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금요일

열둘

by 목연





오늘은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열여덟 살에 허리디스크 수술을 한 뒤 비가 오는 날이면 허리가 아팠다. 오늘 역시 뻐근한 허리를 짚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언니는 평소처럼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고 나는 세수와 양치만 했다. 건설 노동자인 아빠는 비가 오는 날이면 일을 할 수 없기에 안방에 누워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일 나가는 언니를 배웅하고 방으로 와 일기 예보를 봤다. 오전 여섯 시부터 자정까지 비 그림이 있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엄마, 언니와 달리 아빠는 고양이를 싫어한다. 정확히는 고양이의 털이 날리는 걸 싫어한다. 그렇기에 아가들은 비가 오는 날이나 아빠가 쉬는 날이면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마당 한 곳에 놓인 집에서 비를 피하거나 사람은 알지 못하는 구석에 숨어야만 한다. 엄마는 내리는 비를 보며 아가들 걱정을 먼저 했다.


약 한 시간을 멍하니 있다 영화를 봤다. 예전부터 보려던 '피아니스트'. 영화를 보는 내내 "왜?" 라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이유 없이 죽는 사람과 죽어야만 하는 사람들. 국가라는 이름 하에 가해지는 거대한 폭력 앞에 무참히 쓰러질 수밖에 없는 그 모습이 무어라 말할 수 없을 만큼 참담하게 느껴졌다.


영화를 다 본 후에도 비는 여전히 내렸다. 소나기처럼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오 분만 서 있어도 어깨를 다 적시겠다 싶을 만큼의 비였다. 우리 집은 예전부터 비 오는 날을 싫어했다. 앞서 말했듯 건설 노동자인 아빠는 비나 눈이 오는 날이면 일을 할 수 없기에, 아빠를 따라 나 역시 자연스레 비 오는 날을 싫어하게 되었다. 어느 날은 언니와 거실에 누워 비 오는 날에 대해 이야기 했다. 언니는 내게, 자신은 비 오는 걸 좋아하는데 아빠 때문에 비 오는 걸 싫어하게 되었다고, 좀 더 정확히는 싫다는 생각을 가지기도 전에 비 오는 걸 싫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언니의 말을 듣고 나 역시 그랬나, 생각했다. 며칠 쯤 지나 비가 왔을 때, 거실에 앉아 비 오는 걸 가만히 지켜보았다. 언니의 말처럼 비 오는 건 나쁘지 않았다. 비 내리는 소리는 묘한 안정감을 줬고 비 오는 날 특유의 노곤함이 나를 감싸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빗속으로 몸을 던졌을 때, 신발 안으로 스며드는 물기는 기분을 나쁘게 했다. 아예 젖어버리면 나을 텐데 발끝을 적시는 그 축축함이, 묘한 불쾌함을 줬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아빠는 왜 비 오는 날을 싫어할까.


휴일을 좋아하는 다른 아저씨들과 달리 아빠는 일요일을 제외한 다른 날에 쉬는 걸 싫어했다. 정확히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이 아빠를 괴롭혔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빠는 학업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서울로 상경해 택시 일을 하며 거기에서 생활했다고 했다. 그러다 대구에 내려와 건설업에 종사하게 되었고, 약 삼십 년째 건설 현장을 지키고 있다. 비가 오는 날, 안방에 누워 무료하게 티브이를 보는 아빠를 보고 있으면 언니에게 그랬듯 아빠에게도 비가 처음부터 싫었던 건 아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빠에게도 비 오는 날의 낭만이 있고 특유의 노곤함이 주는 기쁨이 있을 텐데. 가족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생각이 비를 싫어하게 한 건 아닐까 싶었다.


글을 쓰는 지금, 비가 그쳤다. 자정까지 비가 올 거라는 일기 예보보다 약 세 시간 일찍 비가 그쳤다. 내일은 맑음, 모레는 약간의 구름. 곧 내릴 봄비와 몇 달 후 찾아올 장마를 벌써 걱정하는 아빠에게 언젠가는 비 오는 날에도 마음껏 쉴 수 있는 편안함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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