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둘
어릴 적, 누군가 내게 꿈을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한의사요!" 몇 년이 지나 또 다른 어른이 내게 꿈을 물어봤을 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간호사요!" 중학생이 되어 장래희망을 적는 종이를 받았을 때, 소설가를 적었다. 중학교 삼 년 내내 나의 꿈은 소설가가 되는 것이었다. 어른들이 내게 꿈이 뭐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무언가가 되겠다고 말했다. 그 무언가는 매년 달라졌고 가끔씩은 시간마다 달라질 때도 있었다. 고등학교 기술 수업에서 선생님은 우리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셨다. 선생님이 지목한 여자애는 "경찰관이 되는 게 꿈이에요." 라고 말했고 선생님은 고개를 저으며 말하셨다. 그건 꿈이 아니라고. 그러면서 선생님은 말하셨다. 경찰관은 직업이지 꿈이 아니고, 어떤 경찰관이 되는 게 중요한 거라고. 그 말을 듣고 난 후 나는 내 꿈에 대해 생각했다. 그때 나의 꿈은 배우였다.
나는 어릴 적부터 엄마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나보다 언니를 더 좋아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우리 집은 엄마와 언니, 나와 아빠, 이렇게 나뉘었는데 왜 그렇게 구도가 형성되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엄마보다 아빠를 좀 더 따랐고 언니는 아빠보다 엄마를 좀 더 따랐다. 지금보다 젊었던 아빠는 매일 술을 마셨고 이유도 없이 우리에게 화를 내고 물건을 던졌다. 어떤 날엔 연락 되지 않는 아빠를 찾아 엄마와 함께 빗속을 걷기도 했고, 길에 널브러진 아빠를 부축해 집까지 데려오기도 했었다. 아빠는 우리를 존중하지 않았다. 아빠는 늘 가장으로서 인정 받고 싶어 했지만 그와 반대되는 행동을 했다. 이러한 가정환경은 엄마와 언니, 나에게 우울과 불안을 줬고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를 이해받고 싶었다.
멀리서 바라 본 배우의 모습은 화려했고 사랑 받는 존재였다. 누구나 그들을 좋아했고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노력을 인정 받는 것처럼 보였고 그게 부러웠다. 물론 연기라는 것에 매력을 느끼기도 했지만 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언제나 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나를 인정 받는 것이었다. 그걸 깨달은 건 대학에 들어와 선배 및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부터다. 나는 내 안에 어떤 결핍이 있는지 생각했다. 내 안에는 사랑에 대한 결핍이 있었는데, 받는 것에 대한 결핍이 아니라 주는 것에 대한 결핍, 좀 더 정확히는 내 사랑을 거절당한 데서 오는 결핍이었다. 이러한 나의 결핍은 외로움을 불렀고 때로는 깊은 불안과 우울을 동반했다. 이러한 불안고 우울은 내 삶을 조금씩, 하지만 티나게 갉아먹었다.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났고 짜증이 났으며, 때론 내 몸을 해치기도 했다. 남을 파괴하는 건 아빠를 닮는 것이므로, 내가 파괴할 건 나밖에 없었다. 짜증 많고 예민한 중학생 시절을 지나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제 스스로의 화를 참지 못하고 물건을 던지는 나를 보며 멍해졌다. 이건 내가 싫어하는 아빠의 모습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걸 닮고 싶지 않았다. 그때부터 화가 나면 눈을 감고 어두운 방에 앉아 화를 삭혔다. 차분해지려 했고 물건을 던지지 않으려 했다. 몇 번의 상황이 반복되자 화를 누르는 데 익숙해졌다. 작은 일에 짜증을 부리지 않게 되었고 쉽게 예민해지지도 않았다. 수련과 같은 고등학생 시절을 보내고 대학에 와 나의 결핍을 깨달으며, 배우라는 꿈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내가 나를 감당하기 어려울 때, 하지만 그것을 감당하려 애쓸 때, 또 나의 결핍을 깨닫기 위해 수없이 상처를 돌이켜보고 이야기할 때, 아빠만큼이나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언젠가 언니에게 이러한 고민을 털어놓은 적 있는데, 언니도 가끔 엄마가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고 했다. 우린 마주 앉아 생각했다. 이 물음에 대한 정답은 아니나 어렴풋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원망보다도 한 인간으로서의 연민이 아닌가 하는. 조금 자란 우리가 엄마에게 이혼을 제안했을 때, 엄마는 우리를 먼저 걱정했기 때문이다. 아빠가 행패를 부릴 때마다 떠나고 싶었지만 어린 우리를 보고 있으면 차마 그럴 수 없었다고. 엄마의 말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더 이상 미워하고 싶지도 않았다. 모두 적을 수는 없지만 엄마의 삶을 아는 우리기에, 엄마를 더 이상 미워할 수 없었다.
자기연민을 멀리하자면서 또 자기연민이 가득 묻은 글이 되어버렸다.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 매일 글을 써야지, 했는데 매일 공개적인 일기를 쓰는 꼴이 되어버렸다. 처음 생각했던 글의 방향이나 주제는 이것이 아니었는데, 왜 나는 점점 멀어지는 것일까. 정제되지 않은 생각을 여러 번 걸러야겠다. 거르고 걸러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써야겠다.