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생각들

스물

by 목연





한동안 뜸했던 얼굴들을 떠올려본다. 대학에 입학해 처음 친해진 동기와 선배의 얼굴을, 매일 아침 타던 버스에서 마주치던 내 또래의 여자를.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났던 은행 직원들과 일주일에 한 번 홀로 삼계탕을 먹으러 오던 젊은 남자의 모습을. 잠이 오지 않는 밤, 스쳐간 얼굴들을 떠올리면 이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부터 나는 이상한 생각을 자주 했다. 가령 인터넷에 떠도는 가설들, 예를 들면 지구가 거대한 실험실이라는 가설과 같은 것들을 말이다. 언니와 나는 거실 바닥에 누워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고 언니는 "그게 만약 사실이라면?" 하고 생각했다. 하늘의 색을 누군가의 손이, 누군가의 프로그래밍에 의해 바꾸는 거라면. 언니는 진지했고 나는 언니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었다. 그러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엔 언니와 존재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마도 시험 공부를 하기 싫은 어느 날이었던 것도 같다. 나는 언니에게 "그래봤자 우리는 우주 먼지에 불과하고, 생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왜 이렇게 살아야 해?" 하고 물었다. 그럼 언니는 "그래도 일단 살아야 하니까." 라고 대답했다. 그때의 나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싫었다. 중학교를 졸업하던 날, 진지하게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을까 고민했고 검정고시를 치고 싶었다. 하지만 언니는 내게 그건 너의 욕심이자 착각이라고 말했고, 나는 그 날 일기를 쓰며 펑펑 울었다. 입시가 다가오고 원서를 써야 하던 때엔 성적에 맞춰 학교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연영과에 가고 싶었지만 실기 시험을 치를 자신이 없었기에 그에 대한 대안으로 문창과를 택했다. 야자시간에 수능 특강 대신 소설을 읽으며 필사하는 나를 보고 수학 선생님은 정신이 나갔다고 했다. 반 아이들 앞에서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크게 혼난 날, 처음으로 학교 화장실에 숨어 펑펑 울었다. 친구들은 내 눈물을 모른 척 해주었지만 그것대로 또 서러워 집에 와서도 울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글쓰는 걸 그만큼 좋아했다기 보단 대학에 가지 못할까봐, 또 다시 입시 공부를 해야 할까봐, 그게 두려웠던 것 같다.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삶이 길다는 것이다. 스물넷, 어리다면 어리고 어른이라면 어른인 나이에서 부쩍 내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내 한 몸을 챙기기 위해선 최소한의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선 직장을 가지거나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러한 사실이 나를 두렵게 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내가 그걸 해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덕분에 지난 겨울엔 깊은 우울에 빠지기도 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무력감, 계속 되는 불안감. 하지만 언니와 대화를 나누고 친구들과 고민을 나누며 나의 고민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니 마음이 덜 불편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나만의 슬픔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순간, 조금 괜찮아졌다.


사람 사이에 살고 싶다가도 홀로 지내고 싶은 마음. 그러다가 또 지나간 얼굴들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요상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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