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살

열일곱

by 목연





연필을 세게 쥐는 건 내 어릴 적 습관이다. 나는 꼭 쥔 연필로 글씨를 눌러 썼고 조금이라도 글씨가 흐트러지면 종이를 찢곤 했다. 글씨의 크기가 모두 다른 나와 달리 언니는 어릴 때부터 글씨를 잘 썼다. 나는 언니의 글씨와 내 글씨를 비교하며, 언니의 글씨를 닮고자 했다. 글씨를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커질수록 연필심은 자주 부러졌다. 매일 연필을 꼭 쥐고 글씨를 쓰다 보니 손가락에 굳은살이 배기 시작했다. 어릴 때만 해도 몸에 굳은살이 생기는 걸 이해할 수 없었기에 나는 엄마에게 내 손가락을 보이며 말했다. 그러자 엄마는 연필을 오래 잡으면 엄지와 중지에 굳은살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엄마는 손바닥을 펼쳤다. 빨개진 내 손가락과 달리 엄마의 엄지와 중지엔 무른 굳은살이 배어 있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엄마처럼 구두를 신고 싶었다. 투박한 운동화 대신 반짝이는 에나멜 구두를 신고 싶었고 벨크로 달린 샌들 대신 장식이 박힌 샌들을 신고 싶었다. 나는 친구를 따라 어른스러운 신발을 샀고 며칠 신지도 못한 채 신발장에 넣어버렸다. 운동화와 실내화만 신던 내게 구두와 같은 어른의 영역은 통증을 동반했기 때문이다. 구두를 신을 때, 맨발보단 스타킹을 신는 게 낫다는 걸 몰랐고 굽이 높은 신발을 오래 신으면 새끼발가락과 발뒤꿈치가 까질 수도 있다는 걸 몰랐다. 나는 발가락과 발뒤꿈치에 생긴 물집을 터뜨리며 한동안 구두를 멀리 했다.


성인이 된 후, 원하지 않을 때에도 구두를 신으며 발목에 굳은살이 생겼다. 이젠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고 싶은데, 제법 단단하게 생긴 굳은살 때문에 운동화를 신을 때에도 발목 뒤가 쓸려 아플 때가 있었다. 오늘이 그랬다. 평소처럼 산책로를 걷는데 갑자기 발목 뒤편이 아팠다. 벤치에 앉아 신발을 벗고 확인하니 굳은살 밴 곳이 까져 있었다. 굳은살이 배면 피부가 벗겨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더 걷지 않고 집으로 걸음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굳은살이 배면 피부가 벗겨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이미 단단해졌으니 거기에 어떤 힘을 가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그렇다면 마음에 난 상처는 어떨까. 마음에 난 상처와 굳은살을 동시에 떠올리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한때 나는 많은 콤플렉스를 가지고 살았었다. 나의 외적인 모습부터 내적인 면까지. 아주 작은 행동 하나에도 위축 됐고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모두에게 콤플렉스 하나쯤은 다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행복하지 않은 가정사가 자랑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것으로부터 피어난 슬픔을 오래 가지고 있을 필요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러한 것을 깨닫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고 울음을 참은 적도, 참아낸 울음을 뱉어낸 적도 많았지만 그것을 깨닫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나의 콤플렉스가 아닌 것은 또 아니다. 그것으로부터 가벼워지긴 했으나 아주 가끔씩, 누군가 나의 약점을 콕 집을 때면 마음이 시리고 내려앉는다. 그렇지만 나는 이제 나의 콤플렉스에, 또 그러한 상황이 반복 되며 생긴 굳은살에 연고를 바를 줄 알게 되었기에 예전만큼 상처 받거나 당황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와 그 상처에 연고를 바를 뿐이다.


굳은살은 고생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무언가를 반복적으로 해야만 생기는 것이므로. 이러한 굳은살을, 고생한 몸을 그대로 방치해두면 오늘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이미 굳었다고 해서 괜찮은 건 아니니 말이다. 이미 굳어버린 살에도 수분은 필요하고 관심도 필요하다. 오늘 밤엔 발목 뒤편에 생긴 굳은살에 로션을 발라야겠다. 또 내 콤플렉스를 둘러싸고 있는 굳은살도 들여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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