전화를 받았다.
그곳에서 내가 할 일은 간단하지만 많았다. 직원 및 고객 접대용 간식 정리와 냉장고 정리, 점심시간 전화 응대, 상담 시 진행되는 녹음 및 녹취, 기타 자잘한 업무까지. 나는 직원들이 하기엔 번거롭고 귀찮은 일을 도맡아 했다. 처음 한 달은 사무실에서 간식을 정리하고, 인쇄 및 복사를 하고, 스캔을 뜨고, 팩스를 보내고, 우체국에 가 내용증명을 보냈다. 또 하루에 열 명이 넘는 고객의 서류를 뗐고(개인회생 및 파산을 주로 하는 곳이었다), 가끔 아파트 소음 관련한 집단소송 현장에 나가 서류를 돌리기도 했다. 직원이 많은 만큼 그들이 먹는 간식의 양도 적지 않았는데, 일주일에 두세 번씩 택배가 왔다. 그럼 나는 그것들을 실어 1사무실과 2사무실 냉장고에 절반씩 채워 넣었다. 나중엔 내게 간식을 주문하는 일과 가격 비교, 품목 기입까지 시켰는데 이런 내 모습을 보며 나와 동갑인 직원 A는 “왜 직원이 할 일을 OO씨가 해요?” 묻곤 했다. 정신없는 한 달이 지나 8월이 되었을 때, 나의 업무는 추가되었다.
대리님은 나를 불러 말했다. 개인회생 및 파산을 하기 위해선 고객의 부채를 증명하는 서류가 필요한데, 8월부터 내가 그 일을 맡게 될 거란 거였다. 부채증명서라 불리는 그것은 채무자 본인이 직접 방문하여 발급해도 되고, 위임을 받은 자가 대리로 방문해 발급을 받아도 되었다. 함께 일하던 아르바이트생은 백 개가 넘는 채권사 목록이 적힌 엑셀 파일을 건넸다. 거기엔 채권사 이름과 주소, 발급 방식이 적혀 있었다. 1금융권은 대체로 방문이었고 2금융권(저축은행)은 원격지 접수로 발급 가능했으며, 3금융권은 우편 또는 팩스로 서류를 발급받아야 했다. 인수인계는 하루 삼십 분, 일주일 동안 이루어졌고 8월의 둘째 주가 됐을 때 홀로 은행으로 향했다. 고객의 서류를 떼고, 상담 녹취를 하고, 냉장고를 정리하는 것과 달리 부채증명서를 발급하는 일은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나는 알바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했지만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해야 할 일도, 모아야 할 돈도, 써야 할 돈도 많았기에 조금만 더 버텨보기로 했다. 아홉 시부터 여섯 시까지, 내근과 외근을 하고 돌아오면 온 몸에 힘이 빠졌다. 머릿속엔 해야 할 일이 잔뜩 들어있는데, 몸은 머리 아닌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알바와 취업 준비를 병행하려던 계획은 조금씩 흐려졌고, 그럴 때마다 휴학을 잘 보내고 있는지 생각했다.
알바를 한지 다섯 달 쯤 되었을 때, 대리님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OO씨는 전공 살릴 거예요?” “OO씨 저희 회사 직원해볼 생각은 없을까요?” 어릴 때부터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고 생각했고, 그럴 거라 믿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고 마냥 어리지만은 않은 나이가 되며, 그건 정말 꿈으로 밖에 남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은 하루를 보내기보다 버텨냈고, 생계를 유지하고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일했다. 살아가는 데 돈이 정말 중요할까? 물었던 나는 어느새 살아가는 데 돈은 너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전공을 살릴 거냐는 질문과 직원을 해볼 생각 없냐는 대리님의 말은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지방치곤 큰 규모였고 몇 년 사이 크게 성장한 회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성장하는 단계인 만큼 체계를 잡아가는 단계였고, 한 달에 두 명 꼴로 직원이 나가고 들어오길 반복하는 곳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직원들이 하는 일을 어깨 너머로 배웠기에 일 자체에 대한 부담은 적었지만 사람에 대한 부담은 컸다. 나는 그곳의 사람들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대리님께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면 가능성을 열어두려고 하지만, 아직까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리님은 웃으며 알겠다고 했다.
무엇을 선택하든 고민하는 나지만, 대리님의 직원 제의엔 고민하지 않았다. 몇 달 동안 회사가 돌아가는 방식과 직원들의 성격, 일의 강도를 파악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꿈을 지키고 싶었다. 문창과에 입학한 후 가장 먼저 깨달은 건, 내게 창작에 대한 재능이 없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글 잘 쓰는 사람은 많았고, 또 누구나 쓸 수 있는 게 글이었다. 그걸 깨달았을 때 좌절보단 안정감이 들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 나는 글쓰기 대회만 나갔다 하면 상을 받는 아이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게 글에 대한 재능이 없다는 걸. 내가 글 잘 쓰는 아이로 여겨졌던 건, 주변에 글을 쓰는 친구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대학에 와 그 사실을 다시 깨달았을 때, 좌절보단 기쁜 마음이 들었다. 아래에서 글을 쓰고 나보다 잘 쓴 동기들의 글을 읽는 건 재미난 일이었다. 스스로를 깨닫고 창작 수업을 들으며, 출판 편집과 관련된 수업을 들었다. 출판사에서 스무 해 넘게 일한 선생님은 시인이자 유명한 편집자였다. 그는 편집자로 일하며 겪었던 일과 고충, 만났던 사람, 행복하고 뿌듯했던 순간을 아낌없이 풀어놓았다. 선생님은 늘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데, 그런 선생님의 눈을 보고 있으면 내 속이 다 읽히는 것 같았다. 선생님의 출판 편집 수업은 내게 편집자라는 꿈을 안겨 주었고, 그 세계로 향하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했다.
현재 내 꿈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는 것(또는 글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가능성도 배제하진 않으려 한다.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며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면, 꼭 하고 싶은 일이 아니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고 때론 후회도 따른다. 문창과를 선택한 후 ‘괜히 왔나.’ 후회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곳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고 사람을 배웠다. 마찬가지로 직원 제의에 대한 내 선택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일하면 매달 월급을 받고 익숙한 일을 하며 취업 걱정이 없을 테지만, 큰 후회가 남을 거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글에 재능이 없다고 해서 더 이상 글을 쓰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으니까. 앞으로의 시간에도 많은 선택과 결정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많이 고민하고 또 고민할 것이다. 하지만 가끔 선택지가 분명한 결정도 있다. 내 앞에 어떤 선택지가 놓일지는 모르지만, 그때의 내가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