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떡

열아홉

by 목연





내가 초등학생일 때, 주말마다 외할머니 댁에 갔었다. 도시 외곽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던 외할머니 댁엔 고구마와 고추, 토마토가 밭을 가득 채웠고, 그 옆으론 매실 나무가 빼곡하게 자랐다. 도시에서 자란 엄마와 달리 아빠는 농촌에서 자랐기에 어느 날엔 밭을 갈았고 또 어느 날엔 대나무로 매실 나무를 쳐 매실을 땄다.


차분한 성격의 외할아버지와 달리 외할머니는 욱하는 성질이 있으시다. 어릴 때 나는 외할머니로부터 꾸중을 들었는데, 이유는 언니를 괴롭혀서였다. 괴롭힘보다는 놀이에 가까웠지만 할머니 눈엔 내가 언니를 괴롭힌 것처럼 보였는지 나를 볼 때마다 늘 언니를 괴롭히지 말라고, 언니 말을 잘 들으라고 하셨다. 외할머니 댁에 갈 때마다 그 소리를 들었기에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속상한 얼굴로 엄마에게 이러한 사실을 털어놓자 엄마는, 외할머니 성격이 원래 그렇다며, 엄마도 어릴 때 오빠들 말을 안 듣는다고 매일 혼났었다 했었다.


봄이면 냉이와 달래, 쑥이 자랐는데 그 중에서 나는 냉이와 쑥을 좋아했다. 엄마는 밭에서 캔 냉이를 따 된장찌개를 끓여주었고 쑥으론 떡을 만들었다. 어린 나와 언니는 엄마를 따라 한 손엔 소쿠리를, 한 손엔 호미를 들고 밭으로 향했다. 엄마를 따라 쑥을 캘 때마다 벌레가 기어나왔다. 나와 언니는 벌레를 볼 때마다 소리를 질렀고 엄마는 손으로 벌레를 잡아 밭으로 휙, 던졌다. 엄마를 따라 쑥을 캐다보면 어느새 소쿠리 가득 쑥이 쌓였다. 할머니는 쑥을 씻어 물기를 턴 뒤 우리에게 주셨고, 엄마는 그 쑥을 반 갈라 할머니께 드렸다. 엄마와 할머니는 늘 음식을 더 가져가라며, 집에 먹을 사람이 없다며 한참 씨름했다.


밭에서 캔 쑥으로 만든 쑥떡은 참 맛있었다. 곱게 간 콩가루에 그걸 찍어 먹으면 목이 막히는데도 자꾸만 손이 갔다. 엄마는 햅쌀로 지은 떡을 챙겨 할머니께 가져다 드렸고 할머니는 그걸 또 우리에게 주셨다. 그렇게 한동안 매주 외할머니 댁에 가다, 아빠가 타지로 출장을 가며 할머니 댁에 자주 들리지 못하게 되었다. 엄마는 운전을 할 줄 몰랐기에 할머니 댁에 가려면 택시를 타고 가야 했다. 그러다 보니 매주 가지 못했고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 할머니 댁에 가게 되었다.


젊어서부터 성격이 괄괄하고 사람 만나길 좋아한 할머니는 나이가 들어서도 시내에 나가는 걸 좋아하셨다. 덕분에 휴대폰이 없던 시절 외할아버지는 밤 늦게 들어오는 외할머니를 보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셨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소리 지르는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토록 차분한 사람이 소리를 지르다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그토록 건강하던 두 분께 좋지 않은 소식이 들린 건 몇 년 전이었다. 외할아버지는 건강 검진 중 우연히 대장에 암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몇 년 간의 항암 치료 끝에 완치 되었다. 할아버지가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할머니는 조금씩 늙어갔다. 그토록 좋아하던 외출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거의 매일 만나던 친구들도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엄마에게 자주 힘들다 말하셨고, 그럴 때마다 엄마는 면허를 따지 못한 스스로를 원망했다. 몇 년이 지나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할머니에겐 치매가 왔다. 의사인 큰외삼촌은 우리에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엄마와 나는 그렇지 않았다. 부모가 자식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건 아주 많이 슬픈 일이었다.


지금 외할머니는 산이 아닌 큰외삼촌 댁에 계신다. 약을 먹은 덕에 치매 속도가 늦춰지긴 했지만, 또 컨디션이 좋은 날이면 우리를 알아 보기도 하지만 할머니의 치매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할머니를 보고 온 날이면 엄마는 담배를 피운다. 그리고 젊은 날의 괄괄하고 씩씩하던, 또 자주 욱하던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럴 때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평생에 걸쳐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지지만 우리가 마음에 담았던 사람의 기억에서 잊히는 것이야 말로 인간이 가장 겪고 싶지 않은 고통 중 하나가 아닐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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